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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골짜기의 5월 ㅣ 미도리의 책장 4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도시노 마나한은 가난한 필리핀 소년입니다. 아버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자피노라고 부릅니다. 일본 혼혈 남자를 필리핀에서는 자피노라고 칭하는가 봅니다. 차별적인 뜻이 일부 섞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인종차별, 혹은 심한 경멸의 의미가 담긴 호칭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경멸의 의미를 담아서 부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냥 혼혈의 한 종류 정도로 느껴집니다. 조센징, 짱깨 뭐 이런 말에 포함된 뉘앙스보다는 차별의 뜻이 많이 약합니다.
식민지배를 오래 겪었고, 혼혈이 많았던 필리핀의 역사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피가 섞이면서 혼혈에 관대해졌다는 느낌이랄까요. 한국에서 살았으면 차별을 심하게 느꼈을 텐데 말이죠. 한국 농촌에 가보면 혼혈이 무척 많다는데 이 아이들이 커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부딪쳤을 때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걱정이 됩니다. 어쩌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일본 남자들이 필리핀 현지 여자들과 살다가 버리는 경우가 꽤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 작가가 자피노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나오키상을 받는 걸 보면 말이죠. 일본의 못된 것은 꼭 따라한다는 한국이 요즘 이런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한국계 혼혈은 뭐라고 불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광객들이 현지인을 멸시하고, 또 여자와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인이라면 이를 가는 현지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던데요. 냄비근성이 심한 한국 언론의 과장보도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은 자피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고 모험소설입니다. 이 책은 세 편의 중편이 이어져서 한 편의 긴 장편을 이루고 있는데 중편은 각각 자피노의 13세 여름, 14세 여름, 15세 여름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년의 모험은 필리핀 사회의 혼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래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합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했으면 총격전 같은 장면이 나오기 힘들겠죠.
도망친 아버지와 어릴 적 죽은 어머니. 자피노를 둘러싼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도시노는 제법 번듯하게 자라납니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양육 덕분으로 보입니다. 그와 할아버지는 투계용 닭을 키우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합니다.
13세의 여름, 도시오는 흥분상탭니다. 2년 동안 공들여 키운 자신의 싸움닭이 처음으로 싸움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의 흥분과는 별개로 동네도 들썩들썩 합니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용모로 마을 청년들을 분쟁으로 몰아넣었던 여자가 귀향을 한다는 겁니다. 60이 넘은 일본의 노화가와 결혼해서 일본으로 갔는데, 남편이 죽으면서 갑부가 된 그녀가 잠시 쉬러온다는 거죠. 자피노의 할아버지는 불길함을 느끼며 퀸이라 불리는 그 여자를 무시하지만, 그녀의 등장은 자피노를 모험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남자 넷을 대동하고 나타는 퀸은 자피노에게 어떤 의뢰를 합니다.
할아버지의 예감은 맞았습니다. 퀸의 등장이 마을에 던진 충격은 컸습니다. 그 영향이 계속 이어지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마을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소년은 모험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몰입하기 어려웠는데 책장이 넘어가면서 흡입력이 강해졌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 분권하지 않고 한 권으로 나온 게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