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리와 밤의 형제단 비룡소 걸작선 62
B. B. 올스턴 지음, 고드윈 아크판 그림, 김경희 옮김 / 비룡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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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무조건 영화로 나와야 해"




B. B. 올스턴의 소설 [아마리와 밤의 형제단]을 읽는 내내 수없이 내뱉은 말입니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볼륨이 상당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걸 언제 다 읽지?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어쩌지? 상당한 부피감 때문에 차일피일 독서를 미루었습니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책을 펼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진짜로 너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문장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등장인물의 모습과 얼굴 표정과 눈빛이 자동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책을 읽다 말고 다시 표지와 띠지를 보았습니다. 띠지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가 눈과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뉴욕타임스 30주간 베스트셀러" "전 세계 27개국 번역 출간" 맞아. 당연한 일이야. 더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어야 하고, 더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앞섰습니다.



바로 그 옆에 저의 생각을 읽은 듯한 소개가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화 확정" 그래야지. 당연히지. 이 이야기는 무조건 영화로 나와야 해! 제발 훌륭한 감독과 음악감독을 만나길, 좋은 목소리 배우를 섭외하길 바라고 바랄 따름입니다.









아마리는 흑인 소녀입니다. 학교에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소녀입니다. 가정 형편은 어렵고, 믿고 의지하고 따르던 오빠는 행방불명이 되어버려 속을 태우는 소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행불자가 되어버린 오빠로부터 소포가 도착합니다. 오빠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아마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빠의 추천서를 받고, 오빠가 전해준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누군가를 만나러 간 아미리. 놀랍게도 거기서 아마리는 자신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처음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오빠가 참여했던 여름 캠프에 참여하지요. 이 캠프에 참석하는 것은 누구보다 엄마가 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빠가 이 캠프에 참석한 이후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고, 리더십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났으니까요. 엄마가 아마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지요.



그곳에서 아마리는 적대적인 친구들에게 휩싸입니다. 그것도 아마리가 가진 남다른 재능(?) 때문입니다. 마법사를 적대시하는 세상에서 마법사의 능력을 이어받은 가난한 집안의 흑인 소녀라면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현실 세계에서도 아마리가 만난 또 다른 세상에서도 아마리는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신을 향한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걷어치울 수 있을까요?









위험천만한 캠프와 초자연적인 세상이지만 아마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마리에 편에 서서 아마리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납니다.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아도 어디엔가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렵고 외롭고 고독한 순간을 만나면 누구라도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줍니다. 힘든 순간을 만날 때에라도 결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주변엔 우리의 손을 잡아줄 좋은 친구와 이웃이 있으니까요.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따름이니까요.



아마리가 차별과 편견, 대단한 도전과 어려운 길을 걸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오빠와 엄마를 향한 사랑과 아마리를 향한 엄마와 오빠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 포기 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지만,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받고 시달리지만 그 모든 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더 사랑하고 예의를 갖추고 대해야 할 뿐 아니라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얼마나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작가 B. B. 올스턴이 이 이야기를 쓴 배경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어요. 올스턴이 흑인이거든요. 아마도 올스턴은 자라면서 상당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겪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을 테고, 오해를 받았던 때도 수없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짧은 미국 생활이었지만 소수민족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 유색인종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만큼은 경험했거든요.



더 웃긴 것은 같은 유색인종 간에도 차별과 편견과 오해가 있다는 것!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엄연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요.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주민 노동자가 많습니다. 국제결혼(달리 표현할 적합한 언어가 없어서, 언어의 결핍입니다)으로 우리나라에 이주하신 여성도 많습니다. 그 사이에 태어난 조금은 외모가 다른 자녀도 많지요. 이주민 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이주하신 여성과 그 자녀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정말 아무 편견과 차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리와 밤의 형제단은 모험과 우정, 사랑과 용기로 가득한 소설입니다.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을 향해 함께 걷자고 초대하는 소설로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세상, 외부적인 요인으로 등급을 매기고 순서를 매기는 세상을 향해 함께 맞서자는 초대장처럼 다가왔습니다.



많은 청소년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영화로 태어나 전 세계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이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재밌을 테니까요. 재미와 감동과 흥미뿐 아니라 인류가 맞서 싸우면서 지켜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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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 쓰기 - 인생이 바뀌는
양병무 지음 / 행복에너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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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선택을 받는 책 한 권 쓰자"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진지하게 읽히기도 하는 나의 버킷 리스트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람의 선택을 받는 책 한 권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3월 16일 자로 [설교자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저의 이야기가 된 셈이지요. 기적과 같은 일이기도 했고, 독자의 선택을 받을지 궁금하기도 했으며 살짝 염려도 했습니다.

참 고맙게 예스 24에서 TOP 100 4주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베스트셀러 빨간 딱지가 한동안 붙어 있었던 기억이 있고요. 딱 거기까지였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좋은 책, 독자의 선택을 받는 책을 쓰고 싶은 꿈을 품고 있습니다. 한 권 출간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계속해서 출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독자의 선택을 받는 책, 누군가에게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이 말이에요.

이런 저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은 책이 있습니다. [감자탕 교회 이야기]와 [주식회사 장성군], [행복한 논어 읽기]로 익숙한 저자 양병무의 [인생이 바뀌는 행복한 책 쓰기]입니다. 저자 양병무는 책 쓰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할 뿐 아니라 책 쓰기를 통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제목 하나만으로 매주 글 쓰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책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저의 관심을 단박에 사로잡았습니다.




책의 구조는 심플합니다. 크게 행복한 글쓰기와 행복한 책 쓰기입니다. 물론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행복한 글쓰기는 총 4장입니다. 1장 왜 글쓰기인가? / 2장 글쓰기의 기초 다지기 / 3장 실용적인 글쓰기 연습 / 4장 교양 글쓰기 연습 사례라는 주제로 묶어 놓았습니다. 행복한 책 쓰기는 총 3장입니다. 1장 왜 책을 쓰는가? / 2장 어떤 책을 쓸 것인가? / 3장 책 출간에 도전하라라는 주제로 묶었습니다.

목차만 보아도 책의 방향과 흐름 목적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챕터부터 읽을지 골라보는 맛도 있습니다. 실용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실용적인 글쓰기 연습이나 교양 글쓰기 연습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글쓰기 기초가 부족하다면 글쓰기 기초 다지기부터 읽어도 문제없습니다. 도대체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왜 글을 쓰라고 이런 책까지 냈는지 궁금하다면 당연히 왜 글쓰기인가부터 읽어야겠지요.

글쓰기와 책 쓰기는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다른 이야기이고, 다른 이야기이지만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 책을 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면 1장을, 내가 도대체 어떤 책을 쓸 수 있는지 방향성을 잡고 싶다면 2장으로 가야 합니다. 책 출간에 도전하라는 챕터에서는 진심 실제적인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책을 쓸 수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어서 상당한 통찰과 아이디어, 책 출간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자 양병무는 이 책을 출간한 이유, 이 책의 독자층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1. 재주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2. CEO들

3. 전문가들

4. 자서전을 쓰고 싶은 사람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글쓰기가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습득해야 하고, 연습해야 하고, 어휘를 확장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흥미를 가지게 되면 그때부턴 가속이 붙어서 이전보다 훨씬 쉽게 글을 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CEO와 전문가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리더라면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글을 통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저자는 미국 명문 대학에서는 글쓰기가 필수과정이라고 밝힙니다). 굳이 명문 대학이 아니어도 글 쓰는 법을 강조하고 가르치더라고요. 미국 유학하면서 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 배운 것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 생각이 명료해집니다. 사고가 날카로워지고, 보다 폭넓게 보다 깊고 높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생각하는 사람이고, 소통하는 사람이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리더는 당연히 글을 써야 합니다.

자서전을 쓰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뛰어난 업적을 쌓았거나 이야기가 많은 인생을 살았다면 당연히 자서전을 쓰고 싶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자서전을 꼭 남기셨으면 하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글 쓰는 법을 모르실 뿐 아니라 연세도 많으셔서 아쉽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글 쓰는 법을 미리 익혀둔다면 언젠가 필요할 때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비무환이지요!

글쓰기 전문가답게 책이 술술, 쉽게 읽힙니다. 도전과 자극도 덩달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한 번 글쓰기에 도전하고, 책 출간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용기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실천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지만 자극과 도전을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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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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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해야 할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우리의 것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우리 정신에 물든 일제 강점기의 트라우마가 이렇게나 짙을 줄이야.

이 책을 읽기 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란 별명을 가진 고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 [너 어디로 가니]를 읽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을 땐 문체가 특이하다 생각했습니다. 너 어디로 가니를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님만의 문체와 개성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지문처럼 자기만의 색깔과 온도와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이전에 읽었던 책까지도 갈무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김 훈 작가의 글처럼 개성이 뚜렷한 글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펼치고 읽으면 가장 먼저 느낀 점이었습니다.








왜 이어령 선생님을 한국의 지성이라 부르는지 단박에 알게 해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천자문, 학교, 한국말, 히노마루, 국토, 식민지, 놀이, 단추, 파랑새, 아버지, 장독대, 이야기라는 열두 꼭지에서 이렇게나 깊은 이야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지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 마음에 콕 박힌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와 공부에 관한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이 흠뻑 담긴 이야기입니다. '학교'(學校)란 말이 [맹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학교 '스쿨(SCHOOL)'은 희랍어 '스콜레(SCHOLE)에서 나왔고요. 스콜레의 뜻은 '여가' '논다'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부(工夫)'의 의미도 흥미를 뛰어넘어 충격적입니다. 한국에서 '공부'는' 배운다'라는 뜻입니다. 기술이나 학문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으로 정의해 두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의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중국에서 '공부'라고 하면 '쉬는 것', '여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희랍어 스콜레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온 셈입니다. 일본에서 '공부'는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낸다'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여가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의 공부, 배우고 익히는 한국의 공부, 골똘히 생각한다는 일본의 공부가 합쳐지면 훌륭한 교육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원래 공부의 의미가 '놀고 생각한다'라는 의미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면, 선생님들이 알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놀면서 생각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가지 않을까? 입시에 함몰된 채 암기하기에 바쁜 우리네 서글픈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공부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지 않을까? 혼자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과 앉아 독대하는 기분,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거나 놓쳐버린 우리의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작고 소소한 물건과 이야기 그 안에 담긴 한국인의 지혜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익숙한 것,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깊은 시선으로 주위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찰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도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어령 선생님처럼 될 수 없고 또 될 필요도 없지만 이어령 선생님처럼 사물과 자연과 주변과 이웃과 자신의 내면을 주목해서 보고 관찰하는 힘을 길러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과 주변 사람을 위해서 말이지요.








한국인 이야기가 총 네 권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쉽게도 두 번째와 마지막 완결 편을 읽었습니다. 나머지 두 권을 따로 구매해서 제대로 음미하며 읽고 보물처럼 책장에 꽂아두어야겠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고 이어령 선생님이 사유와 연구, 담백한 글을 통해 우리의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보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종종 꺼내보면서ㅕ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인 다움이 무엇인지 뼈에 새겨야겠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와 가치를 톺아보고,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찾아보려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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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 - 환경과학자가 경고하는 화학물질의 위험
롤프 할든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문화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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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


얼마 전 보았던 인터넷 뉴스 기사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음식을 섭취하면서 하루 16.3개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 정도의 미세 플라스틱으로는 건강상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분석했다."



식약 의약품 안전처가 무엇을 근거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궁금합니다.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으로 확장해 보아도 건강상 위해가 없다고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기사도 하나 더 스크랩했습니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한 사람이 일주일간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 양이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2일 세계자연기금(WWF)이 호주의 뉴캐슬 대학과 함께 연구해 발표한 '플라스틱의 인체 섭취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약 2천 개로 집계됐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신용카드 한 장 무게인 5g에 달한다. 월간으로 환산하면 칫솔 한 개 무게인 21g이며 연간으로 보면 250g을 넘는 양이다.


이 같은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주된 경로는 음용수로, 한 사람당 매주 미세 플라스틱 1천769개를 마시는 물을 통해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갑각류(182개), 소금(11개), 맥주(10개) 등이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경로로 지목됐다.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지금 우리 삶은 플라스틱으로 얼룩진 삶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플라스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경고와 경종도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중단한다고 해도 앞으로도 수 천년 이상 플라스틱의 흔적을 지워내지 못합니다.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문제와 지구 환경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다시금 경종을 울리기 위해 애쓰는 학자이자 저자 롤프 할든의 책이 나왔습니다. [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 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후손에게 독성 화학 물질로 가득한 지구를 물려줄 뿐 아니라 온갖 먹거리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을 공급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고전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지구 환경은 심각한 수준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소고기를 소비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 파괴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일회용 렌즈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 역시 엄청난 양의 미세 플라스틱을 식탁으로 올리는 행렬에 동참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인구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는 것 역시 먹거리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합니다. 인구를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량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뿐 아니라 범국가적인 담론으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환경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은 결국 생명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녀와 다음 세대를 학대하는 처사라는 사실도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도 플라스틱 재활용의 허술함과 문제점을 고발했습니다. 이 책에서도 재활용 수치가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플라스틱 재활용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플라스틱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인의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와 기업의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무한 성장, 끝없는 경제 성장은 환상입니다. 지구라는 자원의 한계가 명확하고, 인구의 증가도 한몫합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무저갱과 같은 탐욕을 추구하면서 지구를 훼손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제 성장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세상을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곧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고, 인류를 생각하는 것이며 지구를 생각하는 일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번 9월 




* 같이 읽으면 좋을 책과 리뷰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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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크 - 2021 BBC 블루피터 북 어워드 수상작 다산어린이문학
엘 맥니콜 지음, 심연희 옮김 / 요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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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생긴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나 같은 말씨를 쓰는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걸 다 좋아해 주지 않아도 친구 할 수 있어. 나랑 생각이 똑같은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하지만 언니가 선물로 준 책에 끔찍한 말을 써 놓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맞서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 친구 할 수 없어. 진심이야." - 스파크 245쪽

"다르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다 달라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제가 이 일에 너무 심하게 요란을 떤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는 거, 저도 알아요. 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말씀 드릴게요. 자폐를 가진 여자애들은요, 아주 집요해요." 스파크 258쪽.

"여러분은 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저는 그렇지 않은 자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우리는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아요." 스파크 259쪽


"마녀사냥"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을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역사 배경,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몇몇 사실만 스크랩했습니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되어 16세기 말~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 곧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에는 희생자의 수도 적었고, 종교 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전담하였지만 세속 법정이 마녀사냥을 주관하게 되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종교 재판은 악마의 주장을 따르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는 마법사와 마녀를 처단하기 위한 지배 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17세기 말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효과 덕분에 금방 번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1582년 바이에른 어느 백작의 한 작은 영지에서 한 명의 마녀가 체포되었다. 이 마녀의 체포에 연속으로 48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하였다. 1587년 도릴 지방의 약 200여 촌락에서 1587년부터 이후 7년간 368명의 마녀가 적발되어 화형 당하였다. 1590년 남독일의 소도시 네르도링켄에서 시장의 제안에 의하여 시의회는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마녀를 철저히 일소하도록 결의하였다. 이후 3년간 32명의 마녀가 화형 또는 참수되었다.

1590년 소도시 에링켄에서 65명의 마녀가 처형되었고, 1597~1676년에 197명의 마녀가 화형 당하였다. 소소크만텔 승정령(僧正領)에서는 1639년에 2,428명, 1654년에는 102명이 처형되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스타이엘마르크 지방에서 1564~1748년에 1,849명이 소추되어 1,16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나노수 지방에서는 1629년부터 4년간 2,255명이 마녀로 소추되었고, 뷔르튄겐 지방에서는 1633년 이후 3년간 11명이 처형되었다.

튜링겐 숲에 인접한 게오르겐탈이라는 인구 4천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1652~1700년에 64회의 마녀재판이 실시되었다. 반베르크 승정령에서는 1627년 이후 4년간 화형 당한 마녀가 285명이었고, 그 이후 30년에 걸쳐 이 재판소에 계류된 마녀재판은 900건을 넘었다. 이 승정령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

뷰르스부르크 승정령에서는 1623~1631년에 화형 당한 마녀가 900명에 달하였다. 1627년부터 이후 연간 29회의 재판에서 화형 당한 157명의 희생자를 보면 잡다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의회 의원, 고급 관리의 부인, 시의회 의원의 처자,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8, 9, 12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루다에 살고 있는 바루다세르 후스라는 마녀재판관은 19년간 700명의 마녀를 화형 시켰는데, 자신의 일생 동안 1천 명을 처형하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로트링겐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레미라는 사람도 재직 15년간 화형 시킨 마녀가 900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마녀사냥의 물결은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법과 마녀는 그 시대가 겪었던 종교적 번민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던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과 함께 마녀사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녀사냥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서 일부만 발췌한 내용입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길고 긴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 두었더라고요. 그 한 줄이 더 충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었습니다.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광신도적인 현상."

참고로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낯이 뜨뜻해졌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부끄러운 면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 문장에 담겨 있는 '절대화', '권력과 기득권 유지', '광신도'와 같은 단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참된 기독교가 아닐뿐더러, 예수의 뒤를 따르는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소설 스파크 서평에 마녀사냥 이야기를 이렇게나 잔뜩 쏟아놓는 것은 이 책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입니다. 저자 엘 맥니콜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아델린(아델린은 '애디'라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역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나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면 '마녀사냥'이란 단어가 남의 이야기로만은 들리지 않을 겁니다. 부끄럽고 어이없게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볼 때면 뭔가 다른 종류의 사람인 냥 생각하고 대합니다.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뇌가 정상(이런 단어를 쓰는 것조차 조금은 불편합니다)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따름인데, 우리는 마치 자폐 스펙트럼을 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자폐 스펙트럼이 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우리의 무지함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주인공 애디는 남다른 청각과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지요. 어떤 것은 너무나 자세하게 보여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초능력이 가깝지 않나 생각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시력이나 청력이 나쁜 분이라면 이 능력이 대단히 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디 주변에는 애디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애디를 이해하고 애디가 가진 능력과 장점에 시선을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다 놓고 자신과 다른 애디를 나쁜 시선을 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심지어 놀리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애디는 견디고 참아냅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자기 목소리를 찾고, 목소리를 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고, 다양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서로 존중하는 삶이야말로 사람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이라고 말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안고 태어난 애디는 늘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습니다.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환자 취급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 독특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애디가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자 이유입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마녀로 몰려 온갖 비난과 수모를 겪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그들에게서 자신을 보았으니까요. 

애디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자행된 부끄러운 역사를 알리려고 합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더 이상의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많은 반대를 겪어야 했을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 편견에 시달렸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디는 이 모든 편견과 난관에도 마녀사냥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건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기고, 한 번 들러붙은 편견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굳은살처럼 더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에게 이런 편견과 왜곡된 시선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을 테니까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아포리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더 깊은 열정으로 피어올라야 할 아포리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하거나 차등한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과 독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생각, 내 뜻, 내가 가진 기준에 다른 사람을 욱여넣는 일은 독재와 독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닐지 몰라도 그 어느 폭력에도 뒤지지 않는 잔인한 폭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부드럽고 넓고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호연지기랑 청소년 시절에만 외쳐야 할 단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을 키워가고 다름을 다름으로 존중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가는 일이야말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품어야 할 높고 거룩한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방향성을 두고 살아갈 때 비로소 또 다른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차별과 차등,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성장소설 스파크를 읽으며 나의 부끄러운 모습과 우리 사는 세상의 부족한 부분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이라는 특징을 가진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가 꿈꾸고 바라고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의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몇 해 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청소년이 모든 용기를 다 끌어내 법정에 서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변호사가 되길 꿈꾸지만 자신은 변호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청소년. 하지만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모든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 법정으로 향하는 자폐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가슴 벅찬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파크를 읽고 난 후 영화 "증인"을 함께 보시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을 바로잡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증인"도 즐겁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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