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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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질병을 진단하는 절차는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것만큼 근본적인 행위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8p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라니?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부키 출판사의 책이라는 것,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가 없었습니다. 책을 펼쳐서 읽으면서 저자의 재치와 해박한 의학 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에 빠져들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의학적으로도 훌륭한 책일 뿐 아니라 책 전체를 빼곡히 수놓은 탁월한 추리력도 빼놓을 수 없는 탐정물 같은 책입니다. 저자 이지환이 소환한 환자의 명단은 "이게 실화야?"라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저자가 예리한 추리와 의학지식으로 파고든 환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종의 허리 : 조선 최고의 리더가 운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 가우디의 뼈: 천상의 건축가는 왜 하필 해골 집을 지었을까?

3.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꾼이 된 사연

4. 모차르트의 부종 : 음악 신동의 사인은 질투인가 돼지고기인가?

5. 로트레크의 키 : 물랭루주의 천재 화가는 왜 난쟁이로 태어났을까?

6. 니체의 두통 : 실존 철학의 선구자는 어쩌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까?

7. 모네의 눈 : 인상파의 거장이 추상화처럼 그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8. 프리다의 다리 : 자화상의 대가는 왜 자기 자신을 붉은 과일로 그렸을까?

9. 퀴리의 피 : 노벨상 2회 수상 과학자가 정말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10. 말리의 피부 : 희망을 노래한 레게의 대부는 왜 암을 방치했을까?


환자 리스트에 올린 이름을 보면서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세종 대왕까지 소환해 낼 뿐 아니라 세종 대왕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역사 고증까지 마친 저자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왜 세종 대왕이 운동을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는 가우디가 왜 뼈에 집착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환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모든 분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들, 지금 우리 삶의 질을 이렇게나 아름답고 풍요하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들의 삶을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처럼 날카로운 메스로 위인의 은밀한 삶을 해부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위인의 삶, 그것도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고 숨겨진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숨겨진 삶을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위인의 삶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그들의 업적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고난의 무게가 가볍지 않고, 시련의 강도가 낮지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치열할 뿐 아니라 열정적인 삶으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그들의 삶을 이렇게나 깊숙하게 보게 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환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위인을 오해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매력적인 책이라 생각합니다. 세종 대왕은 운동을 싫어하거나 게으른 것이 아니었음을, 건축에 해골을 등장시킨 것이 기괴한 취미 때문이 아니었음을,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에 빠져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질투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 아니었음을(이 부분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로 굳어져 버린 굳은살을 제거해 낸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천재 화가 로트레크가 사창가와 술집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실존 철학자 니체가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인상파의 거장이 추상화처럼 그림을 그린 이유,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붉은 과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퀴리 부인의 놀라운 업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레게 음악의 대부 말리, 총탄마저도 막아설 수 없었던 말리가 암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숨은 이야기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수적으로 얻게 된 아름다운 수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나'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우리'라는 더 큰 명제 속에 '나'를 집어넣고 싶은 얄팍한 열망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난 이야기나 사건으로 한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오해합니다.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나 사건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존재입니다. 그(그녀)를 둘러싼 역사, 사회, 문화 배경을 살펴보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비로소 그(그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외면합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이 진리를 다시금 소환합니다. 바깥으로 드러난 위인의 삶 그 이면의 삶에 주목하게 하면서 위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듭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로잡아줍니다.

여기서 배운 통찰을 우리('나')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고 넓은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건과 사고는 끊이질 않습니다. 코로나는 가뜩이나 창궐하는 갈등과 분열의 불꽃에다 기름을 들이부은 격입니다.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난하기 바쁜 또 빠른 시대, 키보드로 사람을 음해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더 깊숙하게 들여다본다면 오해는 이해로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갈등과 분열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에서라도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이 시대의 필독서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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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3 - 중세에서 온 선생님과 무시무시한 박람회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3
앨리스 해밍 지음, 마이크 가튼 그림, 민지현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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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1편을 읽었습니다. 5학년 B반 학생은 특별한 학생으로 구성된 특별한 반입니다. 보기에 따라 사고뭉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 다양한 개성으로 서로를 돕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멋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이기도 하지요. 첫 번째 책에서는 새로 오신 선생님과 함께 원시시대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야말로 기막힌 체험활동이었지요.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 알로는 반 친구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친구들의 장점과 남다른 능력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서로의 다른 점과 장점을 사용해서 어려운 순간을 극복한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이번에 읽은 메모왕 알로 이야기는 3번째 이야기이며 중세에서 오신 무섭고 특이한 선생님과 무시무시한 박람회 이야기입니다. 제목만으로도 흥미진진해 보이며, 이번에 알로와 그의 친구들이 어떤 모험을 할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5학년 B반 블랜드 선생님은 표정도 없고, 엄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컬러를 싫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교실을 온통 잿빛으로 바꾸고 나무 책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식단도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에도 남녀를 따로 구분해서 놀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자행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예산 절감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학생의 권리나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 하려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블리 교장선생님은 블랜드 선생님에게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 5학년 B반 학생들은 이번에도 자기들만의 계획을 세웁니다. 할로윈 행사를 열어 돈을 모으고 모은 돈으로 교실을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계획입니다. 블랜드 선생님은 반대했지만 위블리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어렵사리 계획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업무를 정확하게 나누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블랜드 선생님과 그의 아바타(?)라 부를 수 있는 토니 아베스는 5학년 B반 학생의 계획을 망가뜨립니다. 할로윈 박람회를 통해 자신의 야심을 이루려 합니다.


위기의 순간 메모왕 알로와 5학년 B반 학생들은 기지를 발휘하여 블랜드 선생님의 음모를 낱낱이 공개합니다. 토니 아베스의 정체도 드러냅니다. 역시 이번에도 5학년 B반 학생들은 서로를 돕고, 서로의 재능을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합니다.




지난번 책을 읽으면서 나의 초등학교(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시절을 상상했고, 이번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3편을 읽으면서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나의 아들 유건이가 5학년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나의 아들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친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지, 반 친구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빠로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음 번 시리즈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다음엔 또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어떤 여행과 모험을 떠나게 될지, 다음엔 또 어떤 기지를 발휘하고 어떻게 협력해서 어려움을 극복할지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면 자라는 나의 자녀와 우리의 자녀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더없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과 함께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장점과 능력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며, 서로 도우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를 읽을 때마다 이 생각이 저절로 솟아오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은 당연히 메모왕 알로 시리즈입니다.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저자: 앨리스 해밍
출판: 아름다운사람들
발매: 2021.06.17.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저자: 앨리스 해밍
출판: 아름다운사람들
발매: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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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만든 사람들 - 과학사에 빛나는 과학 발견과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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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에 젬병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유일하게 '생물' 수업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과학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무슨 말인지 개념조차 잡기 힘든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어느 시점엔가 인체의 신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인체의 신비'전을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DNA와 게놈 프로젝트 등이 더 발전하면 인류가 상당수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천문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하늘과 하늘 너머 저 광활한 우주가 궁금했습니다. 별과 별자리 은하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도대체 상상을 초월하는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양자물리학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마블 시리즈를 보면서 그 안에 얽혀 있는 양자물리학 이야기가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도 같은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과학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과학은 어려운 무엇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지의 영역입니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지만 나의 지성으로는 너무나 버거운 어떤 것입니다. 이런 나의 호기심과 관심을 단번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과학을 인문학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을 만든 사람들]이란 책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자 존 그리빈의 생각과 사상,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 문장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 존 그리빈이 어떤 관점으로 과학사를 썼는지 보여주는 문장이며, 이 책을 이해하는 키워드와 같은 문장입니다.

과학자와 각 과학자 세대는

자신의 시대라는 맥락 안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면서

그 시대에 쓸 수 있는 기술의 도움을 받고 그전에 이루어진 것을 바탕으로 삼지만,

기여할 때는 개인으로서 기여하게 된다.

과학을 만든 사람들 912p.

벽돌처럼 홀로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이 두꺼운 책의 저자 존 그리빈이 이 방대한 책을 집필할 때 핵심 사상으로 삼은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기 때문에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의 면면을 필연적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각 과학자가 이루어낸 개별적인 업적,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업적을 주도 면밀하게 살펴봅니다. 그러나 존 그리빈은 과학자의 업적을 주목하지만 각 과학자의 개별적인 능력이나 천재성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볼 때는 의도적으로 각 과학자의 천재성과 능력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업적을 이루어 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시기적으로 조금 더 늦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과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과학자,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룬 과학자가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저자 존 그리빈은 그 영역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과학 자체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 자체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과학은 주관적인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학문을 다루는 장입니다. 즉 어느 영역에서도 과학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 영역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학사를 보면 과학적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때 천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이 대세였다는 것만 보아도 이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엔 의사가 손을 씻지 않아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엎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과학자들이 과거의 유산 없이 독자적으로 이룬 업적이 아니라고 그리빈은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과학 진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 발전이 가능했고, 그 토대 위에서 잘못된 진리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부분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리빈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 이론에 거부합니다. 과학은 아무 토대 없이 어느 순간 혁명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의 수고와 땀 위를 토양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존 그리빈의 주장이자 토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사를 살피기 때문에 존 그리빈은 한 과학자의 대단한 업적을 저술하면서 주변 모든 상황을 다 담아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와 가족, 또 그들이 받은 교육과 환경까지 섬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배출되기 위해, 위대한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존 그리빈의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과학사를 다룬 책이면서 동시에 인문학 서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성숙하고 진보한 데는 결국 인문학적 환경이 뒷받침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존 그리빈은 보여줍니다(저자 존 그리빈이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였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사를 다룬 책은 그리스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 시대로 잡는 셈입니다. 어쩌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보아도 그 안에는 너무나 복잡한 수학과 과학이 담겨 있으니 그때부터 과학사를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빈은 본격적으로 이성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과학사를 저술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진정한 과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 존 그리빈이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과학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틀입니다.


책의 흐름을 보여주는 큰 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암흑시대를 벗어나다

제2부: 기초를 놓은 사람들

제3부: 계몽시대

제4부: 큰 그림

제5부: 현대

목차가 보여주듯 르네상스(암흑시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학사를 조목조목 다룹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해서 내우주 외우주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과학사의 영역을 빼곡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저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코페르니쿠스는 실험조차하지 않은 과학자라는 사실입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고, 사뭇 코페르니쿠스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의사였다는 것과 폴란드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참사 회원이 되었다는 점, 그래서 평생 일하지 않아도 급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생활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천문학에 관심을 계속 쏟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단순히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천문학을 탐색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존 그리빈은 해석합니다.


서점에 가서 보시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벽돌처럼 홀로 유유자적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두꺼운 책입니다. 과학사라는 접하기 쉽지 않은 장르를 다루었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탁월한 과학자라고 부르며 흠모하거나 추켜세우는 인물의 업적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주변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야사처럼 보여서 읽는 맛이 좋습니다. 두께가 있다 보니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 수 있을 듯합니다. 망설임과 두려움을 뚫고 책을 집어 들어 펼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책은 두껍지만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인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어서 입체적으로 과학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단한 과학자가 홀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과학의 발전에 적은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책꽂이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어도 좋을 책이며, 언제든 펼쳐서 읽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멋진 책입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책을 출간해 주신 진선북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책은 진선북스에서 지원받았으며, 저의 시선에서 솔직하게 리뷰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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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마녀 네네칫 2 - 마운트 쿡 마법 학교 양말 마녀 네네칫 2
신현경 지음, 한호진 그림 / 요요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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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소설, 아동 소설을 읽는 어른은 정상일까요? 그렇다고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종종 어린이 소설, 아동 소설, 성장 소설을 읽는 어른이거든요. 몇 달 전 양말 마녀 네네칫 1편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2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어린이 소설은 밝습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는 점이 좋습니다. 둘째, 어린이 소설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복잡하기 않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셋째,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재미없으면 읽는 즐거움이 떨어집니다. 양말 마녀 네네칫 두 번째 이야기 마운트 쿡 마법학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양말 마녀 네네칫 제2편에서 네네칫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선택받은 마녀인지 확인하기 위해 마운트 쿡 마법학교에 찾아갑니다. 마운트 쿡 마법학교에서의 신나는 모험과 우정으로 가득한 어린이 소설이자 어린이 판타지 소설입니다. 네네칫은 마운트 쿡 마법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납니다. 어린이들이 쉽게 친구를 사귀고 친구가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어른으로서 부럽기도 한 장면입니다. 요즘은 좋은 친구 사귀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또한 양말 마녀 네네칫은 자신과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핍핍핍, 핍핍, 핍과도 함께 모험을 즐깁니다. 그들과 함께 마운트 쿡 마법학교에 숨어 있는 비밀을 하나씩 캐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요. 엉뚱한 사고를 쳐서(학교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네네칫이 이 규칙을 어기죠) 벌을 받기도 합니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간지럽히는 괴물 마하하를 만나기도 하고요. 친구들과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은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네네칫은 마법학교에 무언가 숨어 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 아이샤, 핍핍핍, 핍핍, 핍과 함께 모험을 시작합니다. 양말 마녀 네네칫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마녀로서 자신의 능력치를 어디까지 끌어올리게 될지, 무엇보다 마운트 쿡 마법학교에 숨어 있는 비밀을 어떻게 풀어갈지 호기심과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리는 것으로 책은 끝납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기도 하고요.


나에게는 양말 마녀 네네칫을 닮은 딸이 있습니다. 엉뚱하고 덤벙대는 딸, 동시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모험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딸이 있습니다. 네네칫을 읽으며 딸이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딸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갈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어떻게 키워갈지, 마운트 쿡 마법학교와 같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문제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그들과 어떤 모험을 즐기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지 질문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네네칫 다음 편 이야기보다 훨씬 더 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좋은 소설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하며, 꿈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판타지 소설 [양말 마녀 네네칫- 마운트 쿡 마법학교]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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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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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비결은 복수, 재료는 남편.

완벽하고 치명적인 레시피가 펼쳐진다."

치명적인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띠지의 글이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요리로 복수하는 이야기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은밀하게 치명적인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일까? 무슨 말을 하려는 책일까? 시대 배경은 언제일까? 등장인물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토론토스타 선정 올해의 책, 가장 기대되는 여성 소설, 아마존 인터내셔널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15개국 판권 판매, 출간 즉시 영화화 확정 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슈로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 소설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입니다.




1950년대와 2010년대가 배경입니다. 장소는 같은 집, 같은 공간입니다. 1950년대 그 집에서 살아간 여성의 이야기와 2010년 후반에 그 집에서 살아간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얽혀 있습니다. 다른 장면과 다른 시대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서로에게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살아간 아내이자 주부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 시대 여성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았는지, 아내이자 주부 여성으로서 어떤 사회 위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세월이 훌쩍 지난 2010년 후반 미국을 살아가는 아내이자 주부 그리고 여성의 사회 위치를 보여줍니다.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대하는지, 이 시대 여성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액면가 그대로 본다면 1950년대를 살아간 여성의 사회 위치가 지금보단 더 낮아 보입니다. 그 시대 미국 여성은 전업주부로 가정을 돌보고, 정원을 가꾸고, 손님을 맞이하고, 요리하고, 남편의 뒷바라지에 전념합니다. 이웃 사람과도 비교적 가깝게 지내며, 속내를 터놓기도 합니다. 2010년 후반을 살아가는 여성은 커리어 우먼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합니다. 어설프지만 요리도 하고, 친구를 사귀고 이웃 사람과도 교제하며 지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아기'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은 아기를 낳는다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1950년대 여성에게는 아기를 가지는 일에 크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과 2010년 후반을 사는 여성은 아기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결정권이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은 자녀를 낳아야 할 특권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라면 남자의 기대입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기대는 전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현재보다 과거엔 남자가 지나칠 정도로 가부장적이라는 것과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이 말하려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여성의 위치입니다. 아내이자 주부, 여성으로서의 여성의 위치와 사회적 기대와 시선입니다. 남성이자 남편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성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페미니즘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지, 아내이자 주부 또 여성으로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지금은 여성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남자보다 여자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남자보다 여성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남자는 죽도록 일만 하고 돈만 벌어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성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친구와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이지만 여성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증거라고도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의 인권은 더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아직 유리 천장에 금이 제대로 가지 않았다고 느끼는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요. 무엇보다 직장에서 성폭력이나 추행, 차별의 문제는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조건에서 일을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봉급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각종 사회 지도자 계층엔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이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성에 대한 사회 인식과 개인의 인식의 문제를 소설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는 주부, 아내, 여성의 이야기로 잘 풀어냈습니다. 남성으로서 여성이자 아내를 더 존중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더 깊고 신중한 접근과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한 소설입니다. 여성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주부, 커리어 우먼, 아내, 이웃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을 탄생한다는 점에서는 무엇보다 존중받아야 하겠지요.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를 읽으며 제가 생각해 본 것들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바로 레시피입니다. 각 챕터를 시작할 때마다 첫 자리를 차지하는 요리 이름과 레시피는 독자에게 보너스처럼 다가옵니다. 나는 요리를 전혀 못하지만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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