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 연휴 마지막 날... 가족들과 함께 은행동 계룡 문고를 찾았다.

집 가까운 곳에 영풍문고가 생긴 후로는 가끔씩 밖에 찾지 않지만...

언제나 친정 나들이 간 것처럼 정겹고 반가운 곳이다.

원래 삼성생명 지하에는 문경서적이 있었는데... 문경서적이 없어지고 그곳에 계룡문고가 이전했다.

나는 대전역 앞에 있는 대훈서적과 삼성생명 지하에 있던 문경서적 그리고 은행동 이안경원 뒷편에 있었던 계룡문고... 이렇게 세 군데 서점을 골고루 이용했었던 것 같다.

 

20대초반까지는 주로 대훈서적을 이용했었는데... 서점이 워낙 좁은 곳에서 시작해 확장해서인지 매장이 세로로 길었던 기억이 난다. 지하와 지상 2층까지 있었는데 한 때는 선화점, 타임월드점, 시청점까지 크게 확장하며 대전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자리 잡았었다.

대훈 서적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집에 가는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서점이 위치해 있어 편리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다 춥거나 더우면 쪼르륵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중.고등학교 때 방학이 시작되는 일요일이면 아빠와 시내 대훈서적에 왔던 일이다. 유난히 책 욕심이 많았던 큰 딸에게 아빠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방학 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시면서 서점 한 구석에서 하염없이 날 기다려주셨던 아빠... 아직도 친정 아빠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던가 ? 내가 뭘 살까 고민하고 있으면 언제나 다 사라고 하셨다. 책 값에는 참 후하셨다. 아마 아빠 나름대로의 사랑의 표현이셨던 것 같다.

그 때는 책을 구입하면 서점에서 책표지를 사주었는데... 빳빳하게 싼 책을 들고 집에 오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또 하나는 남편과 처음 만났던 날이다. 그 때 약속이  금요일 저녁 6시 대훈서적 1층이였다.

우리는 대훈서적에서 책을 보다가 지루해지면... 서점 후문에 줄지어 있었던 헌책방 구경했다.

헌책방에서 과월호 잡지를 보거나 운 좋으면 새책 같은 헌책을 싼 값에 구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대훈서적과 헌책방을 돌다 슬슬 배가 고파지면 바로 옆 골목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튀김이나 떡볶이, 오뎅국물을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훈서적에서 5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이수락 분식점의 쫄면 맛은 잊을 수 없다. 각자 서점에서 한 권씩 책을 사서 쫄면이 나올때까지 뒤적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 때는 책 한권, 쫄면 한 그릇을 놓고도 하루 종일... 밤새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ㅠ.ㅠ. (요즘은 더 맛난 음식을 먹어도, 더 많은 책을 살 수 있는데도 별로 할 얘기가 없다. 그래서 슬프다.

 

이렇게 우리에게 참 특별한 추억이 많은 서점이었는데... 몇 년 전 부도를 막지 못해 문을 닫았다.

대전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고 언제 가도 사람들도 북적북적했던 곳이었는데... 하긴 언제부터인지 한산하더니 결국 폐업을 하게 됐다.

물론 둔산동 상권이 발달하면서 구도심이 많이 침체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훈서점이 문을 닫게 되다니... 한동안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허전했다.

비록 서점은 문을 닫았지만 내 마음 속 기억에는 여전히 따뜻한 곳으로 남아 있다.

 

 

삼성생명 지하에 있던 문경서적... 대학에 다니면서 주로 이용했던 곳인데 전공서적이나 전공에 관련된 책을 주로 구입했던 것 같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었지만 필요한 책이나 사고 싶은 책은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주로 새책을 많이 구입했다. 

 

일주일에 두 세번은 서점에 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곳에서 일하시는 북매니저 분을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컴퓨터로 책의 위치를 찾던 때가 아니여서... 찾지 못하는 책은 늘 그 분에게 위치를 물어보았다. 때로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 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셨다. 자연스럽게 서점에 가면 인사를 나누거나 일상의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서점에 많은 직원분들이 계시지만 난 아직도 그 분처럼 친절하고 책를 좋아하는 분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문경서적 역시 남편과 참 열심히 다녔다.

우리는 만나면 꼭 서점에 갔는데... 그 때는 나이도 어리고 돈도 없었기에 서점은 더 할 수 없이 좋은 만남의 장소였다.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는 언제나 서점이었다. 나름대로 그 당시 책 값은 합리적이었던 것 같다. 꼭 맘에 드는 책은 서로 선물하거나 찜 해두었다 반드시 구입했는데... 그 때 같이 산 책이 아직도 책꽂이 많다.

하지만 문경서적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 동안 비어 있던 서점 자리에 계룡문고가 이전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지역 서점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룡문고...

계룡문고로 바뀔 때 쯤부터는 우리 둘이 아니라 셋이 함께 서점 나들이를 했다. 그 사이 우리는 결혼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일요일 교회에 다녀온 후 ... 점심을 먹고 서점에 가는게 우리 가족의  주말 풍경이었다.

어렸을 때는 남편과 내가 번갈아 아들을 업고 다녔고... 좀 더 자라서는 유모차를 타고 나녔다. 그 후에는 아장아장 서점을 걸어다녔다. 유치원 때부터는 서점 안에 마련된 어린이 공간에서 따로 그림책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아들도 이렇게 서점과 함께 성장했다. 남편의 직장과도 가까워서 퇴근시간에 맞춰 서점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남편을 만나 외식을 하는 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공휴일에도 집에서 뒹글뒹글하다가 우리 서점 가자.. 책 보러 갈까 ? 그러면 다 같이 계룡문고에 갔다. 물론 사춘기로 접어든 아들은 지금... 서점과 잠깐 안녕한 상태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분명 다시 서점에 가고 책을 읽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난 민규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일정 금액을 반드시 책을 구입하는데 사용하길 바란다. 책을 빌려 읽는 것도 의미있지만... 돈을 아껴 자기 책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길 바라며 늘 그런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계룡문고에 가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으면 내가 기쁘고 반갑다. 우리 가족들도 이 곳에 가면 꼭 책 한 권은 사가지고 와야 마음이 편하다. 이번 설 연휴에도 박원순의 희망을 걷다를 구입하고 북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한 때 계룡문고도 둔산동 사학연금 지하에 둔산점을 열었지만...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지역 서점은 지역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남은 지역 서점인 계룡문고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미 문을 닫은 서점은 마음 속에 담아 두었지만... 계룡문고는 오랫동안 정말 그곳에 남아 현재 진행형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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