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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라산의 사자들 1
가이 가브리엘 케이 지음, 이병무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가이 가브리엘 케이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어 나온 작품은 티가나입니다. 출판사 서지정보나 광고 문구를 전부 믿는 편은 아닌데 티가나의 경우는 그럴싸하게 다가와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더군요. 초반이 좀 지루해서 나중에 보자, 하고 미뤘다가 잊어버렸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알 라산의 사자들은 재밌네요. 잘 쓴 작품입니다. 덕분에 타가나까지 보고 싶어져서 책장에서 꺼내 놓았습니다.
알 라산의 사자들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이기 때문에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 작품이 판타지 장르에 들어간 이유는 작가가 이야기의 배경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상의 무대와 현실 역사의 관련성이 뚜렷해서 독자는 어디서 세계를 가져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인 에스페라냐는 에스파냐의 변형이 분명합니다. 스페인, 포르투갈이 위치한 지방 말입니다. 예전에 이슬람교가 세력을 떨칠 때 이슬람에 정복된 지역이지요. 그러니까 알 라산의 사자들은 에스파냐가 이슬람에 정복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시대의 공간을 가져다가 작가가 창조한 지역이 배경입니다.
태양을 숭배하는 야드인들은(가톨릭을 믿는 유럽인을 상징합니다) 별을 숭배하는 아샤르인에게(이슬람교도를 상징합니다) 밀려 중남부의 영토를 상실하고 북부로 쫓겨납니다. 아샤르인은 점령지에 알 라산을 세우고 문화를 꽃피웁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칼리프의 황금시대도 막을 내리고 혼란기에 접어듭니다. 북쪽으로 쫓겨난 야드인들은 에스페라냐를 세웠는데 산초 왕 사후 세 개의 나라로 분열하고 맙니다. 분열하긴 했어도 칼리프가 없어진 알 라산보다는 사정이 나아서 알 라산의 도시에 공물을 바치라는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
예하네는 야드인과 아샤르인 양쪽에서 핍박받는 킨다트인(유태인을 상징합니다) 여의사입니다. 그녀는 환자를 진료하다가 예기치 않게 정치문제에 휘말립니다.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아샤르인과 만나게 되고 알 라산의 징벌자로 불리는 야드인과도 엮이게 됩니다.
알 라산의 사자들은 등장인물이 많고 그에 걸맞게 일어나는 사건도 많은데, 작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서 글이 잘 읽힙니다. 중세 기사들이 등장하는 정치,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