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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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들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62일 첫 방을 시작으로 이제 3회째 방송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그것이다.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출연 소식에 어머, 이건 꼭 봐야해!”를 외치며 TV 앞에 앉았다가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가수 유희열, 작가 유시민, 작가 김영하, 과학자 정재승, 미식칼럼니스트 황교익, 총 다섯 사람이 매 회 국내의 한 지역으로 함께 떠나면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게임이나 개그 같은 예능적인 요소 없이 오로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크지만, 지식과 경험, 호기심이 풍부한 지적인 어른들의 대화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감탄이 나온다.

 

여기서 더 말하면 너무 길어지니 각설하고, 앞서 말했듯이 내가 <알쓸신잡>을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시민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출연이었다. 지식인으로 알려진 두 작가가 만나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했었다. 직접 본 결과 그 기대는 충족을 넘어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오직 이 두 작가들 때문은 아니었다.

 

회가 진행될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정재승 과학자. 낯익은 이름이라는 생각에 검색해보니 인기 도서였던 <과학콘서트><크로스>의 저자였다. 매회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은 물론 다른 출연자들까지 즐겁게 만드는 모습에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책을 출판한 사람이라 책을 고르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책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를 선택할 수 있었다.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와 영화에 숨겨진 인간과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영화 <메멘토>를 통해 기억상실의 유형과 이유에 대해 말하고, 영화 <인셉션>을 통해 꿈 조작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속에서도 인간과 과학을 찾아 말한다는 것이다.

 

매 주제마다 언급되는 영화와 과학지식은 사람의 지적욕구를 자극하고 충족시킨다. 새롭게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영화를 만나는 기쁨, 또 새롭게 알게 되거나 알고 있던 지식을 만나는 기쁨을 이 책은 끊임없이 선물해준다. ‘이 영화가 그랬어?’라는 생각, ‘이 영화가 그런 영화야?’라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영화를 찾아보게 하고, ‘그럼 이건 어떻지?’하는 생각에 호기심을 갖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하는 힘이 이 책에 있다.

 

물론 과학서적인만큼 그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읽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흥미를 갖고 있는 나마저도 유전자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버벅거리고 포기하고 버벅거리기를 반복했을 정도.(솔직해지자면, 끝내 포기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아무리 저자가 독자들을 생각해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쓴 책이라도 전문지식을 이해하는 것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 대한 총 평은, 만족. 나로서는 오랜만에 읽는 과학 서적, 그것도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 굉장히 재미있었다. 친구와 대화중에 이 책에서 본 것을 설명하고 책을 추천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끝으로 <알쓸신잡>의 시청자에게 하는 말인데, <알쓸신잡>의 정재승 과학자만 생각하고 이 책을 본다면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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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정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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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자신과 같은 삶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삶에서 목표를 얻기도 한다. 즉 책을 읽음으로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때론 그게 찾는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인위적일 때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희망이다. 책에서 찾은 희망이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흥미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공허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허나 이건 그나마 양호한 경우다. 어떤 책은 세드엔딩 속에서도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패닉'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또 심할 경우 타인의 삶을 엿본 대가로 자신의 행복마저 빼앗기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희망을 부정하고 산산이 부서뜨리는 듯한 책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 <애니>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책 역시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광기에 휩싸여 비참하게 죽어버린 어머니와 그로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여자, 트라우마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한물간 여배우, 불행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는 예비신부... 그 외에도 수많은 얼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은 어둠으로 막을 내린다. 그나마 희뿌연 불빛이 어른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딱 그정도까지다. 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의아했고 그 다음엔 공허했으며 끝내는 포기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를 되뇌이며 끝까지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책을 덮으려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어봤던 해설이 아니었다면 내게 이 책은 최악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소연씨의 해설은 이 책에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도와 절망, 심연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결핌과 공허를 똑바로 마주봄으로서 얻을 수 있는 희망, 온몸으로 아픔을 겪어내고 나서 만날 수 있는 희망.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바닥을 치는 과정만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그 때문에 희망을 보기가 어렵다. 바닥을 치는 것 역시 희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면 그만큼 깊고 섬세한 눈이 필요한 것이다.

 

소설과 해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혹은 해설이 있어 소설이 완벽해졌다, 라고 말한다면 건방진걸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내가 해설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성숙해졌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해설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다시 보게 됐고, 다시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또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책들을 떠올리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희망을 놓쳤던걸지도 모른다는 반성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을 보고 싶다면, 좀 더 깊은 생각과 눈을 가지고 싶다면, 두 사람이 함께여서 완벽한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희망을 부정하는 책의 존재 유무에 대해, 있다면 당신이 봤던 희망을 부정하는 책에 대해, 반대로 당신이 봤던 희망이 있는 책에 대해, 또 다른 형태의 희망에 대해.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이라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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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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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장-대개 출판사와 출판일등의 정보가 있는-을 넘기고 나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아쉽다' 혹은 ', 끝났다'라고. 쉽게 말해 감탄하거나 실망하거나다. 드물게 '이게 뭐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같은 반응을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이 책 <디어 랄프 로렌>을 읽었을 때의 첫 반응은 실망이었다. ‘이게 뭐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가 책을 덮음과 함께 든 생각이었다. ‘랄프 로렌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뒤쫓는 이야기의 흐름은 나도 모르게 그 뒤를 따라가고 있을 정도로 매끄럽지만 그 속에 남은 의문들이 가득했다. 이야기 속에서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는 랄프 로렌중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작가가 누구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랄프 로렌의 일생을 뒤쫓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 삶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 뒤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의 향연은 최악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뷰를 쓸 수 있게 만든 어떤 힘이 이 책에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심지어 랄프 로렌이라는 인물의 실재여부와 이게 소설인지 수필인지조차 모호한 책이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어려운 책이지만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오직 이 책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으로, 나는 텅 빈매력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 책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글로 가득 차 있다. 장장 352 페이지가 글로 빼곡하다. 이야기도 존재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별다른 반항 없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엘리트의 길만 걸어왔던 가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던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교수의 통보에 가까운 권유로 길에서 벗어나 헤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가 뒤쫓으며 하나씩 밝혀지는 랄프 로렌의 일생.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면 의 삶은 점점 알 수 없는 길로 사라져버리고 랄프 로렌의 삶은 다 드러난 듯 드러나지 않는다. ‘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랄프 로렌은 죽었다는 것 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야기가 있는데 이야기가 없는 느낌. 그야말로 텅 빈 느낌이다.

 

그저 책 한 권으로 시작해서 그 한 권으로 끝나버리는 책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 책은 내게 어떠한 울림도 여운도 남기지 못했다. 정말 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의 매력이자 신기한 점이었다. 목적지도 방향도 없이 나아가는 느낌. 책은 끝났지만 사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느낌. 그 텅 빈 느낌이 이 책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 누군가에게 이 책은 이래!”라고 말할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소설과 수필, 전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정도로 담담하면서, 의심하면서도 순순히 그 뒤를 따르게 할 정도로 매끄러운 글은 손보미라는 작가에게 감탄과 존경을 보내게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지만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텅 빈 느낌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던 그녀에게 경외의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허나 완벽한 책이었다거나 좋은 책이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곱씹어 생각해보기 전에 느꼈던 실망감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이런 책과 이런 작가가 있고 이런 매력도 있다고, 그러니 한 번 읽어보라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또 할 수 있는 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당신도 한 번 느껴보기를.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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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 일 있는 녀석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9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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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또래를 보며 감탄했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멋져보였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적극성과 능동성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몇 번 부모님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쓸데없는 짓 할 거면 공부나 해.”

 

당시에는 굉장히 기분 나빠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약 그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 알바들처럼 최저임금 미달, 임금 체불, 부당해고, 성희롱 등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비약 같지만 이게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은 그런 청소년 알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문제들-최저임금 미달, 임금 체불, 부당해고 외에도 초과노동에 대한 임금 미지불과 같은 문제들이 내용 전반에 걸쳐 보여 진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전혀 아니다. 사실 이 책은 17살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강후의 성장담에 더 가깝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강아지를 사주지 않자 자기가 직접 돈을 벌어 강아지를 사겠다며 알바를 시작한 강후. 자신이 이사해서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여자를 얕잡아보는 등 철이 없다 못해 보고 있으면 짜증나기까지 하는 존재가 바로 그다. 그런 그가 근처에서 일하는 알바생 두범, 은림, 보라와 친해지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또 알바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점점 변하게 된다. 눈에 띌 만큼 엄청난 변화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청소년 알바의 문제를 접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마지막에 강후와 친구들에게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집어넣음으로서 이 책을 그저 이야기로만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주제의 부족함은 이야기가 채우고 이야기의 부족함은 주제가 채우는 글이다. 주제로 인한 딱딱한 느낌을 톡톡 튀는 인물과 이야기가 해소시킨다. 톡톡 튀는 것이 너무 지나쳐 가끔 거부감을 일으키는 인물과 이야기는 명확하고 따뜻한 주제가 완화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알바 청소년들을 격려 응원코자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과 같은 입장에 처한 이들이 이 글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쓴 글처럼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노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법 괜찮은 책이라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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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입술이 낯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8
박상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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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강해지며 종일 퍼붓는다. 불빛으로도 다 몰아내지 못한 어둠 속에서 나는 가만히 숨죽인다. 한없이 가라앉은 기분. 공간 속에 갇힌 나는 유리창 너머를 내다본다. 빗줄기가 국수 가락이나 되듯이 하나, , ……, 세어 나간다. 하지만 스물일곱, 아니 스물다섯도 채 세지 못하고 멈춰서고 만다.

 

<저 입술이 낯익다>의 주인공은 정확히 스물일곱 줄기를 센다. 현재 자신의 나이,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자신이 견디어낸 세월 속에 갇혀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책 첫 페이지에서부터 스스로를 자신의 반지하 방 어둠에 묻어두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세상이란 딱 그 정도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이 책은 굉장히 좁은 시각만을 보여준다. 불친절하고 어렵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고 또 만나면서도 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1, 2, 3이라고 부른다. 책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짧은치마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게다가 그 모두는 상대방의 이해정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각자 자기 할 말만을 늘어놓는다. 주인공이 모두들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고 말한 것처럼, 심지어 주인공 그 자신마저도 똑같이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거나 공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이다.

 

내가 이 이야기의 끝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 책을, 그를 알 수가 없었다. 한권의 책을 다 읽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감정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걸음을 따라 친구들과의 만남, 버스에서의 인연, 목우암에서의 재회 등을 함께 하지만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주인공이 불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은 사람이 나 여서일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은 딱 그 정도이고, 나의 시각은 딱 그 정도만큼 좁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일곱 줄기까지밖에 세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스물일곱 줄기조차 세지 못하는 사람임으로. 그리고 그가 센 줄기와 내가 센 줄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것임으로.

 

결국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정말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둠 속을 유영하던 스물일곱의 청년이 제 속에 숨어있던 빛을 찾는 이야기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책의 마지막 줄인 비 개인 봄날 저녁이었다.”라는 문장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수 있는 만큼 보일 거라는 것. 그러니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면 꼭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서로가 보는 세상을 통해 좀 더 시각이 넓어진다면 함께, 보다 아름다운 비 개인 봄날 저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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