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을 아주 재미있게 봐서 큰 기대를 가지고 그레이브 디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13계단은 여러모로 대단한 데뷔작입니다. 에드가와 란포상 수상작인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선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럴 만한 작품입니다. 트릭도 훌륭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저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작가와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설득력 있는 솜씨에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레이브 디거를 읽는 내내 13계단과 비교가 됐습니다. 그만큼 13계단의 임펙트가 강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레이브 디거는 13계단 보다는 트릭이 약하지만 대신에 서스펜스는 확실히 이 쪽이 뛰어납다. 13계단은 정적이 면이 조금 있었는데 그레이브 디거는 속도감이 넘칩니다. 야가미는 병원에 무사히 당도해서 원하던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큰 축으로 삼아서 결말로 달려나가는 속도감이 좋고 스릴이 넘칩니다. 13계단의 호흡이 조금은 느릴 수 밖에 없는게 여기서 제기되는 사회문제가 사형문제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글을 다 읽고난 후에 사형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하게 만들지요. 그러나 그레이브 디거에서 제기되는 사회문제는 정부의 비리(경찰), 정치인의 비리 쪽입니다. 경찰과 정치인의 부정비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흥분시킵니다. 심하게 말하면 얘네들의 부패를 보면, 피가 끓죠. 그래서 독자의 흥분이 글의 속도감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13계단과 그레이브 디거의 문제 의식을 봤을 때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는 사회파로 분류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제가 여기서 말한 사회문제는 작품의 재미를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13계단, 그레이브 디거는 훌륭한 미스터리 소설이고 재미라는 쟝르 본연의 미덕에 아주 충실합니다. 끝내주게 재밌는 작품입니다. 메시지가 들어있는 작품에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레이브 디거의 이야기 구조는 참 복잡합니다. 우선 프롤로그에서 피해자 시신이 감쪽 같이 없어지는 게 나옵니다. 시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경시청 감찰계가 수사를 하지만 오리무중입니다. 그래서 미완인 채로 덮어버리는데 이게 뒤에 일어나는 연쇄살인과 연결이 됩니다. 주인공 야가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범죄의 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입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고 그저 소소한 사기를 몇 건 친 정돕니다. 그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이식하기로 합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일이 꼬이죠. 병원에 가기 전에 들린 집에서 아는 사람이 살해당한 채 욕조에 묶여 있는 걸 발견한게 됩니다. 그리고 정체 불명의 괴한들이 야가미를 잡아가기 위해서 덮칩니다. 시체를 발견했을 때, 혹은 괴한이 덮쳤을 때 야가미는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합니다. 그럼 하루 종일 고생하는 건 막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신고를 하고 경찰에 출두하면 골수이식수술은 물 건너 갑니다. 참고인으로 붙들려 진이 빠질 테고, 험악한 인상과 전과, 집에서 발견된 시체가 결협되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결국 야가미는 병원에 가는 쪽을 선택합니다. 당연히 경찰은 미친 듯이 야가미를 추적하게 됩니다. 야기미를 추적하는 건 경찰 만이 아닙니다. 도꾜 도처를 돌아다니며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자도 야가미를 쫓고, 납치를 하려는 무리도 야가미를 추적합니다. 납치범과 연쇄살인범은 무슨 관계일까요? 그리고 야가미는 왜 표적이 되었을까요? 프롤로그에 나왔던 사라진 시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복잡해 보이는 경찰 내부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될까요? 그리고 근본적으로 야가미는 병원에 당도할 수 있을까요? 얼핏 봐도 아주 복잡해 보입니다. 그레이브 디거의 초반부를 읽었을 때. 사건들이 얽혀드는 게 참 복잡해 보여서 이걸 어떻게 수습하나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습니다. 모든 문제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깔끔하게 해결이 됩니다. 아주 깔끔해요. 13계단에서도 느꼈듯이 다카노 가즈아키는 글을 잘 쓰는 재능있는 작가입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안 읽은 분은 꼭 읽어보세요. 그레이브 디거로 올 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