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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내리던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무서운 한파가 불어닥치며 눈은 어느새 빙판길이 되었다.
안락한 곳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쌓인 눈과 매서운 바람과 싸우며...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이 추위를 막아줄 집이 없는 사람들이나 함께 견뎌줄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겨울이 얼마나 외롭고 서러울까 ?
장갑에 목도리...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도 틈새로 들어오는 찬 기운에 몸을 떨며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입구 ...쌓인 눈 위로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그 햇살을 받기 위해 비둘기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리를 어깨죽지에 묻고...둥글게 몸을 말아 햇빛을 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랑곳 없이... 그 햇빛에라도 몸을 녹여보려는 듯이...애처롭다.
온기 하나 없는 도시에서 긴 겨울밤을 추위에 떨었을텐데...
비둘기의 짧은 휴식을 방해하기 싫어...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저 산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도, 그 산 속 어디선가 이 겨울을 숨죽여 지내고 있을 이름 모를 작은
짐승들도, 겁 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들도... 참 신기하다.
불을 피우지도 않고, 따뜻한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그리고 옷을 입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길 뿐이다.
춥다고 호들갑스럽게 부산을 떨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오늘을 살아간다.
이런 자연을 꼭 닮은 분이 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이 분을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했다. 다른 사람을 변화 시키기 위해 말을 많이하지도 않았
으며 이념이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으셨다.
흐르는 물처럼...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처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셨다.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있다"
"다 덜어내야 한다"
"할 수 만 있다면 아래로 아래로 자꾸 내려가야 해"
각 사람의 상황과 지식의 정도 그리고 마음을 헤아려 이야기 해주신 분...
모든 사람들 애덕 (사랑과 덕)으로 대하고, 아이의 순수함을 가장 사랑해주셨던 분
평생 돈을 버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도 않으셨지만 누구보다 풍요롭게 사신 분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사랑과 평화... 생명... 비폭력... 간디즘을 실현하기 위한 그의 삶에는 청아한 향기가 서려있다.
이런 분을 직접 뵙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는 못했으나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으니 나 역시 선택 받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