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4 : 세조·예종·성종 - 백성들의 지옥, 공신들의 낙원 조선왕조실록 4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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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역사를 잊은 민족이라면 그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역사를 잊는 민족이 있다기보단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옆 나라 일본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부역시키고, 강제 징용하고, 착취를 일삼았으며 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끌고 갔습니다. 인권을 유린하고 착취하고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어이없게도 자신이 어리석은 민족을 개화시켰다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전범이라는 의식, 다른 나라와 민족과 백성을 유린하고 착취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속죄하려는 태도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 지도자의 위치에 떡하니 버티고 섰습니다. 독일이 보여준 행보와는 극명하게 대조, 대비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적 위상에서 일본이 독일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들의 의식은 결코 선진국이라 부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편에 선 사람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고, 그때 당시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의 편에 섰기 때문에 지금도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할 일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미래를 준비할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듬뿍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4]입니다.






조선왕조실록 4번은 세조와 예종 성종의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 이덕일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미래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목적은 미래의 길을 찾고자 함이다.

조선왕조실록 4. 10p


이덕일은 자신이 이 책을 집필한 뚜렷한 이유,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두었습니다.


1. 우리 사회나 한 조직의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청사진으로 삼을 수 있다.

2.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3.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우리 개개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4.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의 약속, 주장이 과장된 말이 아니란 것은 책을 읽으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조는 쿠데타를 통해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장남으로 태어났다면 더없이 좋은 왕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충분히 가정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세자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야심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불태웠고, 더불어 주변 사람의 삶을 불태웠으며,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의 운명까지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쿠데타로 왕의 자리에 오른 만큼 자신을 도왔던 주변 사람을 공신으로 책봉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여주었습니다. 공신들은 권력을 틀어쥔 채 백성을 압제하고 착취했습니다. 왕은 그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었지요. 말도 안 되는 악순환이 끝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세조에게 쏟습니다. 그만큼 이야기할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조실록을 읽으면서 나라가 이렇게나 엉망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를 수 있는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하게 말해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나의 지도자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삶을 살고, 주변 기득권에게 말도 안 되는 혜택을 제공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미얀마를 보라.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백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주목하며 이와 같은 행태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쿠데타의 주범 민 아흥 흘라잉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 백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나라의 미래가 어떨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입니다. 굳이 미얀마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서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 있습니다. 국민을 유린하고 속이고 착취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화를 운운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을 법 앞에 세웠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분명한 처벌이 있었다면, 그들이 범죄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음은 예종입니다. 그는 정치적 결단은 분명했으나 정치력이 부족했던 왕이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시대를 파악하는 눈이 약했습니다. 결국 그는 공신들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공신들이 제거한 것처럼 보입니다. 나라의 지도자에게 정치력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연히 예종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성종은 어린 나리에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역시 왕이 될 수 없었으나 정치적인 물결에 휩쓸려 왕에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성종은 예종과 달랐고 세조와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정치 수완이 뛰어났습니다. 공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 그랬다가는 예종처럼 단박에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그렇다고 공신의 말만 들을 수도 없다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사림을 등용하여 절묘한 줄타기를 했습니다. 놀라운 균형감각과 적절한 타협으로 25년이란 시간을 왕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세조, 예종, 연산군이 엉망진창이거나 업적 자체가 없기 때문에 뛰어난 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가 뛰어난 왕이었다기보단 주변 다른 왕들이 하도 엉망이다 보니 반사이익을 받아 뛰어난 왕처럼 보입니다.


성종은 여인의 무서움을 간관했습니다. 조선시대 배경이기도 하고, 사대부 배경을 생각하면 여성은 하대 받을 수밖에 없었던 때입니다. 칠거지악으로 쫓겨나기 쉬웠고, 남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한을 품고 살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정치역량은 뛰어났지만(성종이 보여준 적정한 타협과 줄타기는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여인을 대하는 역량은 바닥을 칩니다. 결국 성종은 왕비를 서민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죽여버립니다. 그의 아들이 연산군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조, 예종, 성종의 이야기로만 두꺼운 책이 한 권 탄생했습니다. 이덕일의 해박한 역사 지식에 한 번 놀랐습니다. 조선 시대 역사를 마치 오늘의 역사처럼 자세하게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글도 잘 씁니다. 수백 년 전 역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놀랐던 한 가지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자체입니다. 이덕일은 책에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실록을 인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세조실록, 예종실록, 성종실록을 인용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왕의 이야기, 신하들의 이야기,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 정치적인 묘수가 담긴 이야기, 많은 함의를 가진 이야기, 정치 공략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기록의 민족"이라는 별칭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조 시대는 그 시대에 있었던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겨운 이야기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단종을 몰아내고, 단종 편에 섰던 자들을 처단할 뿐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 아내, 딸을 비롯한 처첩과 종들까지 서로 나누는 장면까지, 누가 누구를 가졌다는 세세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기록의 민족입니다.


나는 목사입니다. 종종 성경을 보면서 굳이 이런 기록까지 남겨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성경 말씀을 종종 만납니다. 불편합니다. 민망하기도 합니다. 추잡한 이야기도 수두룩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처참한 이야기는 양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꼼꼼하게 기록한 것이 결국 역사를 보여주고 알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어보게 하는 방향타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더 말 할 것도 없지요.




한 국가 지도자의 자리는 정도를 걸으며 올라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편법이나 쿠데타와 같은 방식은 안 됩니다. 정도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다면 그 나라 백성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 다운 분명한 철학과 신념이 없으면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서서는 안 됩니다. 나라도 망하고 백성도 망하고 본인도 망할 따름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정치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차피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주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독불장군식으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소외된 사람, 연약한 자의 사정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고 이끄는 자이며, 국민에는 연약하고 소외된 자가 반드시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하는 정당을 위주로 지도자를 뽑는 일이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정치 노선 갈등과 같은 해묵은 문제를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지도자, 정치역량을 갖춘 지도자, 백성의 문제를 헤아릴 수 있는 지도자,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고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계 속 한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세상을 주도하는 나라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그 길을 걷는 나라가 될 테니까요. 무엇보다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해 갈 테니까요.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4] 나라의 지도자가 먼저 읽고, 장래의 지도자를 꿈꾸는 분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저자: 이덕일
출판: 다산초당
발매: 2019.01.02.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저자: 설민석
출판: 세계사
발매: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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