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한 시 반 귀가, 세 시 취침.

아무래도 이명박 정권이 집회형태를 가두시위 양상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가면 갈수록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게 만들어버립니다.

딱 하나만 생각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인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0.01%라 해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사람은 부자입니까, 아니면 빈자입니까. 하나님은 누구의 편에 서 계십니까?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이 수업시간중에 선생님에게 귀를 잡혀 끌려갈 때 하나님은 누구의 편에 서계십니까?

평회시위 도중 무차별적인 진압으로 시민들이 연행되었을 때 하나님은 누구의 편에 서계십니까?

하나님은 누구의 편에 서계실까요?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또 예수의 제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의 한 부분을 인용(정의와 평화가 입맞출때까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저, 홍병룡 역, IVP 간, 재인용)하며 마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의 의(義), 그 분꼐 순종하여 이루어야 할 인간의 의-아모스 5:24에 따르면 강물처럼 흘러넘쳐야 할 공의-는 위협당하는 무죄한 자, 억압당하는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의 편에 서서 반드시 공의를 도모할 책임이 있다. 이 때문에 자기 백성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그들의 편을, 아니, 그들의 편만을 옹호하시는 입장을 취하신다. 그리고 교만한 자를 반대하며 낮은 자의 편에 서시고, 이미 권리와 특권을 향유하는 자를 반대하시며 그것을 빼앗긴 자를 선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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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1월, 당신의 추천도서는?

 - 가끔씩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쯤, 착 감기는 소설이 있다. 일상 속에서 내가 캐치하지 못했던 내 생각들이나 느낌들을, 작가가 풀어놓은듯하여 내 속속들이 보이는 소설이 말이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역시 그런 소설이다.

 

o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것이다. p13.

- 나는 거짓말이 되어버릴 다짐을 하곤했다. 그냥 다짐만으로 끝나면 좋겟지만서도, 그 괴로움을 못 이겨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 선언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거나- 어떻게? 나도 모르는 방책을 상대방에게 요구해버리는 무대책이 이런 시기엔 나올 수 있다- 제발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스스로의 바람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그 다짐이나 선언 역시 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o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p13.

-어쩔 수 없지, 라는 체념,

 

o 누군가가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 않다.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매력이 없는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이다. p14.

-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쁘진 않은데 예쁜편이라거나, 객관적으로 미인형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는 예뻐 보여라거나.

 

o 실연이라는 말에 나는 기습을 당한 듯 움찔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독초처럼 쓰디쓴 고통의 싹이 쏟아나는 느낌이었다. p18.

- 찹찹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람도 없었던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게 부당한가. 

 

o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p21.

- 하지만 그 무례를 용서해주고 내 고통을 묵묵히 받아줄줄 알았던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어떠할 것인가. 충분히 그럴만한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이, 그 무례함에 자신이 다쳐버렸다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으며 논리적으로 반박한다면, 게다가 왜 지나간 사랑한테 화 한 번 못 내고 어설픈 자기한테 푸냐며 길길이 화를 낸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많이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나오는 무례함을 용서하고 애닲아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은채, 상대방이 안스럽다거나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o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거야? p21.

- 질문이 잘못됐다. 오히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죽을 수 있는거야, 가 맞다. 여전히 살아있지 않은가. 소설 속의 문장대로 그런 질문은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p20)'니까.  

 

o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해서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p23.

- 나의 경우 '사랑-실연-업무몰입'의 반복이다. 우연일지 몰라도, 아니면 평소에 내가 일을 쌓아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연을 겪고나면 일거리는 항상 많았다. 오히려 고맙다. 그다음 수순은 '체력저하'인데,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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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3-15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연을 겪었을 때 일거리까지 많다면, 저의 경우라면 돌아이가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네요. ㅋㅋ 보통의 경우, 전 실연의 아픔에 푹 빠져버리기 때문에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했거든요. 그래서 일도 거의 손을 놓고 지냈었죠. 얼마전에도 그랬구요.

이제 숨도 잘 쉬고,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다시 사랑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다시 실연을 당하면 그 땐, 또 모든 것을 멈추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반복 -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

밤바다 2008-03-15 18:08   좋아요 0 | URL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 힘들지요. 아니 숨을 쉬고 있고 적은 양이나마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지요. 업무는 손을 놓게된다면 다른 이들에 피해를 주게 되니, '다행히도' 하게 됩니다. 죽으려면 남에게 피해나 주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 가끔씩은 죽고싶을 때 죽기 위해 업무를 매일 매일 확실히 끝내고 정리하며, 인수인계 매뉴얼까지 매일 업데이트 해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온건 일을 미루어놓는 게으름이 아닌가싶네요.
 

 o 분노의 칼은 나의 내면을 향했다. 나는 나를 처형대에 세웠다. 그녀를 미워할 수 없으니 피고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무심코 했던 모든 발언, 모든 행동들이 심판대에 올랐다. 내가 했던 발언들을 복기해보니 거의 모든 발언들이 유죄였다. 어떤 발언들은 너무 감상적이었고, 어떤 발언들은 유치했으며, 또 어떤 발언들은 부적절했다. 술을 마신 것도 유죄, 손을 잡은 것도 유죄, 심지어 어디 사는지를 물어본 것조차 유죄였다. p177

- 그렇게 사랑의 상처는 안으로 곪아간다. 사랑에 실패한 영혼에게 동정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 관계가 끝난 후에도 철저히 '을'이 되어버린다. 하루 두 번씩 꼬박꼬박 휴가를 내야하나 고민을 하게되고, 수마에 빠진 듯 잠은 많아지며, 미안하게도 친한 사람들에게 날카로워진다. 나중엔 그래서 그 친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미안해진다. 존재의 무가치함도 느끼게 된다. 말이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지, 그 재판은 눈 깜짝하기도 전에 끝나고, 어느새 나는 집행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책을 더 읽어야 될지 고민이다. 민수는 지원을 만나게 될텐데. 소설 속 주인공한테도 난 열등감을 느낀다. (참고로 형사법정에서는 '피고'가 아닌 '피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냥 그렇다는거다.)

 

o 그러나 나는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수컷들이 우울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내 옆에 누워 있는 이 멋진 여자를 감당할 수 없다... ...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넌 늘 자신을 비하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겨우 시작이잖아. 이제 겨우 인생의 삼분의 일 지점을 지나왔을 뿐이야. 내가 네 편이 돼줄게." p276

- 드디어 민수가 지원과 섹스를 했다. 부럽다. 섹스를 했다는게 부러운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 그 자체에 전념할 수 있다는게 부러웠다. 그리고 그 후 찾아온 우울함을 내 사랑하는 사람이 함꼐 해 준다니. 그게 너무나도 부러웠다. 난, 아니 나와 만났던 여인들은 항상 미래를 걱정했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먼저 들었었다. 처음엔 상대방이 왜 걱정하는지 몰랐었다, 난 단순히 사랑하면 된다고 믿었었고, 모든 사람이 나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 사람이 훨씬 많았고, 내게 지원과 같은 여자는 없었다, 언젠가는 상대방이 좀 가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세자매가 한 방을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모를 안도감... 그런데 그 집에서 어릴적부터 살았으며, 그 중간에 집을 신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거뭇거뭇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준다는 말, 이 말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들으면 어떨까? 난 네 편이야. 넌 잘 될거야.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말이지만, 그걸 말했던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편이 되어버렸던,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다. 이 말들, 언젠가 내가 들었던 "네 여자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내가 지금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야."라거나 "내가 나이는 얼마 안 되지만 참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 있어. 그 중에 한 명이 너야. 자신감 100배 가져도 돼" 같은 말들,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말들인가. 하지만 그녀들은 역시 유일한 자기 편을 정한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괜찮다고 다 사랑에 빠지진 않는다. 그리고 내게 그런 말들을 해줬던 그녀들, 참 고맙고 감사하며 평생 친구로 옆에 두고 싶은 이들이다. 다만 나는 객관적으로 괜찮은 인간일지는 몰라도-그녀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싶지 않다- 주관적으로 괜찮은 인간이었던 적은 없었던게다.      

 

o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얼굴로 그녀에게 입맞추었다. 따뜻하고 촉촉하고 달콤했다. 멀리서 대형트럭의 경적소리가 길고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는 그대로 오래 있었다. p440

- 끝이다. 장편소설을 끝까지 본 게 얼마나 될까? 누구한테 그랬든 나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소설은 그 자체로 대단한거다. 결국 해피엔딩이군. 슬프게도 말이다. 민수는 좋겠지만 나는 슬펐다. 나보다 잘 난 놈이 또 한 놈 있었던거다. 수평적 비교프레임은 버리는 게 좋다지만. 세상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라 나는 문득 생각한다. 지금은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전자에 속한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줄 알았다. 대학 때는 내가 사법시험에 붙으면 생길 줄 알았다. 사법시험을 접고,  정말 운이 좋게도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데를 들어갔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곧 생길 줄 알았었다. 정말로 곧 생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 어머님의 반대로 헤어졌다. 그 사람에게 많이 매달렸었다. 나중엔 메일이 왔다. 이거 스토킹에 해당한단다. 아마 나는 그 사람이 아니면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냥 실패겠지, 라고 애써 넘겼다. 하지만 그 후로도 쭈욱 사랑은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내가 사법시험에 붙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을거라는 슬픈 결론을 떠올렸다. 내 머리 속에서 '연애에 대한 갈망'이라는 칩을 빼버리고만 싶다. 어쩌면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동정하듯 사랑해줘도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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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사랑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바람이 기억을 가져다 주지 않아도 사랑은 내 한 켠에 있는데, 살을 에는 바람은 네 속에 아직 그 사람이 있는 거 맞지, 라며 후벼 팔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아 사랑이 내 뼈 속에 있을지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이 불어 눈물이 나는 것은 바람때문이 아니라 내 뼈가 녹아서 눈물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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