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대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완전히 저녁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까지아침이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아침에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침 식사 전에 하는 일이야말로 정도를 걷는 것이고, 밤에 불을 켜고 하는 일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멋을 부리며 무리한다. 그만큼의 체력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무리를 할 수 없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아침일찍 눈이 떠져서 곤란해진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노인을 본받기로 마음먹고, 밤에 하던 일을 아침에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을 리 없다. 느지막이 일어나므로 아침 식사 전에 일을 한다는 건 좀처럼 바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가 힌트가 되었다. 2년이나 3년 정도 소재와 효소를 함께 내버려두면 인간은 항상 정본에 맞서는 이본을 만들려고 한다. A라는 책을 읽고 이해했다고 하자. 그 결과 A는 A가아닌 A‘, 즉 이본이 되었는데, 문학이 재미있는 것은 이 이본을허용하기 때문이다. 법전을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없는 것은 법률이 이본을 아주 조금밖에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물론법률도 해석을 놓고 논쟁이 있으므로 이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론이란 에세이를 썼다.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맥주였다. 논문 주제 이야기를 맥주 제조에 비유해서 말하면 학생들이 꼭 묻는 말이 있다. 얼마나 재워둬야 발효가 되느냐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소설가 월터 스콧은 뛰어난 역사소설을 쓴 작가다. 스콧은 자면서 생각하는 타입이었던 모양이다. 귀찮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이렇게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일 아침 7시면 다 해결될 테니까."
지금 여기서 설왕설래하기보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자연스레 결론이 나리란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의 머리를 신뢰하고 아침의 생각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 (특별 양장본) - 최고의 비즈니스를 위한 성공 메시지
엘버트 허버드 지음, 하이브로 무사시 해설, 박순규 옮김 / 새로운제안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행하는 인간 vs 생각하는 인간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펼쳤다.

짧은 글이지만 메시지는 단호하다. “묻지 말고, 맡겨지면 해내라.”위험한 정글을 건너 묵묵히 메시지를 전달한 로완. 조직은 이런 사람을 원한다고 말한다.

한때는 이 태도가 멋있어 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실행력. 핑계 없는 책임감. 프로다운 자세.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말, 묻지 않는 것이 미덕일까?

도야마 시게히코는 다른 말을 한다. 생각하지 않는 실행을 경계한다. 그의 책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에서 ‘누워 있음’은 도피가 아니라 사유다. 바로 움직이지 않는 시간.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여유. 지식을 쌓기보다 질문을 붙드는 태도.

가르시아의 세계가“어떻게 해낼 것인가”를 묻는다면,
도야마의 세계는“왜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둘 다 필요하다.

생각만 하는 사람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바꾸지 못한다. 충분히 생각한 뒤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실행하는 사람. 묻지 않는 성실함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한 책임감.

실행은 힘이지만, 생각 없는 실행은 방향을 잃는다.
생각 없는 실행은 성실함 이지만, 생각한 뒤의 실행은 선택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생들은 선생님과 교과서가 이끌어주는 대로 공부한다. 자습이라는 말이 있지만 혼자 힘으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글라이더‘ 같은 것이다. 엔진 없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나는 글라이더는 혼자 힘으로는 날아오를 수 없다.
글라이더와 비행기는 멀리서 보면 비슷하다. 하늘을 나는 것도 같고, 글라이더가 소리 없이 우아하게 활공하는 모습은 오히려 비행기보다 아름다울 정도다. 하지만 슬프게도 자력으로 날수가 없다.

우리는 꽃을 보지만 잎은 보지 않는다. 잎을 보더라도 줄기는보지 않는다. 하물며 뿌리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꽃이라는 결과에만 눈이 멀어 근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들은 바에 따르면 식물은 지상에 보이는 부분과 지하에 숨은•뿌리의 형태가 거의 같아서 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꽃이 피는 것도 땅속에 큰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 - 현명하고 지적인 인생을 위한 20가지 조언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장은주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야마 시게히코의 『나는 누워서 생각하기로 했다』는 생각을 더 빠르게 하거나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이 깊어지는 조건‘을 정리해 준다. 생각이 막힐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어떤것을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생각이 필요할수록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려 한다. 일정은 촘촘하고, 해야 할 일은 계속 쌓인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기분도 쉽게 따라온다. 이 책은 그런 긴장과 몰입이 늘 좋은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힘을 빼고 멈춘 상태에서 생각 ‘누워서 생각하기‘는 게으름을 권하는 표현이 아니라 생각에 필요한 이완의 상태를 상징한다고 알려준다.

인상 깊었던 지점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짜낸 생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써 만들어낸 생각은 대게 이미 알고 있는 것의 반복에 머물기 쉽다. 반대로 새로운 생각은 산책 중이나 샤워 중처럼, 의식이 느슨해진 순간에 슬며시 올라온다. 생각은 몰아붙일수록 멀어지고, 풀어줄수록 돌아온다는 말이 이 책의 핵심처럼 남는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여백이다. 우리는 하루를 일정, 할 일, 알림, 정보와 자극으로 빈틈없이 채운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는 생각이 머물 공간이 없다. 작가는 사유에는 ˝여백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여백이 있어야 감정이 가라앉고, 질문이 생기며, 생각이 정리된다고 한다. 누워 있는 시간은 그 여백을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나는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슬로우맥싱(Slowmaxxing)을 떠올렸다. 슬로우맥싱은 단순히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을 줄여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남기는 선택에 가깝다. 이 책이 말하는 멈춤과 여백도 같은 결이라고 느껴졌다. 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생각이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사고가 더 단정해지는 과정인 것이다.

멈춤과 여백은 그 수많은 생각들 중 가운데서, 나에 대하여 조용히고 차분하게 사유하게 만드는 시간이었고, 깊이 생각할수록 나를 더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 식사 후에는 머리도 몸도 지쳐 하루 중 최악의컨디션으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공부에는 적합하지 않다. 학생들이 밤샘 공부를 했다며 자랑하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은 행동이다. 심신 모두큰 해를 입는다. 요즘은 예전처럼 밤샘 공부나 철야 근무를 자랑으로 삼는 사람이 줄었는데, 이는 좋은 흐름이다.
밤샘은 백해무익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아침은 금, 점심은 은, 저녁 식사이전도 역시 은이다. 저녁 식사 후는 금방 동이 되고 더 늦어지면 돌이 된다. 돌의 시간에 머리를 사용하면 돌머리가될 우려가 있다.

점심 식사를 하더라도 이를 교육의 일환으로 가르치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다. 아이들은 생활을 중단하고 학습에만 전력을 다할 것을 요구받는다. 꼴찌에게 그런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다운 생활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에 반발하여 비행을 저지르는아이도 있다. 학교는 그런 아이를 ‘낙오자‘ 취급하면서도그렇게 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대 교육은 이러한 점을 반성하는 법이 없다.
러일전쟁 당시에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공부만 한 학자가 있었는데, 세상은 그를 두고 학문의 화신인양 칭송했다. 상아탑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학문을 지키는것이라고 오해한다. 생활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인간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상아탑에는 생활이 없고그저 지식의 잔해만 존재하고 있음을 계몽기 사회는 알지못했다. 뒤처져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지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지식 추구, 지식 존중 사고에만 매달려 있으니 그것을 잊게 된다.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한다는 본질은 무시하고,
알기 위해 살아가는 게 수준 높은 것이라는 이상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