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두렵고 무서웠다.한 사람의 성장에 책임을 져야하는 나도 그녀처럼 엄마이니까.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어떻게 이런 양육을 받은 아이가 괴물이 된걸까..?그러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운 것임에 숙연해졌다.고통의 심연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그녀의 온 마음과 몸짓 그 처절함이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책의 시작은 이랬다.1999년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람바인고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중략)톰과 나는 다정하고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부모였고, 딜런은 에너지가 넘치고 애정이 많은 아이였다. 늘 염려하며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를 찾기를 빌어야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딜런을 ‘햇살‘이라고 불렀다. 딜런의 금발머리가 후광처럼 빛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딜런에게는 매사가 힘들지 않게 잘 풀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딜런이 내 자식이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온 영혼과 심장으로 딜런을 사랑했다. 콜럼바인 이전의 우리 삶이 너무 평범하다는 점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일 것 같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기도 하다. 우리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힘들지도 않았다. 우리 집 막내는 속을 썩이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리라고는 우리도 그 아이를 아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들이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면 하는 소망이 가장 강하다.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톰과 나는 텔레비젼 시청과 설탕이 많이 든 시리얼 섭취를 제한하는 적극적인 부모였다. 아이들이 볼 영화를 골라주고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하고 안아주면서 아이들을 재웠다. 딜런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착한 아이였다. 키우기도 쉬웠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언제나 대견한 아들이었다. 딜런을 괴물로 그려 콜럼바인의 비극이 보통 사람이나 가족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안도감은 거짓일 것이다. 나는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런 식으로 달랠 수 없는, 더욱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취약함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자 한다.마지막 장을 덮고 이 책의 추천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서천석 선생님의 글이 유독 마음에 내려앉는다.서천석: 이 책은 어둠이다. 어둠에 뛰어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저자가 위험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멀쩡한 바닥이 무너지며 갑자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어둠 속의 희미한 빛과 촉각에 기대어 그 어둠을 통과해나간다. 그 힘은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다. 나는 이 책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란 많은 부분이 설명할 수 없기에 평소엔 살짝 가려져 있을 뿐 막막함은 본질이다. 그 막막함을 통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