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미술관 - 잠들기 전 이불 속 설레는 미술관 산책
이원율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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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발 담그고 싶은 당신을 위한 생애 첫 미술책!


이 한문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그림 보는 법을 모릅니다. 어떤 그림이 훌륭한 그림인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림 그릴 줄도 모릅니다. 나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미술에 무관심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술은 늘 마음이 갑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노래를 잠깐 배울 때 스승이셨던 조하문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콕 박혀 있습니다.


"미술작품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노래가 여러 곡 흘러놔와.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음악은 한 폭의 그림 같고, 

그림은 한편의 음악 같아."


이 말 때문인지 음악과 미술이 서로 통하기 때문인지 미술은 음악처럼 나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책이 있습니다. 이원율 작가가 지은 [하룻밤 미술관]이란 책입니다.







책 표지 색깔부터 맘에 쏙 들어왔습니다. 이원율 작가가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풀어 쓴 일종의 해설이 흥미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재미 있었습니다. 다루는 미술가들의 면면도 폭넓을 뿐 아니라 나와 같이 미술에 대해 문외한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하룻밤 미술관]이 담고 있는 예술가의 명단을 한 번 보시죠.


1. 레오나르도 다빈치

2. 카라바조

3.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4. 최북

5.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6. 프란시스코 고야

7. 에드가르 드가

8. 폴 세잔

9. 오귀스트 로댕

10. 콜로드 모네

11. 폴 고갱

12. 빈센트 반 고흐

13. 에드바르 뭉크

14. 빌헬름 하마르스회

15. 윌리엄 터너

16. 툴루즈 로트레크

17. 모리스 위트릴로

18. 프리다 칼로

19. 이중섭


내가 잘 몰랐던 사람도 있고, 우리나라 인물도 포함했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작가들로 촘촘하게 구성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일종의 부록처럼 보이는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궁금할 법한 이야기를 따로 묶어 놓았습니다. "속사정 특집"이란 이름으로 묶어 놓은 부분도 무척 재미와 흥미를 끌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한 판 메이헤런, 스탕달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고, 이원율의 사실에 기초한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질문 아닌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나 예술가의 삶은 고단한 걸까?" 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피어올랐습니다. 이후 "삶이 고단하고 모질기 때문에 예술이 필요한 걸까?" "시련과 고난이 예술로 승화되는 걸까?" "예술 작품 자체가 인생을 담아낼 뿐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유가 바로 화가가 만나고 경험한 삶의 무게 때문일까?" 이런 질문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해설이 나의 마음과 상상을 자극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많은 작가의 많은 그림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해상도의 그림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대감이 솟아오릅니다. 책 제목처럼 하룻밤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고,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을 깊이 감상하고 싶다면 먼저 글을 읽고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 마음이 답답하고, 생각이 복잡한 날이라면 그림을 위주로 감상하는 것도 좋은 읽기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맑아지고,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술이 주는 힘이겠죠.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방구석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
저자: 조원재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18.08.03.

방구석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
저자: 조원재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20.11.18.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저자: 오은정
출판: 안그라픽스
발매: 2021.06.15.

의자와 낙서

의자와 낙서
저자: 서지형
출판: 케이스스터디
발매: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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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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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아, 오해는 금물입니다.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내가 그린 그림을 그림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거의 낙서에 가깝습니다. 제가 자란 경상도 방언으로 말하자면 거의 '항칠' 수준입니다. '항칠'이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봐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항칠: [낙서]의 경상도 사투리.일반적으로 불필요한 낙서를 이르는 말


초등학생 아들 딸이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립니다. 물론 아이를 기르면서 악어와 상어 그림을 수 백장 그렸습니다. 드로잉으로 그리고 약간의 덧칠도 해가면서 그리다 보니 악어와 상어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나마 그림답게 그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연습하면 아마도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림을 배워보고 싶긴 한데 아직까진 불편함이 없어서인지 그림을 배우진 않고 있습니다(저자 오은정의 말처럼 언젠가 나를 더 찾고 싶어서 그림을 배울 날이 올지 나도 궁금합니다. 현재의 나로서는 나를 더 찾고 싶다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성경을 더 깊이 들여다 보거나,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책 제목[지금 시작하는 자화상]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자화상을 그려볼 날이 올까? 그때 조금 더 괜찮게 그릴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을 이 책을 펼쳤습니다. 일종의 그림을 배우는 책으로 생각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기대는 책을 읽으면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책을 열기 전 띠지에 있는 문장이 마음을 때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응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라는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이 와닿았습니다. "그러게,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사람, 세상이 말하고 정의하는 것에 의존해서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려 들겠지? 달리 대안이 없으니 말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오은정이란 작가가 궁금해졌습니다. 짐작하건데 나이는 40대에 미술전공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별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글 쓰는 작가가 아닐까?"


"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


"예술이 본디 사람과 사람의 마음과 가치와 인생과 그 안에 어우러진 관계를 담아내기에 예술가인 오은정 작가가 이렇게나 사람과 마음과 인생과 관계에 대해 자신의 시선으로 꿰뚫어보는 건가?"


"이 책은 자화상을 그리자고 말하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대답해보자. 자신을 더 깊이 대면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대답하자는 책인 것 같다."


"상황이 된다면 오은정 작가가 연다는 자화상 수업 나도 들어보고 싶다."


드로잉을 단순 드로잉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드로잉 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내면과 마음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드로잉 하기 위해 주변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드로잉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고, 충만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마도 오은정 작가가 여는 강의가 지금까지 지속될 뿐 아니라 많은 이가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점이 또 있습니다. "관찰"입니다. 드로잉을 위해서 세심한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타인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의 인생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가족의 자화상을 그리려면 가족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고, 부모님의 인생을 이해야 합니다. 관찰, 그것도 세심한 관찰 없이는 제대로 된 자화상을 그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면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생각을 관찰하고, 욕망과 가치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려는 대상을 주목해서 보고 관찰할 때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담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고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주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겠지요. 결국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열리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은 단순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공유하는 인문학 책이란 생각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은정 작가가 글 쓰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것도 한 몫합니다. 미술가다운 깊은 시선으로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고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담아냈기 때문에 술술 잘 읽힙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나의 감정선을 자극하고 터치했습니다. 곱씹어 읽으면서 울컥 했던 부분도 많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드로잉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나 자신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올랐습니다. 내 주변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과 마음과 내면을 주목하고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돋아올랐습니다. 나의 하는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나의 하는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더 깊이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났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분,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탐색하시고 싶은 분, 자신이 마주한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시고 싶은 분, 자화상에 도전하시고 싶은 분, 드로잉에 관심 있으신 분에게 마음 담아 추천합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참, 책 안에 빼곡한 드로잉은 덤입니다. 충분히 즐기세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울지마, 동물들아!

울지마, 동물들아!
저자: 오은정
출판: 토토북
발매: 2020.07.30.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저자: 오은정
출판: 안그라픽스
발매: 2011.03.25.

의자와 낙서

의자와 낙서
저자: 서지형
출판: 케이스스터디
발매: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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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4 : 세조·예종·성종 - 백성들의 지옥, 공신들의 낙원 조선왕조실록 4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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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역사를 잊은 민족이라면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역사를 잊는 민족이 있다기보단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옆 나라 일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부역시키고, 강제 징용하고, 착취를 일삼았으며 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갔습니다. 인권을 유린하고 착취하고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자신이 어리석은 민족을 개화시켰다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전범이라는 의식, 다른 나라와 민족과 백성을 유린하고 착취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속죄하려는 태도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 지도자의 위치에 떡하니 버티고 섰습니다. 독일이 보여준 행보와는 극명하게 대조, 대비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적 위상에서 일본이 독일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들의 의식은 결코 선진국이라 부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편에 선 사람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고, 그때 당시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의 편에 섰기 때문에 지금도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할 일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미래를 준비할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듬뿍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4]입니다.






조선왕조실록 4번은 세조와 예종 성종의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 이덕일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미래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목적은 미래의 길을 찾고자 함이다.

조선왕조실록 4. 10p


이덕일은 자신이 이 책을 집필한 뚜렷한 이유,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두었습니다.


1. 우리 사회나 한 조직의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청사진으로 삼을 수 있다.

2.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3.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우리 개개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4.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의 약속, 주장이 과장된 말이 아니란 것은 책을 읽으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조는 쿠데타를 통해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장남으로 태어났다면 더없이 좋은 왕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충분히 가정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자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야심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불태웠고, 더불어 주변 사람의 삶을 불태웠으며,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까지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쿠데타로 왕의 자리에 오른 만큼 자신을 도왔던 주변 사람을 공신으로 책봉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여주었습니다. 공신들은 권력을 틀어쥔 채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했습니다. 왕은 그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었지요. 말도 안 되는 악순환이 끝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세조에게 쏟습니다. 그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조실록을 읽으면서 나라가 이렇게나 엉망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를 수 있는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하게 말해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나의 지도자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삶을 살고, 주변 기득권에게 말도 안 되는 혜택을 제공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미얀마를 보라.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백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주목하며 이와 같은 행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쿠데타의 주범 민 아흥 흘라잉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 백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입니다. 굳이 미얀마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서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 있습니다. 국민을 유린하고 속이고 착취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화를 운운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을 법 앞에 세웠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분명한 처벌이 있었다면, 그들이 범죄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예종입니다. 그는 정치적 결단은 분명했으나 정치력이 부족했던 왕이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시대를 파악하는 눈이 약했습니다. 결국 그는 공신들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공신들이 제거한 것처럼 보입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정치력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연히 예종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성종은 어린 나리에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역시 왕이 될 수 없었으나 정치적인 물결에 휩쓸려 왕에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성종은 예종과 달랐고 세조와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정치 수완이 뛰어났습니다. 공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 그랬다가는 예종처럼 단박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신의 말만 들을 수도 없다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사림을 등용하여 절묘한 줄타기를 했습니다. 놀라운 균형감각과 적절한 타협으로 25년이란 시간을 왕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세조, 예종, 연산군이 엉망진창이거나 업적 자체가 없기 때문에 뛰어난 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가 뛰어난 왕이었다기보단 주변 다른 왕들이 하도 엉망이다 보니 반사이익을 받아 뛰어난 왕처럼 보입니다.


성종은 여인의 무서움을 간관했습니다. 조선시대 배경이기도 하고, 사대부 배경을 생각하면 여성은 하대 받을 수밖에 없었던 때입니다. 칠거지악으로 쫓겨나기 쉬웠고, 남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한을 품고 살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정치역량은 뛰어났지만(성종이 보여준 적정한 타협과 줄타기는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여인을 대하는 역량은 바닥을 칩니다. 결국 성종은 왕비를 서민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죽여버립니다. 그의 아들이 연산군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조, 예종, 성종의 이야기로만 두꺼운 책이 한 권 탄생했습니다. 이덕일의 해박한 역사 지식에 한 번 놀랐습니다. 조선 시대 역사를 마치 오늘의 역사처럼 자세하게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글도 잘 씁니다. 수백 년 전 역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놀랐던 한 가지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자체입니다. 이덕일은 책에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실록을 인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세조실록, 예종실록, 성종실록을 인용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왕의 이야기, 신하들의 이야기,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정치적인 묘수가 담긴 이야기, 많은 함의를 가진 이야기, 정치 공략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기록의 민족"이라는 별칭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조 시대는 그 시대에 있었던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겨운 이야기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단종을 몰아내고, 단종 편에 섰던 자들을 처단할 뿐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 아내, 딸을 비롯한 처첩과 종들까지 서로 나누는 장면까지, 누가 누구를 가졌다는 세세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록의 민족입니다.


나는 목사입니다. 종종 성경을 보면서 굳이 이런 기록까지 남겨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성경 말씀을 종종 만납니다. 불편합니다. 민망하기도 합니다. 추잡한 이야기도 수두룩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처참한 이야기는 양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 결국 역사를 보여주고 알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어보게 하는 방향타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더 말 할 것도 없지요.




한 국가 지도자의 자리는 정도를 걸으며 올라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편법이나 쿠데타와 같은 방식은 안 됩니다. 정도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다면 그 나라 백성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 다운 분명한 철학과 신념이 없으면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서서는 안 됩니다. 나라도 망하고 백성도 망하고 본인도 망할 따름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정치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주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독불장군식으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소외된 사람, 연약한 자의 사정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고 이끄는 자이며, 국민에는 연약하고 소외된 자가 반드시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하는 정당을 위주로 지도자를 뽑는 일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정치 노선 갈등과 같은 해묵은 문제를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지도자, 정치역량을 갖춘 지도자, 백성의 문제를 헤아릴 수 있는 지도자,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고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계 속 한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세상을 주도하는 나라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그 길을 걷는 나라가 될 테니까요. 무엇보다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해 갈 테니까요.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4] 나라의 지도자가 먼저 읽고, 장래의 지도자를 꿈꾸는 분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저자: 이덕일
출판: 다산초당
발매: 2019.01.02.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저자: 설민석
출판: 세계사
발매: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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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 주류 경제학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장진영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경제학을 공부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문용어가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솟아오르고, 평생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이름이 많았습니다. 내가 모를 뿐이지 하나 같이 저명한 사람이며,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 받는 사람입니다.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이 책을 쓰면서 방대한 자료를 인용합니다. 단순히 자료를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 받는 사람의 주장과 글을 인용합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책에서 경제학 방법을 다룰 때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들의 견해만 인용하려고 애썼다.

그들 대부분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다.

주류 경제학을 향한 신랄한 비판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역대 최고의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왔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10p







책을 펼치자 마자 저자는 이 책이 얼마나 무거울지 대략 짐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묵직했습니다. 때로는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안타레스 출판사에서도 편집하는 데만 석달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책을 놓고 씨름했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넘어가면서 읽었습니다. 나 자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이버 사전을 뒤적거려가며 읽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 주류 경제학 :

정치 시장 경제를 희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제로 파악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시장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원리를 체계화한 자유주의 경제학.


* 거시 경제학

국민 총생산, 국민 소득, 고용, 투자, 저축, 소비 등 국민 경제 전반의 통계량을 토대로 하여 경제 순환의 동태를 총계 및 확률 면에서 포착하여 경기 변동이나 경제 성장의 규칙성을 분석하는 경제학.


* 미시 경제학

경제 주체인 소비자, 기업의 형태를 분석하고 이들이 시장에서 가격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히는 학문.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자주 사용하고 자주 듣던 말이지만 실제로 정의하라면 정의하기가 까다로워서 사전을 찾아 읽으며 어휘를 늘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문장이자, 귀에 쏙 박히는 말입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빌 클린턴 후보가 내걸었던 선구 운동 문구입니다. 이 문구 하나로 빌 클린턴은 조지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느닷없는 말이지만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이를테면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이 한문장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여러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가 중요한 대목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학 하나만으로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인류가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오만한 생각이니까요.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먼저 경제학 방법론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를 다룹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는 것이 좋은 시작이니까요. 두 번째 장에서 그는 채울 수 없는 욕구와 채우지 못한 수단을 다룹니다. 경제는 사람의 욕구와 욕구를 채우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3장에서는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지 다룹니다. 4장에서는 균형의 문제를 다룹니다. 5장에서는 잘못된 모델이 만든 잘못된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경제학을 향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나느 개인적으로 6장부터 13장의 내용이 좋았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학이 여러 다른 분야의 학문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6장에서는 심리학과의 협력을 7장에서는 사회학의 방법론이 필요한 까닭을 8장에서는 오래된 제도주의와 새로운 제도주의를 9장에서는 권력과 경제학의 문제를 다룹니다. 10장과 11장에서는 왜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야 하는지 왜 경제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12장에서는 윤리학과 경제학의 콜라보를 다루고 13장에서는 경제학이 전지적인 학문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버트 스키텔스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학자가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비록 경제학자가 아니라하더라도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19로 일상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지구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그가 던진 질문은 모든 인류를 향한 질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이 고유한 가치를 더하는 세상,

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과 동일한 가치를 더하는 세상,

경제학이 전혀 가치를 부가하지 않고 

오히려 떨어뜨리는 세상은 무엇일까?

부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리는 그저 부자만 되면 그만인가?

.

.

.

경제학이라는 건물의 1층에 윤리학을 다시 입주시켜야 한다.

인간의 욕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경제학은 아무 제한 없이 

부만 축척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류를 파괴로 몰아가는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몇몇 경제학자들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 모두가 인식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310-311p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하고 동경하는 걸까요? 저자의 말처럼 윤리를 배제하고 나면 탐욕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는 성장을 향한 욕망은 코로나 19사태를 불러왔을 뿐 아니라 지구환경을 이 지경까지 파괴시켰습니다. 더 늦기 전에 환경을 보호하고 탄소배출을 zero 포인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경제학이 윤리학과 조화를 이루고,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사회학의 방법론을 가져와야 할 이유입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고,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심스레 조율하고, 조금은 겸손한 태도로 다른 학문과의 조화를 모색하고,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시도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나아갈 길은 인류의 미래와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놓기엔 너무나 중요한 담론이란 뜻입니다. 모두가 경제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삶을 새롭게 정의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하면 좋겠습니다. 경제학 책이지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책은 인류를 향한 책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학도와 미래의 경제분야의 지도자와 오늘의 경제분야 지도층에 계신 분들의 필독서가 되길 응원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저자: 토마 피케티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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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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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영군(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선촌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반농반어촌의 시골 마을입니다. 여름이면 매일 바닷가에 살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먹는 시간을 빼고 물질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해산물을 잡아 삶아먹으며 놀았습니다. 바다에서 자란 나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다를 볼 수 없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엔 늘 바다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름엔 태풍이 많이 불었습니다. 태풍이 올 때면 마을 사람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습니다.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습니다. 종종 태풍은 그 모든 노력을 가볍게 허사로 만들었습니다. 바닷물이 밭까지 날아가 농작물이 말라 죽었습니다. 바닷물을 뒤집어 썼으니 견디지 못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는 선착장을 박살 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에는 바닷가 쪽 집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붕이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담벼락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더 큰 일도 있었습니다. 종종 시체가 마을 해변으로 떠밀려 왔습니다. 매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꼭 한 구의 시체가 마을 인근 해변으로 휩쓸려 오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오가고 시체를 수습하기까지 거적대기로 시체를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시체를 목격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고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때 목격한 여러 시체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바다에서 자란 나에게 네 번째 여름이란 소설은 다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말 그대로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무슨 장르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겉표지 뒷장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을 보면서 미스터리 장르라고 생각했습니다.


"뒤엉킨 욕망의 그물에 걸려버린 오해와 질투, 복수와 파국의 미스터리!"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의 생각은 강렬해 보이는 저 문구와는 조금 결이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뒤엉킨 욕망, 오해와 질투, 복수와 파국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소설 등장 인물의 면면에 흐르는 이야기는 '가슴 아픈 사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해를 부추긴 사람이 있고, 오해 때문에 엉뚱한 복수도 일어났습니다. 마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삶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솟아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두 노년은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사랑으로 엮어 있습니다. 서로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 그저 기구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을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을 보면 이 자연스러운 일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학벌, 돈, 가문, 명예, 건강, 지연, 학연 등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사랑을 왜곡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고 요즘 말로 대세다 보니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닌,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해심과 만선의 사랑 역시 주변 사람에 의해, 욕심에 의해, 오해와 갈등에 의해 짓이겨졌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노년이 되어서까지 그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결국 생의 마지막은 같은 공간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타인의 욕심과 오해와 갈등이 전혀 가닿지 못한 그들만의 장소에서 끝납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 사랑이 말라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사랑을 쥐고 흔드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낯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번쯤은 멈춰 서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과 가족을 향한 사랑에 불순물이 끼어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 보면 좋겠습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류현재 작가의 [네 번째 여름]이 여름, 바다를 떠올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더 담으며 읽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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