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이 지켜보는 세상이 끝과 시작

인간 종말 리포트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인간 종말 리포트는 시녀 이야기로 유명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사변적인 성격이 강해서 읽기 편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있는 소설을 선호하는 분들에게 어울릴 만한 소설입니다. 저는 디스토피아 쪽은 취향이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작가는 유전자 조작으로 온갖 일을 하는 미래의 사회를 암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국가는 약해지고, 초국적 기업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직원은 조합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이직을 하면 다른 공동체로 이사를 하고 자식의 학교도 옮기는 등 기업의 영향력이 아주 강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인간은 멸종의 지경에 처해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으로 여겨지는 지미는 새로운 인류인 크레이커들을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암울하게 보냅니다.

원제가 오릭스 앤드 크레이크인데, 둘은 크레이커를 낳고 기른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에 딱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아니 아담과 이브보다는 창조주 쪽에 가깝군요.

인간 종말 리포트의 화자는 주인공인 지미인데, 그의 회상과 크레이크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는 1권은 좀 지루한 편입니다. 지미가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습니다. 그 이후에는 인류가 왜 멸종의 지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 둘 이야기가 풀리면서 지루함이 없어지고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밑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크레이크가 크레이커를 만들 때 인간처럼 살지 말라고 여러가지 유전자 조작을 해놨는데 과연 그들이 크레이크의 생각대로 성장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의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가 식욕과 성욕을 통제하는 쪽으로 유전자 조작을 한 건 여러 모로 흥미롭습니다. 그는 그들을 채식동물로 만들고, 발정기 때만 성행위를 하도록 만들었는데, 육식과 과도한 성적 욕구가 인류를 타락시켰다고 본 걸까요. 어쨌든 크레이크는 천재일지는 몰라도 정은 안 가는 인물입니다. 그에 비해서 지미는 약점이 많은 인물이지만 그래도 정이 가네요.

띠지에 '나는 내가 지옥에 있다고 믿는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혼자 남은 지미에게 세상은 정말 지옥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