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입술이 낯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8
박상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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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강해지며 종일 퍼붓는다. 불빛으로도 다 몰아내지 못한 어둠 속에서 나는 가만히 숨죽인다. 한없이 가라앉은 기분. 공간 속에 갇힌 나는 유리창 너머를 내다본다. 빗줄기가 국수 가락이나 되듯이 하나, , ……, 세어 나간다. 하지만 스물일곱, 아니 스물다섯도 채 세지 못하고 멈춰서고 만다.

 

<저 입술이 낯익다>의 주인공은 정확히 스물일곱 줄기를 센다. 현재 자신의 나이,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자신이 견디어낸 세월 속에 갇혀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책 첫 페이지에서부터 스스로를 자신의 반지하 방 어둠에 묻어두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세상이란 딱 그 정도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이 책은 굉장히 좁은 시각만을 보여준다. 불친절하고 어렵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고 또 만나면서도 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1, 2, 3이라고 부른다. 책 어디에도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짧은치마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게다가 그 모두는 상대방의 이해정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각자 자기 할 말만을 늘어놓는다. 주인공이 모두들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고 말한 것처럼, 심지어 주인공 그 자신마저도 똑같이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거나 공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는 모양이다.

 

내가 이 이야기의 끝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형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 책을, 그를 알 수가 없었다. 한권의 책을 다 읽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감정을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걸음을 따라 친구들과의 만남, 버스에서의 인연, 목우암에서의 재회 등을 함께 하지만 그의 시선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주인공이 불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은 사람이 나 여서일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은 딱 그 정도이고, 나의 시각은 딱 그 정도만큼 좁기 때문이다. 그가 스물일곱 줄기까지밖에 세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스물일곱 줄기조차 세지 못하는 사람임으로. 그리고 그가 센 줄기와 내가 센 줄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것임으로.

 

결국 내가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정말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둠 속을 유영하던 스물일곱의 청년이 제 속에 숨어있던 빛을 찾는 이야기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책의 마지막 줄인 비 개인 봄날 저녁이었다.”라는 문장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수 있는 만큼 보일 거라는 것. 그러니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면 꼭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서로가 보는 세상을 통해 좀 더 시각이 넓어진다면 함께, 보다 아름다운 비 개인 봄날 저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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