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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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아, 오해는 금물입니다.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내가 그린 그림을 그림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거의 낙서에 가깝습니다. 제가 자란 경상도 방언으로 말하자면 거의 '항칠' 수준입니다. '항칠'이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봐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항칠: [낙서]의 경상도 사투리.일반적으로 불필요한 낙서를 이르는 말


초등학생 아들 딸이 나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립니다. 물론 아이를 기르면서 악어와 상어 그림을 수 백장 그렸습니다. 드로잉으로 그리고 약간의 덧칠도 해가면서 그리다 보니 악어와 상어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나마 그림답게 그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연습하면 아마도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림을 배워보고 싶긴 한데 아직까진 불편함이 없어서인지 그림을 배우진 않고 있습니다(저자 오은정의 말처럼 언젠가 나를 더 찾고 싶어서 그림을 배울 날이 올지 나도 궁금합니다. 현재의 나로서는 나를 더 찾고 싶다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성경을 더 깊이 들여다 보거나,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책 제목[지금 시작하는 자화상]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자화상을 그려볼 날이 올까? 그때 조금 더 괜찮게 그릴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을 이 책을 펼쳤습니다. 일종의 그림을 배우는 책으로 생각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기대는 책을 읽으면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책을 열기 전 띠지에 있는 문장이 마음을 때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응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라는 칼 구스타프 융의 말이 와닿았습니다. "그러게,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사람, 세상이 말하고 정의하는 것에 의존해서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려 들겠지? 달리 대안이 없으니 말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오은정이란 작가가 궁금해졌습니다. 짐작하건데 나이는 40대에 미술전공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별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글 쓰는 작가가 아닐까?"


"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


"예술이 본디 사람과 사람의 마음과 가치와 인생과 그 안에 어우러진 관계를 담아내기에 예술가인 오은정 작가가 이렇게나 사람과 마음과 인생과 관계에 대해 자신의 시선으로 꿰뚫어보는 건가?"


"이 책은 자화상을 그리자고 말하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대답해보자. 자신을 더 깊이 대면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대답하자는 책인 것 같다."


"상황이 된다면 오은정 작가가 연다는 자화상 수업 나도 들어보고 싶다."


드로잉을 단순 드로잉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드로잉 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내면과 마음을 깊숙하게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드로잉 하기 위해 주변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드로잉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고, 충만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마도 오은정 작가가 여는 강의가 지금까지 지속될 뿐 아니라 많은 이가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점이 또 있습니다. "관찰"입니다. 드로잉을 위해서 세심한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해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타인의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의 인생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가족의 자화상을 그리려면 가족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고, 부모님의 인생을 이해야 합니다. 관찰, 그것도 세심한 관찰 없이는 제대로 된 자화상을 그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면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생각을 관찰하고, 욕망과 가치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려는 대상을 주목해서 보고 관찰할 때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담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고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주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겠지요. 결국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열리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은 단순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공유하는 인문학 책이란 생각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은정 작가가 글 쓰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것도 한 몫합니다. 미술가다운 깊은 시선으로 사람의 내면을 관찰하고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로 담아냈기 때문에 술술 잘 읽힙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나의 감정선을 자극하고 터치했습니다. 곱씹어 읽으면서 울컥 했던 부분도 많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드로잉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나 자신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올랐습니다. 내 주변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과 마음과 내면을 주목하고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돋아올랐습니다. 나의 하는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나의 하는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더 깊이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났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분,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탐색하시고 싶은 분, 자신이 마주한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시고 싶은 분, 자화상에 도전하시고 싶은 분, 드로잉에 관심 있으신 분에게 마음 담아 추천합니다. 참 좋은 책입니다.


참, 책 안에 빼곡한 드로잉은 덤입니다. 충분히 즐기세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울지마, 동물들아!

울지마, 동물들아!
저자: 오은정
출판: 토토북
발매: 2020.07.30.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저자: 오은정
출판: 안그라픽스
발매: 2011.03.25.

의자와 낙서

의자와 낙서
저자: 서지형
출판: 케이스스터디
발매: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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