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침묵도 아니었어,

  하지만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하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 -

 

대흥동 끝자락에 있는 네스트 791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도 들었다.

별다른 일이 없음에 감사해야 할까 ? 아니면 벌어지는 일들을사소한 일이라고 위로해야 할까 ? 주말에  jason Mraz의 lucky를 200번쯤 들었다. 하염없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만큼 끝도 없이 들었다. 그냥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아련해지고 차분해진다. 이런 빈티지 카페에 앉아 있으면 꼭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옛날 그 어느날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놓고...말없이 책을 읽다보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멀리 겨울의 끝에서 봄이 조용히 움트고 있을까 ? 올해처럼 이렇게 간절히 봄을 기다린 적이 없었다. 이번 겨울처럼 매서운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힘들어했던 적은 없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잔의 커피를 마시면 따사로운 봄이 나에게 와 줄까 ? 심란스러운 마음을 덮고 덮으며 추스려보지만 우울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이 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일이 시작되니 봄의 기운이 나에게도 옮아오겠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겨울의 지루한 시간들을 봄으로 옮겨주고 싶다. 봄은 언제나 너무 짧아 아쉽다.

 

 

 

이런 외딴 곳 카페를 누가 찾아올까 싶었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빈티지한 카페는 참 정겹다. 나는 특히 이렇게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좋아하는데...오랜 시간 주인이 공들여 꾸민 정성이 느껴지니 좋고, 구경할 만한 다양한 소품들이 많아서 재미있다. 물론 거기에 커피 맛까지 좋다면 100% 만족이다. 작고 아담한 카페 안에는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와 영화 dvd 그리고 책과 소품들로 가득했다. 다이얼 전화기, 못난이 인형, 다양한 종류의 벽시계들, 그리고 빨간색 낡은 스텐드와 라디오... 못을 이용한 목판화 등 재미있는 구경꺼리가 넘쳐났다.

나이 먹는 다는 건...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낯선 것보다는 낯익은 것이 더 편해지는게 아닐까 ? 적당히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다.

 

욕심껏 담아온 책을 쌓아두고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투쟁 영역의 확장과 뭐라도 되겠지를 마무리했고, 조화로운 삶은 예전에 밑줄 그어 놓은 부분만 다시 읽었다.

카페를 나와보니 작은 골목마다 카페들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은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라 몰랐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가보지 않은 카페들을 찾아다녀보고 싶다. 집에서 책을 읽다보면 자꾸만 방해되는 일이 생긴다. 앉아서 읽다보면 눕고 싶고, 누워있다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일이 자꾸만 눈에 보이니 집중하기 힘들다.

1월달에 여명, 투쟁영역의 확장, 뭐라도 되겠지...이렇게 세 권을 읽었다. 오늘부터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을 예정이다.

이 시간들과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의미있는 일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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