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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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섭(344): 내가 이 책을 통해 의도한 것은 인간이 몇몇 문화권 관습을 언제 획득했는지에 관한 신화들을 깨려고 한 것뿐이다.

Ridley(249): This book has in passing tried to nail some myths about when we adopted our cultured habits.

l  “한 것뿐이다”를 보면 신화를 깨는 것이 이 책의 주된 테마인 것 같다. 하지만 원문에는 “in passing(지나가는 길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l  “cultured”는 “몇몇 문화권”이라는 뜻이 아니라 “교양 있는” 또는 “고상한”이라는 뜻이다.

 

 

 

신좌섭(345): 남부와 북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서로 유전자가 섞여 있는 같은 이탈리아인이 그저 역사적 사건만으로 그토록 이질적으로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부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군주와 대부의 사회이지만, 북부는 강력한 상인들의 사회이다.

Ridley(250): That is why two such similar peoples as the north Italians and the south Italians, equipped with much the same mixtures of genes, have diverged so radically simply because of a historical accident: the south had strong monarchies and godfathers; the north, strong merchant communities.

l  원문에는 “남부와 북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에 해당하는 구절이 없다.

l  “mixtures of genes”를 “서로 유전자가 섞여 있는”으로 번역했다. 여기서 “mixtures of genes”는 남부와 북부의 유전자가 섞였다는 뜻이 아니라 “유전자 조합”이라는 뜻이다.

l  “merchant communities”는 “상인들의 공동체”라는 뜻인데 “공동체”를 빼먹었다. 여기서 상인 공동체 즉 길드와 같은 것이 논지에서 중요하다. “community”를 “사회”라고 번역한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군주와 대부의 사회이지만”에도 “사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좌섭(345): 인간의 정신에서도 아주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Ridley(250): Indeed, larger parallels spring to mind.

l  “spring to mind”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했는데 마음에 떠오른다는 뜻이다. 비슷한 예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다.

 

 

 

신좌섭(346):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와 프랑스나 중국처럼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나라의 커다란 차이는 후자가 강력한 위계 질서에 중독되어 있는 데서 비롯된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고 있다.

Ridley(251): Francis Fukuyama argues unconvincingly that there is a broad difference between successful economies such as America and Japan and unsuccessful ones such as France and China because of the latter’s addiction to hierarchical power structures.

l  “argues unconvincingly”를 거의 반대로 번역했다. 회의를 제기한 것은 후쿠야마가 아니라 글쓴이인 리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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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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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나누기를 원문과 다르게 했다. 원문에서 나누지 않은 곳에서 나눈 곳이 수도 없이 많다. 문단 나누기에도 글쓴이의 의도가 녹아 있다. 왜 그것을 무시하면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김명남(15) : 라틴어 교사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 먼 일이라면,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근세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20세기 유럽사를 가르치려는데, 튼튼한 조직에 탄탄한 자금에 정치적 완력까지 갖춘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 집단이 수업을 보이콧하거나 야유를 퍼부어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Dawkins(3) : If my fantasy of the Latin teacher seems too wayward, here’s a more realistic example. Image you are a teacher of more recent history, and your lessons on twentieth-century Europe are boycotted, heckled or otherwise disrupted by well-organized, well-financed and politically muscular groups of Holocaust-deniers.

l  “wayward”를 “먼 일”로 번역했는데 “억지스러운”이 더 나은 것 같다.

l  “more recent history”는 “근세사”가 아니다. 20세기 역사를 근세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좀 더 최근의 역사”다.

l  otherwise disrupted”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김명남(17) : 그 대학의 대변인들은 진화론이 성경적 창조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신념의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Dawkins(5) : It is not, as spokesmen for the college maintain, a ‘faith position’ in the same category as the biblical account of creation which has a different function and purpose.

l  여기에서도 “faith”는 “신념”보다는 “믿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l  “성경적 창조론”보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더 낫다.

l  뒷부분에서는 그냥 “창조론”이라고 번역했는데 “성경의 창조 이야기”라고 명시해야 한다. 도킨스와 자유주의적 성직자들은 뭔가를 상징하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글자 그대로 세상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창조론”을 구분하고 있다.

 

 

 

김명남(21) : 청중 앞에서 “여러분은 할 것은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야고보서> 5 12_옮긴이)”라고 말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엄청나게 널리 퍼진 대중적 몰이해를 바로 잡고, 과학자들과 과학 교사들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일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Dawkins(8) : Shouldn’t you take greater care, when speaking in public, to let your yea be yea and your nay be nay? Lest ye fall into condemnation, shouldn’t you be going out of your way to counter that already extremely widespread popular misunderstanding and lend active and enthusiastic support to scientists and science teachers?

l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하게 번역했다. ‘라고 말하고 아니오아니오라고 말하라고 나온다. 이것은 신이 아담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창조 이야기는 상징일 뿐이라고 신도에게 분명히 말하라는 뜻이다. 야고보서의 말을 실천하라는 뜻이지 야고보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에도 자세한 것은 원서의 7-8쪽의 내용을 참조하라.

 

 

 

김명남(22) : 모종의 설명으로 제공된 어떤 사상들이나 진술들의 체계, 또는 일군의 사실들과 현상들에 대한 해설.

Dawkins(9) : A scheme or system of ideas or statements held as an explanation or account of a group of facts or phenomena;

l  “idea”를 “사상”이라고 번역했는데 “생각” 또는 “아이디어”가 더 적절하다. “사상”은 이데올로기나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l  문장 구조를 잘못 파악했다. A scheme or system of ideas or statements held as (an explanation or account of a group of facts or phenomena)”로 묶이는데 “(A scheme or system of ideas or statements held as an explanation) or (account of a group of facts or phenomena)”로 묶이는 것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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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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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나누기를 원문과는 다르게 했다. 원문에서 나누지 않은 곳에서 나눈 곳은 수도 없이 많고, 원문에서 나눈 곳을 나누지 않는 곳도 꽤 있다. 문단 나누기도 글쓴이의 의도다. 왜 그것을 무시하고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 문장은 반드시 한 문장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수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원문의 문체를 어느 정도 존중하면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연체는 만연체로 번역하고 간결체는 간결체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한 문장을 한 문장으로 번역해야 한다. 이 번역서에서는 상습적으로 한 문장을 두 문장이나 세 문장으로 쪼개서 번역했다. 문학 작품이 아니라면 문체를 완전히 무시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현욱(16) : 주먹도끼를 잡았던 손은 오늘날 마우스를 쥐는 손과 똑같이 생겼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먹을거리를 찾고, 섹스를 갈망하며, 자손을 돌보고,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며, 고통을 기피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Ridley(2) : Just as the hand that held the hand axe was the same shape as the hand that holds the mouse, so people always have and always will seek food, desire sex, care for offspring, compete for status and avoid pain just like any other animal.

l  충분히 한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세 문장으로 나누어서 번역했다. 게다가 원문의 “Just as”를 무시했다.

l  원문에 두 번씩이나 나오는 “always”를 빼 먹었다.

l  원문에는 없는 “지금도 그러하며”가 삽입되었다. 이런 군더더기는 굳이 없어도 된다.

l  “just like any other animal”를 엄밀하게 번역하자면 “다른 동물들과 꼭 마찬가지로”다. “다른 동물들처럼”이라는 번역은 “just”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조현욱(16) : 지구상에서 가장 깊숙한 오지로 여행을 간다 해도 당신은 예상할 수 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노래, 웃음, 연설, 성적 질투심, 유머감각과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중 어떤 특징도 침팬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Ridley(2) : You can travel to the farthest corner of the earth and still expect to encounter singing, smiling, speech, sexual jealousy and a sense of humour – none of which you would find to be the same in a chimpanzee.

l  the same”을 빼 먹고 번역했다. 침팬지에게서는 인간의 것과 똑같은 형태로는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인데 아예 찾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침팬지 사회에도 성적 질투가 있다. 지위가 높은 수컷은 지위가 낮은 수컷이 암컷과 성교를 하려고 하면 가만 두지 않는다. 다만 침팬지의 성적 질투는 인간과 양상이 다를 뿐이다.

l  “smiling”을 “웃음”으로 번역했는데 “미소”가 더 엄밀한 번역이다.

 

 

 

조현욱(16) : 32,000년 전 프랑스 쇼베 동물에 코뿔소를 그린 사람을 생각해 보자. 만일 만날 수 있다면, 그가 심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지금의 우리와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Ridley(2) : If I could meet the man who painted exquisite images of rhinos on the wall of the Chauvet Cave in southern France 32,000 years ago, I have no doubt that I would find him fully human in every psychology way.

l  “exquisite”를 빼 먹었다.

l  “southern”을 빼 먹었다.

l  “fully human in every psychology way”은 심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온전한 인간이라는 뜻이지 “심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지금의 우리와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수만 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심리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현대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리들리는 환경 차이가 심리적 차이는 조금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보는 무지막지한 선천론자는 아니다.

 

 

 

조현욱(17) : 농업, 도시, 상업, 산업, 정보 혁명도 없다.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대공황, 내란, 내전, 냉전, 문화전쟁, 신용 붕괴는 말할 것도 없다.

Ridley(3) : They do not experience agricultural, urban, commercial, industrial and information revolutions, let alone Renaissances, Reformations, Depressions, Demographic Transitions, civil wars, cold wars, culture wars and credit crunches.

l  “Demographic Transitions”는 “내란”이 아니라 출생률과 사망률이 낮아지는 것을 말하며 보통 “인구학적 추이”로 번역한다. http://en.wikipedia.org/wiki/Demographic_transition

l  “credit crunches”를 “신용 붕괴”로 번역했는데 “신용 경색”또는 “신용 위기”가 더 적절하다. 신용 체제가 무너졌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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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1 대우학술총서 구간 - 과학/기술(번역) 5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병훈 옮김 / 민음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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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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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이병훈, 박시룡 옮김)』 번역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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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I, II,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병훈·박시룡 옮김, 민음사, 1992, 축소판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I, Edward O. Wilson, Belknap Harvard, 25th anniversary edition, 2000

 

 

 

번역본은 축소판인 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원서는 원판이다. 하지만 번역을 검토한 부분은 원판과 축소판이 똑같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인간의 사회행동에 관한 장(이 축소판에서는 제26)은 그것이 주는 비상한 흥미와 해설로 말미암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사회생물학 I, 3)

 

 

 

옮긴이 이병훈은 이 책을 번역함으로써 사회생물학을 최초로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많은 분량과 내용의 어려움으로 결국 책이 출간된 것은 1992 12, 번역을 시작한 지 8년만이었다. 내용이 생물학의 여러 분야는 물론 철학, 사회학까지 걸쳐 있어서, 후자에 어두운 옮긴이들에겐 걸리는 데가 많아 문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사회생물학 대논쟁』, 176, 이병훈의 글 중 『사회생물학 I, II』 번역 출간에 대한 이야기)

 

고난의 행군 좋아하시네. 당신들이 엉터리로 번역한 덕분에 고난의 행군은 이 번역본을 읽을 독자들이 하게 생겼다. 철학과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번역이 어려웠다고? 내가 보기에는 기본적인 영어 실력이 부족하거나 너무 성의가 없어서 번역이 개판이다.

 

한국어판 기준으로 5쪽 정도 번역을 검토하다가 더 이상 검토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아래에 있는 상세한 번역 비판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생물학 대논쟁』에 실린 이병훈의 글을 보면 자신이 사회생물학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써서 논쟁에 기여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나는 이병훈의 글을 본 기억은 없다. 당장은 “번역이나 제대로 하시지”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물론 번역을 개판으로 한다고 글도 개판이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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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박시룡(641): 거시적 관점에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각각 생물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고, 역사, 傳記 그리고 픽션은 인간사회학에 대한 조사서가 되며, 또 인류학과 사회학은 단 한 종의 영장류에 관한 사회학이 된다.

Wilson(547): In this macroscopic view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shrink to specialized branches of biology; history, biography, and fiction are the research protocols of human ethology; and anthropology and sociology together constitute the sociobiology of a single primate species.

l  this macroscopic view”에서 “this”를 빼먹고 “거시적 관점”이라고 번역했다. 그냥 거시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in the free spirit of natural history”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this”도 빼먹지 않고 번역해야 한다.

l  “humanity”는 “인문과학”보다는 “인문학”이 어울린다. 예컨대 도덕 철학이나 예술 비평은 인문학에 속하지만 인문 과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l  “specialized branches”를 그냥 “한 분야”라고 번역했다. “specialized”를 빼 먹었다.

l  “research protocol”을 “조사서”라고 번역했다. “연구 계획안”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시안이라는 뜻으로 쓴 것 같다.

l  “human ethology”를 “인간사회학”이라고 번역했다. ethology”는 “사회학”이 아니라 “행태학” 또는 “동물행동학”이다.

l  “sociobiology(사회생물학)”를 “사회학”이라고 번역했다. 실수로 보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실수가 너무 많이 나온다.

 

 

 

이병훈·박시룡(641): 아프리카에 일찌기 호모가 살았던 것 외에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類人猿이 살았을 당시 2종 또는 그 이상의 人科의 種들과 함께 존재했었다.

Wilson(547): Two or more species of hominids did coexist in the past, when the Australopithecus man-apes and possibly an early Homo lived in Africa.

l  “possibly”를 빼먹었다. 원문의 조심스러운 표현이 단정적 표현으로 바뀐 것이다.

l  “man-apes”를 “類人猿(유인원)”으로 번역했다. 엄밀히 번역하자면 “인간-유인원”이다. 인간과 유인원의 중간이라는 뜻인 듯하다.

l  “early”를 “일찌기”라고 번역했다. “살았던”을 꾸미는 말로 잘못 안 것이다. early Homo가 한 쌍이며 “초기 호모”라는 뜻이다.

 

 

 

이병훈·박시룡(641): 그러나 그 가운데 오직 하나의 진화 계통만이 후기 빙하기까지 생존하여 가장 발달한 인간의 사회적 특성의 출현에 참여했다.

Wilson(547): But only one evolving line survived into late Pleistocene times to participate in the emergence of the most advanced human social traits.

l  “Pleistocene”는 “빙하기”가 아니라 “홍적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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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트러블 -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
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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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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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옮긴이 소개란을 살펴보자:

 

경희대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대학교 관광영어통역학과와 성신여대 영문학과, 한신대 영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경희대 인문학연구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 여성주의로 읽어본 대중문화』(공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공저) 『새 여성학 강의 한국사회, 여성, 젠더(공저) 『여성의 몸 시각, 쟁점, 역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안티고네의 주장』 『포스트모던 사상상』(공역) 등이 있다.

 

 

 

버틀러의 글이 난해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초판 서문>의 문장 자체는 별로 난해하지 않다. 그런데도 조현준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문장 구조를 해석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다. 8(원문 기준)도 안 되는 분량에서 내가 지적한 오역만 17개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 경희대 영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조현준이 대단한 건지 경희대 영문학과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 경희대, 성신여대, 한신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조현준이 대단한 건지 경희대, 성신여대, 한신대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 그 어렵다는 버틀러의 글을 번역해서 출간했다고 하니 조현준이 대단한 건지 <문학동네>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이런 영어 실력으로 그 어렵다는 버틀러를 공부해서 연구서까지 출간했다고 하니 조현준이 대단한 건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을 출간한 <한국학술정보>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버틀러의 글이 쓸모 없는 횡설수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현준이 아무리 오역을 많이 해 봤자 하나의 횡설수설을 또 하나의 횡설수설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버틀러를 대단한 여성주의(feminism) 이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번역서를 열심히 정독하면서 버틀러를 논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나까지도 씁쓸해진다.

 

이 번역서를 읽는 사람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버틀러의 횡설수설이 그 하나의 고통이요, 조현준의 왜곡이 또 하나의 고통이다. 번역서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보아도 그것이 도대체 버틀러의 멍청함에서 나온 것인지 조현준의 멍청함에서 나온 것인지 알 길이 없으니 독자들만 불쌍하다.

 

 

 

Butler(xxix) : Contemporary feminist debates over the meanings of gender lead time and again to a certain sense of trouble, as if the indeterminacy of gender might eventually culminate in the failure of feminism.

조현준(73) : 젠더의 의미를 둘러싼 현대 페미니즘 논쟁은 이 시대를 이끌다가 다시 특정한 의미의 트러블에 도달했다. 마치 젠더의 불확정성이 결국 페미니즘의 실패를 보여주는 정점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l       lead time(시대를 이끌다가)이 아니라 time and again(되풀이해서)이 한 묶음이다.

l       결국 페미니즘의 실패를 보여주는 정점이라도 아니라 결국 페미니즘의 실패에서 정점을 이루기라도(불확정성이 아주 심해지면 결국 페미니즘이 실패하기라도)이다.

 

 

 

Butler(xxix) : To make trouble, within the reigning discourse of my childhood, something one should never do precisely because that would get one in trouble. The rebellion and its reprimand seemed to be caught up in the same terms, a phenomenon that gave rise to my first critical insight into the subtle ruse of power:

조현준(73) : 내가 어렸을 때 지배적인 담론에서는 트러블을 일으키면 누군가가 곤경에 빠지게 되므로 아무도 트러블을 일으켜선 안 되었다. 반동과 그에 대한 비난은 같은 관점에서 파악되는 듯했는데, 이는 아마도 권력의 미묘한 책략에 대한 나의 최초의 비평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현상이었던 것 같다.

l       곤경에 빠지는 사람은 누군가가 아니라 트러블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말썽(trouble)을 일으키면 스스로가 곤경(trouble)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l       rebellion반동이 아니라 반란 또는 반항이다. 성 차별적인 기존 체제에 반항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반동이 아니라 진보다.

l       여기서 term관점이 아니라 단어(용어)라는 뜻인 듯하다. 반항(rebellion)trouble(말썽 일으키기)이라는 단어로 포착되고, 질책(reprimand)trouble(말썽을 일으킨 사람이 곤경에 빠지기)이라는 단어로 포착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l       insight관심이 아니라 통찰이다.

 

 

 

Butler(xxx) : For that masculine subject of desire, trouble became a scandal with the sudden intrusion, the unanticipated agency, of a female object who inexplicably returns the glance, reverses the gaze, and contests the place and authority of the masculine position.

조현준(74) : 남성적 욕망의 주체 때문에 트러블은 이제 여성 대상이라는 예기치 못한 작인(作因)의 갑작스러운 침범을 받아 스캔들이 되어버렸다. 이 여성 대상은 불가해하게 시선을 뒤집고, 응시를 역전하고, 남성적 지위의 권위나 장소에 저항한다.

l       남성적 욕망의 주체 때문에 아니라 남성적 욕망의 주체에게는이다.

l       시선을 뒤집고 아니라 시선을 되돌려주고이다.

l       여기서 contest저항이 아니라 경쟁이다. 남성적 지위나 권위를 차지하기 위해 여자들도 경쟁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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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2011-08-02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종종 들리겠습니다,,흥미진진합니다ㅎㅎ

리버 2011-08-0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격적인 비판에 비해서 평점 별둘은 너무 후한 평가 아닌지요ㅎㅎ

이덕하 2011-08-02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기준으로 평점을 매겼습니다.

비로그인 2018-10-1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모없는 횡성수설을 다시 횡설수설로 번역한 책 ^^ - 공감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