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영웅 신화는 마냥 신나는 책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훨씬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용을 물리치고 왕국을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아, 모두 다 행복해졌구나.
이런 결론에 만족할 나이는 이제 지난 것이죠. 아쉽게도 말입니다. 닐 게이먼의 베오울프는 새삼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덴마크의 한 왕국, 흐로드가르 왕은 새로운 궁전을 건축하고 잔치를 벌입니다. 그 자리에 그렌델이라는 괴물이 잠입해서 살육을 벌입니다. 그렌델은 그 후로도 계속 침입해서 백성을 해칩니다. 괴물을 물리쳐야 할 왕은 늙었습니다. 한 때는 용을 잡기도 했던 영웅이지만 이제는 늙어서 그렌델을 처치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웅도 늙습니다.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었더라면, 하고 한탄하는 왕의 말이 가슴을 칩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은 넓고 영웅은 많습니다. 그렌델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문제가 있지만 말입니다. 공포에 질려 떠는 그들에게 새로운 영웅이 나타납니다. 그가 바로 베오울프입니다. 바다를 건너온 베어울프는 그렌델과 싸우고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합니다.
하지만 이게 끝일까요?
아뇨.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흐로드가르가 그렇듯 베오울프도 늙어갑니다.
그가 늙었을 때 괴물이 다시 나타나면 이제는 누가 왕국을 구하죠?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게 될까요?

베오울프는 여러모로 인상적입니다

우선 많은 영웅신화에서 단순하게 등장하는 괴물이 닐 게이먼의 베오울프에는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책 속의 괴물은 단순히 영웅에게 죽어야 할 나쁜 놈, 사악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1부의 제목이 그렌델이고 2부의 제목이 용이라는 것은 의미심장 합니다. 제가 보기에 괴물은 영웅의 죄악과 욕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괴물의 처단은 죄악과 욕망의 처단인 동시에 새로운 죄악과 욕망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인 것은 책 속에서 느껴지는 사멸해가는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괴물도 그리고 괴물을 낳은 어미도 이제는 황혼 속으로 저물어가는 존재입니다. 거인과 그 후손은 거의 멸종의 단계로 접어들었고, 북구의 신조차도 로마에서 날아온 기독교의 신에게 매몰되어 갑니다. 심지어 영웅도, 그 영웅이 믿는 신화도 잊혀질 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늙어가는 영웅, 그리고 사멸해 가는 괴물.
그 안타까움 속에서 베오울프는 최후의 모험을 감행하고 신화 속에 길이 남을 영웅으로 재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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