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글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책이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뚱뚱한 소년은 대개 한심하게 그려진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리의 사촌처럼 극단적으로 혐오스럽게 묘사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대개는 한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개인적으로 뚱보를 한심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마뜩찮다) 구덩이의 주인공 스탠리도 초반부에는 그런 뚱보와 다를 바 없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스탠리는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선생님에게 일러봤자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이다. 소심한 스탠리는 패배의식에 물들어 있는 듯 보인다. 일이 잘못되면 입버릇처럼 고조할아버지 탓을 한다. 그 이유라는 게 재밌다. 고조할아버지가 집시의 돼지를 훔쳐서 대대로 저주를 받았다는 거다. 저주 탓일까, 스탠리는 좋지 않은 시간에 적당하지 않은 장소에 있다가 누명을 쓰게 된다. 그 누명이라는 게 또 웃긴다. 자세하게 쓰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간략하게 누명을 썼다고 넘어가자. 판사는 스탠리에게 감옥에 갈 것인지 초록호수캠프에 갈 것인지 물어본다. 가난해서 캠프에는 가 본 적이 없는 스탠리는 초록호수캠프를 선택한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찾아간 곳은 생각과 너무 다르다. 초록호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캠프가 있는 곳은 사막이나 다름없다. 100년 전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는데 그 이후로 비가 오지 않아서 호수는 바짝 말랐다. 주눅이 들어서 캠프 선생님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여기는 걸스카우트가 아니다.' 그 사실을 스탠리는 다음 날부터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캠프선생은 스탠리에게 삽을 던져주며 한 가지 요구를 한다. '구덩이를 파라.' 하루에 구덩이 하나를 파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다. 얼핏 보면 감옥보다 나을 것 같지만 사막처럼 뜨거운 곳에서 매일 구덩이 하나를 파는 건 쉬인 일이 아니다. 스탠리는 시련(구덩이 파는 일)을 겪어내며 인간적으로 성장한다. 소심한 왕따 찌질이 뚱보에서 용기를 갖춘 소년으로 성장한다. 이런 면에서 구덩이를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헌데 구덩이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성장소설 이상의 재미를 준다. 특히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낭비되지 않고 모조리 꿰어져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굳이 흠을 잡자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구석이 약간 있는데 책의 쟝르를 생각하면 흠이라고 볼 수 없다. 뉴베리 수상작을 좋아하는데, 구덩이 때문에 뉴베리 수상작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다. 강력추천,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