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밤을 새도 팔팔하던 시절에 우연히 주말의 영화를 보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두운 하늘을 차가 날고 있었다. 빌딩의 커다란 전광판에는 기모노를 입고 하얀 분칠을 한 여성이 등장하는 광고가 방송되고 있었고, 거리에는 포장마차들이 서 있었다. 그 풍경에 반해서 채널을 고정시키고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가 SF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러너였다.
 
지친 표정의 해리슨 포드가 리플리컨트를 추적해서 하나씩 제거할 때 느껴지던 안타까움, 음울한 날씨, 숀 영의 아름다움, 미래 사회의 암울함, 비속에서 죽어가며 읊조리던 롯거 하우어의 대사. 그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읽으려고 했는데, 번역 출간된 대부분의 SF가 그렇듯 절판이었다. 나중에 겨우 구해서 읽었는데 영화와는 스토리가 꽤 달랐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꽤 있었다. 황금가지에서 새로 나온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이해 안 가는 구절이 적었다. 번역이 내 취향에 맞았기 때문인 듯하다.

글은 아침에 일어난 데커드가 아내와 실랑이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세계대전으로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는 미래인데 그 때문에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고, 살아남은 동물들도 숫자가 적어서 무척 귀한 시대이다. 그래서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집착이 아주 대단한데 그런 사랑과 집착을 초반부에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설정은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데커드가 하는 일에 동기부여를 하고, 안드로이드를 구별하는데도 사용되며,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의 주장과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한 머서주의에 대한 연결에까지 사용된다. 주제의식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것 같은데 나는 중반부의 안드로이드 사냥에 집중하고 읽었던 탓에 거기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데커드의 직업은 안드로이드 사냥꾼이다. 불법으로 지구에 들어온 식민지의 안드로이드를 색출해서 제거하는 일이다. 현상금을 받아서 전기 양 말고, 진짜 양을 사고 싶어하는 데커드는 신형 안드로이드가 지구로 잠입했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선임자가 그들에게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어서 잡아서 돈을 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다.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혼란까지 겪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중반부의 그 장면들이 제일 재밌었다.

글을 읽는 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영화장면들이 떠올라서 즐거웠다. 다른 구석이 꽤 있었지만 소설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영화도 좋고 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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