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키라 지음, 홍성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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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만성 피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단 한순간도 피곤하지 않은 때가 없다. 가장 활발해야 할 낮 시간에도 반쯤 감긴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커피와 에너지 음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주말과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삼림욕을 하고 휴식을 취해도 피로는 가시지 않는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에 너도 나도 공감을 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넘쳐날 지경이다. 정보과잉 시대인 만큼 온라인 매체에서, 책에서,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수많은 방법들이 정론처럼 이야기된다.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만성피로만 쳐도 뜨는 글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거나 홍보성 강한 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믿을만한 정보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방법이 너에게도 맞으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 <최고의 휴식>도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중 하나다. 좀 신랄하게 말하자면 넘쳐나는 정보 속에 또 하나의 정보가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바로 과학적 연구로 그 원리와 효과가 증명된 마인드풀니스라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거나 뜬구름 잡는 식의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다른 방법들과는 달리 공신력을 갖추고 있다.

 

작가는 먼저 우리의 뇌가 의식적인 활동, 쉽게 말해 의도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작동하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로해 진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쉬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의 뇌가 우리로 하여금 지쳤다고 느끼게 만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몸을 쉬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뇌를 쉬게 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낯설고 의심이 가는 말이지만 뇌과학을 연구한 사람답게 실제 연구 결과들을 이용해 자신의 말을 뒷받침한다.

 

본격적인 최고의 휴식법에 대한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게 이 책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인데, 가상의 인물과 공간, 상황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최고의 휴식법을 알려주는 방법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책들이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딱딱한 줄글로 압박감을 주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사람들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여기서는 마인드풀니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주인공과 그를 이끌어주는 스승이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고 점점 더 긍정적인 변화를 맞는다. 중간에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 그리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있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단순하다 못해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을 더욱 쉽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만 볼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작가가 뇌과학을 연구한 사람이기도 하고 마인드풀니스가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과학과 관련된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그게 공신력을 높이는 장점도 되지만 비전공자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집중해서 읽다 보면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휴식법을 알 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뇌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의심할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데로 한다고 해서 피로가 해소될까?’ 하고. 책에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불신하고 반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심만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인공은 문제가 바로 앞에 닥쳤기 때문에 거의 어쩔 수 없는 수준으로 스승의 이야기에 따랐으며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이 책을 읽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책에 따라 시도해 보는 것. 그게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알아보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나는 단지 내가 내 몫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한 발짝 내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한 발짝을 내딛길 바랄 뿐이다.

 

 

 

 

P.S.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작가의 소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를 읽을 때는 몰랐는데, <최고의 휴식>을 읽고 나니 소설에서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 앞에 나타난 말하는 고양이가 주인공에게 가르쳐주는 행복해지는 방법이 이 마인드풀니스와 비슷하다. “지금 여기, 현재에 집중하라는 큰 명제는 물론 그를 위한 세부적인 방법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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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 날_안아_주었던_바람의_기억들
안시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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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한 책을 발견했다. 신간 에세이 란에 있는 따끈따끈한 신작이었는데, 표지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끝이 내려간 순한 눈매, 노란 막대과자를 먹기 위해 크게 벌린 입. 전체적으로 귀엽고 앳된 모습이었다. 거기에다가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라는 제목까지, 모든 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기자기한 표지였다.

 

그길로 펼쳐든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겁 많은 작은 소녀가 세계여행을 떠나기까지의 두려움, 그리고 세계를 누비며 느낀 눈물, 슬픔, 감동, 행복.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작은 인연도 소중히 품에 안는 예쁜 마음, 여행이 지속될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소녀의 모습이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녀, 아니 작가의 글에 이런 여행도 있구나, 이런 글도 있구나, 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안시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그녀의 책이 나올 때 마다 꼬박꼬박 읽는 팬이 되었다. 그래봤자 2권이 전부인데다가 두 번째 책인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은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그녀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실망했지만(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녀와 관련된 SNS 페이지와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꾸준히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번 그녀의 신작 소식, ‘안시내라는 이름을 단 세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에 굉장히 기뻤다. 더군다나 좋은 기회로 책을 얻을 수 있었고, 기대감에 잔뜩 들떠서 책을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좋았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에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담겨있었다. 작가는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품 안 가득 인연을 품었으며, 보다 예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하는 여행에 대해, 혼자 떠났지만 결국은 우리가 되는 여행에 대해 그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사진 한 장 한 장, 문장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그런 글이었다.

 

이런 철없는 인생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내 인생이 실패로 굴러가도 좋다고. 그럼 내가 실패의 표본이 되어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겠냐고. 어찌 됐든 의미가 있는 삶일 거라고.(37p)” 말하는 그녀. 어린 시절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아픔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그녀. 3년 전에 만났던 한 아이를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로 존재할 수 있게 하고 또 그것이 그 아이의 사랑스러움이라고 말하는 그녀. 한없이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줄 주 아는 그녀. 눈과 가슴과 추억에 담긴 소중한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풀어 읽는 이들에게 선물해주는 그녀. 정말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한동안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이 벅찬 마음을 작가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당신의 글을 좋아한다고,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마음을 좋아한다고.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하고 믿는다고. 책 속에서 그녀의 인연이 그녀에게 건넨 쪽지처럼 나 역시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여행, 인연, 행복, 따뜻함, 그 어떤 키워드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글, 그런 책. 늘 그래왔듯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지체 없이 그녀의 책과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러한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보다 많은 이들이 그녀와 그녀의 책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고 좋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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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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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알게 된 학문 중에 인지과학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 인지과학,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데다가 그 정의도 제각각이라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자면 이렇다. '인지과학'은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즉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껴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고, 졸업논문도 이쪽으로 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참 쉽지 않다. 분명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고(철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 끝이 명확하지 않아 의문만 남을 때가 많으며(대개 "A라는 주장과 B라는 주장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으며, 연구 중에 있다"라고 마무리한다), 글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부족함을 느끼고('에이 설마. 진짜?') 직접 실험을 하기엔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대학원생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트래커라는 기계를 이용한 실험을 몇 번 해봤는데, 결과를 해석해내는 방법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누가 인지과학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쉽게 입을 떼지 못할 정도라 내가 이 분야를 공부하고 또 알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좀 민망하다(논문. 이대로 괜찮은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인지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났고, 그 영향으로 관련 서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전공자가 아니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책들도 있다. 물론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한 장을 읽는 것도 고역이겠지만(사실 관심이 있는 사람도 쉽지만은 않다), 나로서는 존재 자체가 반갑고 또 고맙다. 얼마 전에 읽은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가 그랬고, 이번에 읽은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 사람과 세상의 관계 맺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목록부터가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왜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인지하는가" 같은 것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의문을 가졌을만한 요소들인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고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저자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과 의문이 그 속에 담겨 있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다. 특히 저자의 아들 태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또래의 아이들과 아기 코끼리를 보며 "태오야!"라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귀여운 것은 물론 사람이 나와 너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의 시초로 손색이 없다. 커피 광고에 얽힌 저자의 웃픈 사랑고백이나 독한놈으로 불렸던 저자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동안 논쟁거리로 떠오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원피스의 색깔이나 젖소 클리커 등의 이야기가 재미를 더한다. EBS를 통해 많이 알려진 보이지 않는 고릴라나 3의 법칙 같은 것들은 독자들을 책에 더 가깝게 끌어당긴다. 이 모든 걸 통틀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정말이지 능력 있는 작가가 쓴 잘 짜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인지과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또 인지과학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이 책의 첫 번째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경험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때로, 그리고 자주 남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잊어버리는데, 우리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면 그 차이를 보다 수월하게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 안다면 최소한 분통을 터트리며 상대방과 절연을 선택하는 대신 마음을 다스리며 대화를 시도 해볼 수 있을거라는 것이 내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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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키큰나무 1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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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고양이 여행 리포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우연히 집어 들었던 책이었는데,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었다. 사랑스러운 고양이 나나가 들려주는 사토루와의 마지막 여행은 빨갛다 못해 부어버린 눈과 진한 감동을 남겼고, 나는 친한 동생의 생일선물로 지체 없이 이 책을 골랐었다. 제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먹먹함이 아직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슴 따뜻한 책이었다.

 

그때 이후로 고양이와 관련되어 있거나 제목에 고양이가 있는 책이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보는 것만으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고양이 사진집부터 고양이와 집사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코데마리 루이 작가의 책 제목처럼 고양이 모양을 한 행복으로 가득 찬 소설까지. 나중에는 고양이가 있는 책 중에 별로인 것은 없다는 이상한 편견(?)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번 책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읽게 된 이유 역시 고양이 때문이었다. 제목에 선명하게 들어가 있는 고양이라는 세 글자가 내 시선을 붙잡은 탓이었다. 연분홍색 표지 여기저기에 있는 자그마한 고양이 그림이나 낮은산이라는 정감 가는 출판사 이름, 그리고 저자이름에 쓰여 있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의 이름을 본 것은 모두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살펴봤을 정도로 이 책은 매력적이었으며, <고양이 여행 리포트>이후로 또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으로 등극하게 됐다.

 

이 책에는 고양이와 사람 각자의 사연과 함께하는 삶이 담겨있다. 고양이의 눈에서 사람의 눈으로, 그리고 다시 고양이의 눈으로 옮겨가며 아픔과 슬픔, 위로와 치유, 사랑과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읽다보면 어느새 웃다가 울다가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고양이의 위로를 받은 저자의 경험이 듬뿍 들어가 있는 만큼 고양이와 사람의 이야기 모두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축약되지 않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져 있다. 책 속에 담긴 만남과 이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고양이도 사람도, 이야기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읽는 이를 매료시킨다. 성급하게 행복을 말하는 책들과는 달리 시간을 두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뽑으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시점의 변화이다. 이 책은 한 명 또는 한 마리를 대표로 정해놓지 않고 시점이 계속해서 바뀐다. 기존의 시점들과는 완전히 다른, 예를 들어 아예 다른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로 시점이 넘어갈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 같은 사실이 초반에는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응하기만 하면 굉장히 매력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과 이야기를 들으며 독서를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고양이와 사람이 대화한다는, 판타지스러운 요소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데 이게 거북스럽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실제로도 가능한 일 일거라고 생각될 정도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안 될 것은 없다. 우리가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고양이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은 것을 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단순히 고양이와 사람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슬픔과 아픔, 그리고 행복을 나누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 또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이 책 한권에 모두 담겨있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많은 것을 느꼈고,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자극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을 한 번 맛보게 된다면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말 좋은 책이었고,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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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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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세계여행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몇 년 전 부터 여행에 꽂혀버린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두 다리로 걸으며 수많은 것을 경험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기에 우리는 늘 가슴 현 켠에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실재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직장을 다녀야 함으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기 때문에 등 온갖 현실적인 문제와 힘들 것 같아서, 무서워서,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등 심리적인 문제들이 겹쳐 발목을 잡는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면서도 선뜻 떠나올 수 가 없는 것이다. 특히 나같이 겁이 많은 사람은 사진과 글로 남의 여행을 엿보거나 이따금 패키지를 뒤적거리는게 전부이다.

 

그렇게 직접 떠날 용기 없이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대리만족만 하던 내게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공항에서 홀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겁이 많은 사람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세상을 돌아보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발을 내딛었다는 것. 350만원이라는, 세계여행비로 봤을 때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떠나왔다는 등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141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꿋꿋하게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었다는 것. 한없이 열려있다가도 한없이 닫혀버리는, 한없이 밝다가도 한없이 어두워지는 모순적인 성격임에도 온전히 그 모든 것을 가슴에 품으며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며 감사하고 행복해 했다는 것. 하나하나 꼽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감동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 두 가지를 뽑자면 나는 그녀의 시선과 변화라고 하고 싶다. 사람을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은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중히 보듬고 품에 안았다. 좋지 않았던 인연도, 아쉬운 인연도, 미안함과 애틋함으로 남았던 인연도 모두 책 속에 풀어내며 간직하는 모습은 내 마음까지도 울릴 정도였다. 그녀와 그녀가 만난 인연들을 나 역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리고 그를 위해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예뻐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이 계속될수록,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는 작가의 모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그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녀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에서 작가가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음을, 보다 꽉 차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그녀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저 작가와 독자로 이어진 이 얇은 관계에도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박수와 함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른 여행 에세이들과는 다르게 여행지에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 속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본래의 목적이었던 대리만족을 위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아니 대리만족을 위해 읽었다가 오히려 가슴에 더 큰 불을 품게 되었다. 어떠한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떠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마력이 그 속에 있었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이자 감동이었고,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던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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