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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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영군(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선촌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반농반어촌의 시골 마을입니다. 여름이면 매일 바닷가에 살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먹는 시간을 빼고 물질하면서 놀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해산물을 잡아 삶아먹으며 놀았습니다. 바다에서 자란 나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다를 볼 수 없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엔 늘 바다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름엔 태풍이 많이 불었습니다. 태풍이 올 때면 마을 사람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습니다.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농작물 피해를 줄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습니다. 종종 태풍은 그 모든 노력을 가볍게 허사로 만들었습니다. 바닷물이 밭까지 날아가 농작물이 말라 죽었습니다. 바닷물을 뒤집어 썼으니 견디지 못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는 선착장을 박살 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해에는 바닷가 쪽 집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붕이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담벼락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더 큰 일도 있었습니다. 종종 시체가 마을 해변으로 떠밀려 왔습니다. 매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꼭 한 구의 시체가 마을 인근 해변으로 휩쓸려 오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오가고 시체를 수습하기까지 거적대기로 시체를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시체를 목격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고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때 목격한 여러 시체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바다에서 자란 나에게 네 번째 여름이란 소설은 다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말 그대로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무슨 장르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겉표지 뒷장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을 보면서 미스터리 장르라고 생각했습니다.


"뒤엉킨 욕망의 그물에 걸려버린 오해와 질투, 복수와 파국의 미스터리!"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의 생각은 강렬해 보이는 저 문구와는 조금 결이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뒤엉킨 욕망, 오해와 질투, 복수와 파국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소설 등장 인물의 면면에 흐르는 이야기는 '가슴 아픈 사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해를 부추긴 사람이 있고, 오해 때문에 엉뚱한 복수도 일어났습니다. 마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삶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솟아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두 노년은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사랑으로 엮어 있습니다. 서로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 그저 기구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을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을 보면 이 자연스러운 일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학벌, 돈, 가문, 명예, 건강, 지연, 학연 등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사랑을 왜곡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일어나고 요즘 말로 대세다 보니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닌,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해심과 만선의 사랑 역시 주변 사람에 의해, 욕심에 의해, 오해와 갈등에 의해 짓이겨졌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노년이 되어서까지 그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합니다. 결국 생의 마지막은 같은 공간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타인의 욕심과 오해와 갈등이 전혀 가닿지 못한 그들만의 장소에서 끝납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 사랑이 말라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사랑을 쥐고 흔드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낯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번쯤은 멈춰 서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과 가족을 향한 사랑에 불순물이 끼어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 보면 좋겠습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류현재 작가의 [네 번째 여름]이 여름, 바다를 떠올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더 담으며 읽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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