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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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질병을 진단하는 절차는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것만큼 근본적인 행위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8p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땐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라니?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부키 출판사의 책이라는 것,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가 없었습니다. 책을 펼쳐서 읽으면서 저자의 재치와 해박한 의학 지식과 유려한 글 솜씨에 빠져들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의학적으로도 훌륭한 책일 뿐 아니라 책 전체를 빼곡히 수놓은 탁월한 추리력도 빼놓을 수 없는 탐정물 같은 책입니다. 저자 이지환이 소환한 환자의 명단은 "이게 실화야?"라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저자가 예리한 추리와 의학지식으로 파고든 환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종의 허리 : 조선 최고의 리더가 운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 가우디의 뼈: 천상의 건축가는 왜 하필 해골 집을 지었을까?

3.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꾼이 된 사연

4. 모차르트의 부종 : 음악 신동의 사인은 질투인가 돼지고기인가?

5. 로트레크의 키 : 물랭루주의 천재 화가는 왜 난쟁이로 태어났을까?

6. 니체의 두통 : 실존 철학의 선구자는 어쩌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까?

7. 모네의 눈 : 인상파의 거장이 추상화처럼 그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8. 프리다의 다리 : 자화상의 대가는 왜 자기 자신을 붉은 과일로 그렸을까?

9. 퀴리의 피 : 노벨상 2회 수상 과학자가 정말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10. 말리의 피부 : 희망을 노래한 레게의 대부는 왜 암을 방치했을까?


환자 리스트에 올린 이름을 보면서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세종 대왕까지 소환해 낼 뿐 아니라 세종 대왕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역사 고증까지 마친 저자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예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왜 세종 대왕이 운동을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는 가우디가 왜 뼈에 집착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환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모든 분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들, 지금 우리 삶의 질을 이렇게나 아름답고 풍요하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들의 삶을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처럼 날카로운 메스로 위인의 은밀한 삶을 해부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위인의 삶, 그것도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고 숨겨진 삶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숨겨진 삶을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위인의 삶이 더 아름답게 보였고, 그들의 업적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고난의 무게가 가볍지 않고, 시련의 강도가 낮지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치열할 뿐 아니라 열정적인 삶으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그들의 삶을 이렇게나 깊숙하게 보게 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환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위인을 오해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매력적인 책이라 생각합니다. 세종 대왕은 운동을 싫어하거나 게으른 것이 아니었음을, 건축에 해골을 등장시킨 것이 기괴한 취미 때문이 아니었음을,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에 빠져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질투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 아니었음을(이 부분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로 굳어져 버린 굳은살을 제거해 낸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천재 화가 로트레크가 사창가와 술집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실존 철학자 니체가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인상파의 거장이 추상화처럼 그림을 그린 이유,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붉은 과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퀴리 부인의 놀라운 업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레게 음악의 대부 말리, 총탄마저도 막아설 수 없었던 말리가 암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숨은 이야기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수적으로 얻게 된 아름다운 수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나'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우리'라는 더 큰 명제 속에 '나'를 집어넣고 싶은 얄팍한 열망입니다) 바깥으로 드러난 이야기나 사건으로 한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오해합니다.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나 사건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존재입니다. 그(그녀)를 둘러싼 역사, 사회, 문화 배경을 살펴보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비로소 그(그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외면합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이 진리를 다시금 소환합니다. 바깥으로 드러난 위인의 삶 그 이면의 삶에 주목하게 하면서 위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듭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로잡아줍니다.

여기서 배운 통찰을 우리('나')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고 넓은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건과 사고는 끊이질 않습니다. 코로나는 가뜩이나 창궐하는 갈등과 분열의 불꽃에다 기름을 들이부은 격입니다.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난하기 바쁜 또 빠른 시대, 키보드로 사람을 음해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더 깊숙하게 들여다본다면 오해는 이해로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갈등과 분열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에서라도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이 시대의 필독서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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