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만든 사람들 - 과학사에 빛나는 과학 발견과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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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에 젬병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유일하게 '생물' 수업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과학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무슨 말인지 개념조차 잡기 힘든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어느 시점엔가 인체의 신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인체의 신비'전을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DNA와 게놈 프로젝트 등이 더 발전하면 인류가 상당수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천문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하늘과 하늘 너머 저 광활한 우주가 궁금했습니다. 별과 별자리 은하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도대체 상상을 초월하는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양자물리학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마블 시리즈를 보면서 그 안에 얽혀 있는 양자물리학 이야기가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도 같은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과학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과학은 어려운 무엇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지의 영역입니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지만 나의 지성으로는 너무나 버거운 어떤 것입니다. 이런 나의 호기심과 관심을 단번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과학을 인문학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을 만든 사람들]이란 책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자 존 그리빈의 생각과 사상, 이 책을 이해하는 핵심 문장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 존 그리빈이 어떤 관점으로 과학사를 썼는지 보여주는 문장이며, 이 책을 이해하는 키워드와 같은 문장입니다.

과학자와 각 과학자 세대는

자신의 시대라는 맥락 안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면서

그 시대에 쓸 수 있는 기술의 도움을 받고 그전에 이루어진 것을 바탕으로 삼지만,

기여할 때는 개인으로서 기여하게 된다.

과학을 만든 사람들 912p.

벽돌처럼 홀로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이 두꺼운 책의 저자 존 그리빈이 이 방대한 책을 집필할 때 핵심 사상으로 삼은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기 때문에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의 면면을 필연적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각 과학자가 이루어낸 개별적인 업적,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업적을 주도 면밀하게 살펴봅니다. 그러나 존 그리빈은 과학자의 업적을 주목하지만 각 과학자의 개별적인 능력이나 천재성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볼 때는 의도적으로 각 과학자의 천재성과 능력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업적을 이루어 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시기적으로 조금 더 늦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과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과학자,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룬 과학자가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저자 존 그리빈은 그 영역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과학 자체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 자체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과학은 주관적인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학문을 다루는 장입니다. 즉 어느 영역에서도 과학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무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 영역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학사를 보면 과학적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때 천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이 대세였다는 것만 보아도 이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엔 의사가 손을 씻지 않아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엎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과학자들이 과거의 유산 없이 독자적으로 이룬 업적이 아니라고 그리빈은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과학 진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 발전이 가능했고, 그 토대 위에서 잘못된 진리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부분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리빈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 이론에 거부합니다. 과학은 아무 토대 없이 어느 순간 혁명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의 수고와 땀 위를 토양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존 그리빈의 주장이자 토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사를 살피기 때문에 존 그리빈은 한 과학자의 대단한 업적을 저술하면서 주변 모든 상황을 다 담아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와 가족, 또 그들이 받은 교육과 환경까지 섬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배출되기 위해, 위대한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존 그리빈의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과학사를 다룬 책이면서 동시에 인문학 서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성숙하고 진보한 데는 결국 인문학적 환경이 뒷받침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존 그리빈은 보여줍니다(저자 존 그리빈이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였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사를 다룬 책은 그리스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 시대로 잡는 셈입니다. 어쩌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보아도 그 안에는 너무나 복잡한 수학과 과학이 담겨 있으니 그때부터 과학사를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빈은 본격적으로 이성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과학사를 저술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진정한 과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 존 그리빈이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과학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틀입니다.


책의 흐름을 보여주는 큰 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암흑시대를 벗어나다

제2부: 기초를 놓은 사람들

제3부: 계몽시대

제4부: 큰 그림

제5부: 현대

목차가 보여주듯 르네상스(암흑시대)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학사를 조목조목 다룹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해서 내우주 외우주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과학사의 영역을 빼곡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저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코페르니쿠스는 실험조차하지 않은 과학자라는 사실입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고, 사뭇 코페르니쿠스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의사였다는 것과 폴란드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참사 회원이 되었다는 점, 그래서 평생 일하지 않아도 급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생활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천문학에 관심을 계속 쏟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단순히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천문학을 탐색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존 그리빈은 해석합니다.


서점에 가서 보시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벽돌처럼 홀로 유유자적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두꺼운 책입니다. 과학사라는 접하기 쉽지 않은 장르를 다루었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탁월한 과학자라고 부르며 흠모하거나 추켜세우는 인물의 업적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주변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야사처럼 보여서 읽는 맛이 좋습니다. 두께가 있다 보니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 수 있을 듯합니다. 망설임과 두려움을 뚫고 책을 집어 들어 펼쳐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책은 두껍지만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인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어서 입체적으로 과학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단한 과학자가 홀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과학의 발전에 적은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책꽂이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어도 좋을 책이며, 언제든 펼쳐서 읽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멋진 책입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책을 출간해 주신 진선북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책은 진선북스에서 지원받았으며, 저의 시선에서 솔직하게 리뷰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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