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하누 어스시 전집 4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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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의 마법사 3권 <머나먼 바닷가>에서 대현자 게드는 악의 세력과 맞서싸워 세계의 파멸을 막는다. 하지만 그 결과 모든 힘을 소진하고 마법의 힘을 잃고 만다. 어스시 시리즈 4권 <테하누>는 악의 세력이 세계의 질서를 뒤틀어 대고, 게드가 거기에 맞서 싸울 즈음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하누는 시리즈 2권 <아투안의 무덤>에서 게드가 구해낸,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무책임하게 데리고 나온 테나가 주인공이다. 테나는 모진 학대를 당한 끝에 화상으로 한쪽 손이 오그라들고 머리와 얼굴 일부에 심한 상처를 입은 테루를 양녀로 삼아 기른다. 그녀는 오지언의 부름으로 르 알비로 가게 된다. 한 때 게드의 스승이었으며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 오지언은 죽어 가고 있다. 오지언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며,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테나는 오지언의 집에서 묶으며 그의 말을 따른다. 기다림의 끝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용이다. 그 용의 등에는 게드가 타고 있다.

대현자 게드. 그녀를 아투안의 무덤에서 데리고 나와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준 사람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때부터 게드를 사랑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소녀였던 그녀는 이제 아이 둘을 낳은 중년의 과부가 되어 있었고, 게드는 싸움 끝에 모든 힘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마녀 이끼와 테나의 극진한 보살핌 끝에 게드는 살아나지만 마법의 힘을 잃은 탓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

힘을 잃어버린 영웅. 그 힘이 거대했던 만큼 상실감도 크다. 높은 산의 정상에 있다가 한순간 땅바딱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으리라.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쟝르에서 영웅이 힘을 잃는 경우를 본다. 그들은 대개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결국 힘을 되찾아 수모를 안겨준 자에게 복수하고 위엄과 영광을 되찾는다. 나는 대현자 게드도 그런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슐르 르 귄 여사는 새매 게드를 땅에 추락시킨 채 놓아버렸다. 그가 다시 비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세계를 구해낸 대현자 게드는 동네 마법사의 마법에 무릎을 꿇고, 명령에 굴종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아투안 무덤의 유일무녀였으며 에레삭베의 고리를 가지고 나온 테나도 개처럼 기고 굴렀다. 기껏 동네 마법사 앞에서.


르 귄은 힘을 잃은 자들이 현실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테나는 유일무녀로서의 엄청난 힘을 잃고 홀로 세상에 내팽개쳐졌으며, 한창때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가진 여자였다가 힘없고 늙은 과부가 되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의 기분을 두 번이나 맛 본 셈이다. 결국 힘을 잃은 것은 게드나 그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그 대응은 많이 다르다. 게드가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번민하며 현실에 적응을 못했다면 그녀는 현실에 적응해서 행복을 찾아나갔다. 테나는 그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여자들은 굴욕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라고 잠깐 동안 생각한다.

글쎄, 모르겠다. 나는 여성 특유의 강인함에서 발현한 힘이 적응을 도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모성의 힘 같은 여성 특유의 힘 말이다.


결국 새매가 굴욕과 수치를 떨쳐내고 힘 잃은 자신을 보듬어 안아 긍정하게 된 것은 그녀의 따뜻한 품 때문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녀의 집을 난입하려한 무뢰배들을 쇠스랑으로 물리쳐서 자신감을 되찾은 것일 지도 모른다. 여자를 지켜낸 남자가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테나와 게드가 아투안의 무덤에서 탈출해서 함께 살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테나의 양녀 테루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하다. 어시스전집 5권, 6권이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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