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을 굽습니다
석민진 지음 / W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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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먼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굽는다는 동사가 행복이라는 명사와 만나는 자리, 그 낯설고도 다정한 조합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작은 온기를 건네었습니다. 빵 굽는 이야기일까? 쿠키 이야기도 있을까? 각종 레시피도 있을까? 호기심이 일기도 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에서 파티시에로 살아가는 석민진 작가는 케이크를 굽고 쿠키를 굽습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얼마에 팔았는지, 어떤 레시피가 성공했는지를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왜 굽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오븐 앞에 선 한 사람이 밀가루를 만지고 버터를 녹이는 그 시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베이킹은 이 책에서 치유의 언어로 쓰입니다. 삶이 흔들릴 때, 마음이 헛헛할 때, 작가는 부엌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반죽을 치대는 손길 속에서 뒤엉킨 생각이 가라앉습니다. 오븐에서 흘러나오는 빵 냄새가 집 안을 채울 때, 무너졌던 하루가 조용히 제자리를 찾습니다.




마지막 장 제목이 말해줍니다.

"행복을 선택하기로 한 어느 날의 부엌."

부엌은 그에게 도피처가 아니라 회복의 장소였습니다. 정성을 기울이는 행위 그 자체가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쿠키 하나에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을 포장하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련의 과정이 그를 다시 살아있게 했습니다.




목차를 훑으면 이 책의 결이 드러납니다.

총 여섯 개의 장은 집이라는 우주, 사소한 일상의 빛남, 관계의 온도, 마음을 배우는 시간, 계절을 걷는 여행, 부엌에서 피어나는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어느 장 하나 거창하지 않습니다. '누가 쓰레기통을 내놨지', '설거지 20분의 법칙', '아침의 작은 기쁨' 같은 글 제목들이 말해주듯, 이 책은 보통의 하루를 다룹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 평범한 연속 안에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작가는 조용히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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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주변 사람에 대한 시선이 각별합니다. 아이의 엉뚱한 질문, 남편의 소소한 행동, 이웃과 나눈 짧은 인사, 오래된 친구와의 기억.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삶의 행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온기를 길어올립니다. '다정한 가족의 비밀은 애칭에 있다', '시간이 키운 우정', '베이킹과 티타임, 그리고 소중한 인연' 같은 글들이 그렇습니다.

관계란 대단한 헌신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온도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 책은 설득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프롤로그 제목이 인상 깊습니다.

"조금 늦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당신에게."

이 책이 향하는 독자가 누구인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 지금 이 자리에서도 충분하다는 말을 작가는 화려한 수사 없이 일상의 언어로 건넵니다.

에필로그 제목 또한 그렇습니다.

"사실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독자에게 건네는 위로가 결국 자신을 향한 고백이기도 했음을 작가는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거대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요구하는 책도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는 마음, 내 곁의 사람들을 좀 더 귀하게 여기겠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갓 구운 쿠키처럼, 따뜻하고 소박하고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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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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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겁습니다. 손에서 내려놓았는데도 그 무게가 가시지 않습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와 에곤 실레. 20세기 초 프라하와 빈을 배경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를 앞서간 두 천재. 이 책을 덮고 나서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 것은 그들의 천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 천재성이 얼마나 깊은 고통의 토양 위에서 피어났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이 책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도시권에 머물렀으며, 놀랍도록 닮은 삶의 궤적을 그렸지만,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습니다.

소설가 홍선기가 이 두 사람을 "만나지 않은 쌍둥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닮음은 외형이 아니라 상처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그것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가장 깊은 실이었습니다.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이 편지는 결국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편지 안에서 아버지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작아지고 위축되었는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써 내려갑니다.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아들의 글쓰기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카프카는 평생 아버지의 인정을 갈망했고, 그 갈망이 끝내 채워지지 않은 채 마흔하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 가족에게 짐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읽고 나면 카프카 자신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벌레처럼 여겼던 한 인간의 내면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곤 실레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흔듭니다. 그는 스스로를 "나, 영원한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은 실레는 이후 삼촌 레오폴트 체하우스키의 후견 아래 성장했지만, 그 관계 역시 억압과 통제의 연속이었습니다. 실레의 그림은 뒤틀리고 앙상하며 날카롭습니다.

아름다움을 찾기보다 인간 존재의 날것을 드러내려 했고, 그 때문에 외설 혐의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취약해 보입니다.

그것은 기법이 아니라 실레 자신의 내면이었을 것입니다. 스물여덟에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의 모든 고통과 불안을 캔버스 위에 쏟아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다른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억압이 아니라 인정을, 통제가 아니라 자유를 주는 아버지를 만났다면, 카프카의 문학과 실레의 그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 질문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통이 없었다면 그 깊이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상처가 없었다면 그토록 날카롭게 인간 존재를 들여다보는 눈도 생기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고통이 천재성의 조건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얼마나 잔인한가. 그들이 조금 더 사랑받으며 자랐더라면, 그들의 재능은 더 오래, 더 찬란하게 빛났을지 모른다고.




이 책의 구성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카프카의 글과 실레의 그림을 번갈아 배치하면서 두 사람의 세계를 교차시키는 방식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와 「변신」, 카프카의 잠언과 관찰들, 실레의 시와 편지들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읽힙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읽었을 때와 달리, 나란히 놓였을 때 서로를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 비춤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두 예술가의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었던 두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두 사람이 이렇게 닮아 있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닮음은 재능의 닮음이기도 했지만, 상처의 닮음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상처,

그 상처가 예술이 되었고, 그 예술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히고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일인지, 슬픈 일인지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읽고 나서 한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되는 책입니다. 두 천재의 삶이 빛나는 만큼,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눈길 하나를 더 건네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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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는 아이, 걱정하는 부모 - 더 이상 게임으로 싸우고 싶지 않은 부모를 위하여
이경혁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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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의 게임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

게임하는 아이, 걱정하는 부모
게임하는 아이, 걱정하는 부모
이경혁2026흐름출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비슷한 고민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때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을지, 중독에 빠지지는 않을지, 폭력적인 성향을 배우지는 않을지 염려하게 됩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게임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문화입니다.


부모 세대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은 놀이이자 소통의 공간이며 또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입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갈등이 생깁니다.







이경혁 저자의 『게임하는 아이, 걱정하는 부모』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게임을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게임을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게임 문화를 이해하고 건강하게 지도할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른들의 게임 경험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지적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게임 문화를 기준으로 오늘날의 게임을 판단합니다. 오락실 게임이나 단순한 컴퓨터 게임을 떠올리며 현재 아이들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바라봅니다.


부모의 경험만으로는 지금의 게임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게임의 역할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왜 게임을 좋아하는지 먼저 묻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도 차근차근 다룹니다. 게임 중독의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게임이 친구 관계를 망친다는 생각이 반드시 사실은 아니라는 점도 알려줍니다.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를 반드시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균형 있게 다룹니다.


아이가 욕설을 배우는 문제, 성인 게임 노출 문제, 게임과 도박의 경계 같은 민감한 주제들도 피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무엇을 걱정해야 하고 무엇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지 구분하도록 돕습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구분하는 체크리스트를 제시한 점입니다. 세상 모든 게임을 유해하다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창의력을 키워주는 게임도 있습니다.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임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게임도 있습니다.

반대로 과도한 결제를 유도하거나 도박적 요소를 포함한 게임도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과 구조를 살펴보는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자는 부모들이 어려워하는 게임 용어를 설명해 주고, 아이들이 실제로 즐기는 게임 열 가지도 소개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의 문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아이가 매일 이야기하는 게임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건강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소통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게임 시간을 관리하는 부분도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부모들은 흔히 하루 몇 시간이라는 기준을 정하려고 합니다. 실제로는 시간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게임들도 있습니다. 한 판이 끝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게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게임에 따라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보다 횟수를 기준으로 정하는 방법도 제안합니다. 하루 두 판, 세 판처럼 약속하는 방식입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 부담이 적습니다. 갈등도 줄어듭니다. 게임을 무조건 끊어내는 방법보다 훨씬 실천 가능한 제안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생각하게 된 부분은 우리 아이들이 전혀 다른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유튜브와 각종 플랫폼이 일상인 세대입니다. 게임은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현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먼저 인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인정은 포기가 아닙니다. 이해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게임 문화가 또래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이야기합니다. 함께 협력하고 경쟁합니다. 관계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게임을 무조건 금지하는 방식은 때로 아이를 또래 문화 밖으로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기준을 세워 지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부모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아이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라고 말하면서 부모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게임을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정작 부모는 자신만의 미디어 사용 습관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현재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게임보다 숏폼 콘텐츠일 수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게임만 경계할 것이 아니라 짧고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가 아이들의 집중력과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했습니다. 부모의 관심이 게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임하는 아이, 걱정하는 부모』는 게임을 둘러싼 부모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책이 아닙니다. 부모의 불안을 부추기지도 않습니다.


이해와 소통의 길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아이를 통제하는 방법보다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게임을 없애는 방법보다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한 가지 생각이 남았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규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규칙을 세우고, 서로를 존중하며, 꾸준히 대화할 때 건강한 디지털 문화도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게임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게임에 관한 책인 동시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게임 때문에 아이와 싸우고 싶지 않은 부모님, 아이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부모님께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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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보이는 건축
방명세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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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보이는 건축
사람이 보이는 건축
방명세2026나비의활주로


건축가가 쓴 책이라고 해서 집이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셨다면, 이 책은 그 기대를 조용히 빗나갑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이 저자 방명세가 평생 건축을 통해 하려 했던 말이고, 이 책이 독자에게 조용히 건네는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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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Root, Field, Essence, Legacy, Sketch. 뿌리에서 현장으로, 현장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유산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펜끝의 풍경으로 흘러갑니다. 목차 자체가 한 건축가의 삶의 결을 따라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순서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걸음을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자는 성북동 산동네 골목을 누비며 공간 감각을 익혔고, 낙서하다가 건축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퍽 자연스럽습니다. 대단한 출발이 아니었습니다. 골목의 질감,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햇볕이 드는 방향, 그런 것들이 몸에 먼저 새겨졌고, 그것이 나중에 건축가의 눈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수식 없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방식이 이 책 전체의 문체입니다.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설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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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정림건축에 공채로 입사해 설계, 기획, CM까지 한 조직에서 여러 자리를 옮기며 건축의 다른 면들을 두루 보았습니다. 보통의 건축가라면 설계실 안에 머물렀을 시간을, 저자는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코이카 사업을 통해 아이티, 콩고, 볼리비아, 에티오피아, 파라과이, 과테말라 등 10여 개국의 현장을 다니며 출장 수첩에 메모하고 스케치했습니다. 20년간 쌓인 수첩이 20권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 수첩들은 2025년 개인전 '또 다른 시선'이 되었습니다. 건축가이기 전에 기록하는 사람이었고, 기록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현장에서 건물이 아닌 사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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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 챕터의 소제목들을 보면 그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광양, 처음으로 사람이 보이다', '아산, 집을 짓고 함께 울다', '파라과이, 팬데믹에도 떠나지 않은 사람', '콜롬비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나라 이름 뒤에 건물 이름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옵니다. 건축 현장 기록이라기보다 사람 현장 기록에 가깝습니다. 볼리비아 해발 4,150미터에서의 약속, 에티오피아에서 70년 전 은혜를 돌려주는 이야기. 그 소제목들만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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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반부에 소명, 성품, 역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것을 전문 건축가의 3C라고 부릅니다.


역량에 난 구멍은 경험으로 막을 수 있고, 성품에 난 구멍은 사람을 만나며 깎이고 다듬어져 막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량과 성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막는 것이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건축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은 이 세 가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이 건축가는 현장에서 배웠고, 책에서 조용히 나눠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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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신앙이 책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내세우거나 증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현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소명을 이해하는 태도,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자리에서 그 신앙의 깊이가 자연스럽게 배어납니다.


소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거창한 언어로 답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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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본문까지 저자가 직접 그린 펜 드로잉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글과 그림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글이 담지 못한 현장의 온기를 그림이 채워주고, 그림이 설명하지 못한 맥락을 글이 붙들어 줍니다.


Sketch 챕터에 담긴 필드 스케치와 출장 수첩의 장면들은 단순한 삽화가 아닙니다. 수십 년을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록한 사람의 시간이 그 안에 쌓여 있습니다. 그림 한 장 한 장에서 정성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Legacy 챕터도 인상적입니다. 목양교회, 시드볼트, 평창 개폐회 식장, 삼일빌딩. 각각의 건축 이야기가 단순한 프로젝트 소개에 머물지 않습니다. 영혼을 위로하는 건축, 다음 세대에 건네는 건축, 오래된 건물에 내일을 잇는 건축.


건축을 유산의 언어로 읽어내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짓는 것이 단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잇고 사람을 남기는 일임을 저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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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의 제목이 '겨울을 난 보리'입니다. 뒤표지의 추천사에도 비슷한 문장이 있습니다. 가을에 파종한 보리처럼, 추위를 견뎌내어 더 단단해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책 전체가 그 문장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절 못 하는 성격이 만든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사람, 쓰이지 않은 경험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정성이 가득한 책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잘 만들어진 책이기도 하지만, 잘 살아온 사람이 쓴 책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습니다. 사람이 보이는 건축은 결국 사람이 보이는 삶에서 나온다고, 이 책은 말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건축가의 이야기이지만, 자기 자리에서 소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이기도 합니다. 읽고 나서 한동안 조용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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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힘 - 얼어붙은 조직, 신뢰로 녹인 600일의 여정
김주성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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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510통의 생일 축하 전화, 200회 이상의 함께한 식사, 300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마음. 50회 넘던 노사협상이 5회로 줄어든 변화.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600일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사람을 향해 걸어갔는지를 보여주는 발자국입니다.




저자 김주성은 노원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합니다. 그가 마주한 조직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불신이 쌓이고, 갈등이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현실 앞에서 거창한 혁신 방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직원 대신 동료라고 불렀습니다. 생일이 되면 전화를 걸었습니다.




면담을 시작하는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GROW 기법으로 만든 질문지를 먼저 동료들에게 보냈습니다. 회신한 분들에 한 해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회신율이 96퍼센트였습니다.

그 숫자 앞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사람은 말하고 싶다는 것. 특히 자기가 몸담은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것. 다만 말할 창구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

96퍼센트라는 숫자는 통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였습니다.




이 책은 그 600일의 기록입니다.

1부 '혼란과 마주하다'에서는 얼어붙은 조직을 처음 대면하는 낯섦과 당혹감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2부 '관계의 회복과 문화의 탄생'에서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3부 '지역과 함께 성장하다'는 조직의 변화가 지역사회로 번져나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4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는 변화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변화는 조직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한 공간과 시설을 확충하고 수영 프로그램을 늘렸습니다. 지역사회와 연대하기 위해 문턱을 낮추었습니다. 직장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썼고, 혼자 근무하는 분들에게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성과를 먼저 챙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작은 자리에 있는 사람,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먼저 돌아보았습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은 그 책의 언어였지만, 그 정신은 훨씬 오래된 곳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의 제목이 인상 깊습니다.

'침묵이 대화가 된 시간.'

그 한 문장이 이 책 전체를 요약합니다. 저자 스스로 8장의 제목을 '미완이지만 계속되는 변화'라고 붙였습니다. 성공 신화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이 책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리더십 이론서가 아닙니다. 현장의 기록입니다.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특히 새로 부임했거나 지금 조직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천천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실천이 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배우고 얻은 것을 자기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일은 언제나 각자의 몫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분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결국 조직이란 사람이고, 사람은 이름으로 불릴 때 비로소 존재로 대접받는다는 것을 이 책은 600일의 언어로 증명합니다.

무엇을 바꾸려 했던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먼저 곁에 있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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