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분노의 칼은 나의 내면을 향했다. 나는 나를 처형대에 세웠다. 그녀를 미워할 수 없으니 피고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 내가 무심코 했던 모든 발언, 모든 행동들이 심판대에 올랐다. 내가 했던 발언들을 복기해보니 거의 모든 발언들이 유죄였다. 어떤 발언들은 너무 감상적이었고, 어떤 발언들은 유치했으며, 또 어떤 발언들은 부적절했다. 술을 마신 것도 유죄, 손을 잡은 것도 유죄, 심지어 어디 사는지를 물어본 것조차 유죄였다. p177

- 그렇게 사랑의 상처는 안으로 곪아간다. 사랑에 실패한 영혼에게 동정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 관계가 끝난 후에도 철저히 '을'이 되어버린다. 하루 두 번씩 꼬박꼬박 휴가를 내야하나 고민을 하게되고, 수마에 빠진 듯 잠은 많아지며, 미안하게도 친한 사람들에게 날카로워진다. 나중엔 그래서 그 친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미안해진다. 존재의 무가치함도 느끼게 된다. 말이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지, 그 재판은 눈 깜짝하기도 전에 끝나고, 어느새 나는 집행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책을 더 읽어야 될지 고민이다. 민수는 지원을 만나게 될텐데. 소설 속 주인공한테도 난 열등감을 느낀다. (참고로 형사법정에서는 '피고'가 아닌 '피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냥 그렇다는거다.)

 

o 그러나 나는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수컷들이 우울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내 옆에 누워 있는 이 멋진 여자를 감당할 수 없다... ... "잘될 거야. 다 잘될 거야. 넌 늘 자신을 비하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겨우 시작이잖아. 이제 겨우 인생의 삼분의 일 지점을 지나왔을 뿐이야. 내가 네 편이 돼줄게." p276

- 드디어 민수가 지원과 섹스를 했다. 부럽다. 섹스를 했다는게 부러운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현재 그 자체에 전념할 수 있다는게 부러웠다. 그리고 그 후 찾아온 우울함을 내 사랑하는 사람이 함꼐 해 준다니. 그게 너무나도 부러웠다. 난, 아니 나와 만났던 여인들은 항상 미래를 걱정했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먼저 들었었다. 처음엔 상대방이 왜 걱정하는지 몰랐었다, 난 단순히 사랑하면 된다고 믿었었고, 모든 사람이 나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닌 사람이 훨씬 많았고, 내게 지원과 같은 여자는 없었다, 언젠가는 상대방이 좀 가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세자매가 한 방을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모를 안도감... 그런데 그 집에서 어릴적부터 살았으며, 그 중간에 집을 신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거뭇거뭇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네 편이 되어준다는 말, 이 말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들으면 어떨까? 난 네 편이야. 넌 잘 될거야.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말이지만, 그걸 말했던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의 편이 되어버렸던,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다. 이 말들, 언젠가 내가 들었던 "네 여자친구가 되어주고 싶어. 내가 지금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말이야."라거나 "내가 나이는 얼마 안 되지만 참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 명 있어. 그 중에 한 명이 너야. 자신감 100배 가져도 돼" 같은 말들,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말들인가. 하지만 그녀들은 역시 유일한 자기 편을 정한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괜찮다고 다 사랑에 빠지진 않는다. 그리고 내게 그런 말들을 해줬던 그녀들, 참 고맙고 감사하며 평생 친구로 옆에 두고 싶은 이들이다. 다만 나는 객관적으로 괜찮은 인간일지는 몰라도-그녀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싶지 않다- 주관적으로 괜찮은 인간이었던 적은 없었던게다.      

 

o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얼굴로 그녀에게 입맞추었다. 따뜻하고 촉촉하고 달콤했다. 멀리서 대형트럭의 경적소리가 길고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는 그대로 오래 있었다. p440

- 끝이다. 장편소설을 끝까지 본 게 얼마나 될까? 누구한테 그랬든 나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소설은 그 자체로 대단한거다. 결국 해피엔딩이군. 슬프게도 말이다. 민수는 좋겠지만 나는 슬펐다. 나보다 잘 난 놈이 또 한 놈 있었던거다. 수평적 비교프레임은 버리는 게 좋다지만. 세상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라 나는 문득 생각한다. 지금은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전자에 속한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줄 알았다. 대학 때는 내가 사법시험에 붙으면 생길 줄 알았다. 사법시험을 접고,  정말 운이 좋게도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데를 들어갔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곧 생길 줄 알았었다. 정말로 곧 생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 어머님의 반대로 헤어졌다. 그 사람에게 많이 매달렸었다. 나중엔 메일이 왔다. 이거 스토킹에 해당한단다. 아마 나는 그 사람이 아니면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냥 실패겠지, 라고 애써 넘겼다. 하지만 그 후로도 쭈욱 사랑은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내가 사법시험에 붙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을거라는 슬픈 결론을 떠올렸다. 내 머리 속에서 '연애에 대한 갈망'이라는 칩을 빼버리고만 싶다. 어쩌면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동정하듯 사랑해줘도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