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결국은 중요하지 않을 물건을 사느라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지 깨달았다.

누구의 희생도 없어야 더 돈독해진다나는 이따금 나를 텐트의 중심 지지대라고 생각한다. 텐트를 지탱하고 천막을 밖으로 펼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반드시 인정해야 할 사실은 혼자서 모든 일을처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동참해 중심에서 나와 함께 밖으로 천막을 펼친다면 우리가 덮을 수 있는 땅이 더 넓어질 것이다. 가족의 안정이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각자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완수해야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는 가족이 될 것이다.

가족을 위한 가치관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장담하건대 우리는 대부분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한다. 바로관계와 유대, 화합과 사랑이다. 브레네 브라운에 따르면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설계되어 있다. 배우자를 뒷바라지하든, 아이를 키우든, 노부모를 돌보든, 손자들에게 애정을 쏟든 상관없이 아래의 사소하지만 힘이 센 행동은가족의 일상에 더 많은 애정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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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준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그리고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싶은지를 글로 쓴다. 이런 편지를 통해 환자가 바라는 것이 빠짐없이 의사에게 전달된다." 명확하게 문서화된 임종 계획이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죽음을 어느 정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준다. 마찬가지로 편지 쓰는 연습을 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단계를 조금은 쉽게 지나갈 수있다.
여기에서 매우 큰 교훈을 얻게 된다. 데릭 파핏과 같은 철학자에게는미래 자아와의 연속성을 생각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어주는 도구일지 모른다. ‘자아‘가 단 하나라고 생각하면 죽음이 닥칠때 삶은 끝난다. 파핏은 "죽음이 닥치면 나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더는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인생이 여러 자아의 집합체이며 각 자아가 서로에 대해 어느정도 유대감을 느낀다면, 죽음이 더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지모른다. 파핏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은 ‘나의 현재 경험과 미래의 경험‘
을 완전히 갈라놓지만 ‘그 밖의 다양한 관계마저 다 무너뜨리지는 않을것‘이다."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는 우리가 계속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존재의 반짝거림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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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이 났어요? 내가 물었어.
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질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질문하기 위해 묻기 위해. 그리고 큰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하다보면 우연처럼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돼. 하지만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애초에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은 걸 알 수가 없어. 게다가 질문하면 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돼. 그가 말했어.
이제 사람들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했어.
맞아. 그가 스스로도 놀라며 말했어. 하포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
소피아와 아이들도 심술쟁이 헨리에타도 좀 그런 것 같지만, 그건 자기가 나한테 완전한 수수께끼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적장벽을이처럼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워커는 이 작품을사회적인 작품이 아닌 신학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가 서문의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은 ‘영적 포로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자신의 용기와 타인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는 사람의 힘겨운 여정‘을 담고 있다. 과연 그 말대로 주인공 셀리는 비참한 폭력의 희생자였으나 자신이 충만한 신성의 일부임을 깨닫고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쩌면 특이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남편의 애인을 사랑하는 상황은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을 뒤흔드는 ‘계시‘란 그렇게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계기를 통해, 밑바닥에 짓눌려 있던셀리는 강하고 독립적인 (그러나 여전히 부드러운) 여성으로 일어서게된다. 그 지난한 과정을 워커는 신학적인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워커가 말하는 신성이 기성 종교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작품 속 슈그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 ‘컬러 퍼플‘은 ‘보라색‘이라는 뜻이다. 책에서 보라색은서너 번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셀리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슈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보랏빛 일렁이는 어느 들판을 지나가면서도그걸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화가 날걸."
보라색은 어디에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고통 속에서도, 차별 속에서도, 억압 속에서도 세상 곳곳에는 아름다운 보라색이 빛난다. 그것은계시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해방의 시작이라는 작가의 믿음이 너무 나이브하고 초점이 빗나간 것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해방이란 억압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인 동시에 억압된 삶을 회복하는 것이고, 이는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감수성과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문학의 책무일 것이며, 워커와 컬러 퍼플은 그 일을 아주 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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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인간이란 쇠약하고 가난한, 그렇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은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악이 되고 적으로 변한 인간이다." 보드리야르가 보

이 책은 영혼과 육체의 대립 속에서 간과되어온 그림자의 문제, 다시말해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자격‘이라는 단어는 지위를 가리키기도 하고 조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이것이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주는 행위이다(1~3장). 사람과 장소를 근원적으로 연관된 개념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아렌트와 유사하다. 인권의 종말에 대해 논의하면서 아렌트는 장소의 박탈과 법적 인격의 박탈(그리고 그에 따른일체의 법적 권리의 상실)을 연결시킨다. 하지만 아렌트의 관심이 주로정치적, 법적 문제에 맞추어져 있다면, 이 책은 공동체와 주체를 구성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층위로 시야를 확장한다. 사람은 법적 주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의례를 통해 재생산되는 성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상호작용 질서에 대한 고프먼의 연구는 이러한 확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4~5장은 상호작용 질서 대 사회구조라는 고프먼의 이분법을 따르면서, 상호작용 질서에서의 형식적 평등과 구조 안에서의 실질적 불평등이 어떻게 현대 사회 특유의 긴장을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잘살건 못살건 배웠건 못 배웠건 모두 사람으로서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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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힘이 나에게는 조금 성가셨다. 하지만 나는, 추억이란 계산에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진다는 등, 별로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그렇게 머리를 쓰고 살자면 피곤하겠다는등의 분위기 깨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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