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30년동안 살인을 저질렀던 70대 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들고 있는 과정이 녹여 있는 내용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한 자리에서 2시간만에 후딱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만큼 강한 몰입감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오늘도 이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에도 느낌이 왔다. 역시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마지막 장을 닫았으며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리뷰를 쓰고자 마음 먹었다. 오늘은 김영하 작가의 문장 하나 하나를 곱 씹으면서 그가 왜 이 소설을 쓰고자 했을까 생각해 보았고 살인자의 인생의 기억을 통해 죽음의 허무함과 기억은 각자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왜곡의 연속이며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기에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생각했다. 기억할 수 없는 기억, 현재의 기억은 서서시 지워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기억마저도 서서히 잊혀지는 이렇게 무서운 병이 있단 말인가, 살인자는 벌을 받고 있다. 그가 그토록 몰두했던 살인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병 살인자의 기억법, 기억하려 노력하면 할 수록 그 기억이 허망한 왜곡이라는 걸 그는 깨닫는다.

27p.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33p. 나는 악마인가, 아니면 초인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
115p.사람들은 악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부질없는 바람. 악은 무지개 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악이지. 중세 유럽에선 후배위, 동성애도 죄악 아니었나.
117p.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오디세우스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기억함으로써, 과거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살인이라는 주제를 통해 어두운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의 유머의 요소를 넣어주기도 한다.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다.
9p.나는 슬픔은 느낄 수 없도록 생겨먹었지만 유머에는 반응한다.
11p.첫 시의 제목이 ‘칼과 뼈‘였던가?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겁등하여 내 ‘메타포‘를 고평했다. 강사는 씩 웃더니-그 웃음, 마음에 안 들었다- 메타포에 대해 설명했다. 듣고 보니 메타포는 비유였다.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죽음이란 무엇일까? 고찰해보게 된다.
14p.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48p. 프ㅐ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52p.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57p.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친구여,˝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 때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마치 나 들으라고 써놓은 듯한 니체의 글
62p.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_니체
98p.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같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았고, 인정했다. 나는 내 자신을 너무 모른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날 잘 알아야 한다.
34p. 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했다. 슬픈표정, 밝은표정, 걱정하는 표정, 낙담하는 표정, 그러다 간단한 요령을 익혔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다. 남이 찡그릴 때 찡그렸고 남이 웃을 때 웃었다. 옛사람들은 거욱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지. 그들이 거울에서 보던 악마, 그게 바로 나일 것이다.
38p.어쨋든 나는 그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87p.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악마적 자아의 자율성을 제로로 수렴시키는 세계, 냐게는 그곳이 감옥이고 징벌방이었다. 내가 아무나 죽여 파묻을 수 없는 곳, 감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할 곳, 내 육체와 정신이 철저하게 파괴 될 곳, 내 자아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 곳,
111p. 나는 철학을 모른다. 내 안에는 짐승이 산다. 짐승에게는 윤리가 없다. 윤리가 없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 늙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붙잡히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행복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날마다 살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던 때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바짝 조인 현처럼 팽팽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오직 현재만이 있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책의 중반부에 들어서면 그의 기억이 왜곡 되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문장이 나온다. 우리의 기억도 많은 왜곡에 왜곡을 거칠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대로 상상하고 싶은대로 왜곡하고 있다.
43p. 개는 돌멩이를 던져도 달아나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퇴근한 은희가 그 개는 우리 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은희가 왜 내게 거직말을 할까.
85p. ˝그래, 갸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 그것은 무엇인가
93p.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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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J 2020-05-1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