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1월, 당신의 추천도서는?
- 가끔씩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쯤, 착 감기는 소설이 있다. 일상 속에서 내가 캐치하지 못했던 내 생각들이나 느낌들을, 작가가 풀어놓은듯하여 내 속속들이 보이는 소설이 말이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역시 그런 소설이다.
o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것이다. p13.
- 나는 거짓말이 되어버릴 다짐을 하곤했다. 그냥 다짐만으로 끝나면 좋겟지만서도, 그 괴로움을 못 이겨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 선언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거나- 어떻게? 나도 모르는 방책을 상대방에게 요구해버리는 무대책이 이런 시기엔 나올 수 있다- 제발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스스로의 바람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그 다짐이나 선언 역시 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o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p13.
-어쩔 수 없지, 라는 체념,
o 누군가가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 않다.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매력이 없는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이다. p14.
-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쁘진 않은데 예쁜편이라거나, 객관적으로 미인형은 아니지만 주관적으로는 예뻐 보여라거나.
o 실연이라는 말에 나는 기습을 당한 듯 움찔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독초처럼 쓰디쓴 고통의 싹이 쏟아나는 느낌이었다. p18.
- 찹찹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람도 없었던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게 부당한가.
o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p21.
- 하지만 그 무례를 용서해주고 내 고통을 묵묵히 받아줄줄 알았던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어떠할 것인가. 충분히 그럴만한 관계에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이, 그 무례함에 자신이 다쳐버렸다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으며 논리적으로 반박한다면, 게다가 왜 지나간 사랑한테 화 한 번 못 내고 어설픈 자기한테 푸냐며 길길이 화를 낸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많이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대방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나오는 무례함을 용서하고 애닲아하는 것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은채, 상대방이 안스럽다거나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o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거야? p21.
- 질문이 잘못됐다. 오히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죽을 수 있는거야, 가 맞다. 여전히 살아있지 않은가. 소설 속의 문장대로 그런 질문은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p20)'니까.
o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해서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p23.
- 나의 경우 '사랑-실연-업무몰입'의 반복이다. 우연일지 몰라도, 아니면 평소에 내가 일을 쌓아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연을 겪고나면 일거리는 항상 많았다. 오히려 고맙다. 그다음 수순은 '체력저하'인데,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