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를 보면 과학적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때 천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이 대세였다는 것만 보아도 이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엔 의사가 손을 씻지 않아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엎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 과학자들이 과거의 유산 없이 독자적으로 이룬 업적이 아니라고 그리빈은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과학 진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 발전이 가능했고, 그 토대 위에서 잘못된 진리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부분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리빈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 이론에 거부합니다. 과학은 아무 토대 없이 어느 순간 혁명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과학자의 수고와 땀 위를 토양으로 삼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 존 그리빈의 주장이자 토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사를 살피기 때문에 존 그리빈은 한 과학자의 대단한 업적을 저술하면서 주변 모든 상황을 다 담아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와 가족, 또 그들이 받은 교육과 환경까지 섬세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배출되기 위해, 위대한 과학적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존 그리빈의 [과학을 만든 사람들]은 과학사를 다룬 책이면서 동시에 인문학 서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성숙하고 진보한 데는 결국 인문학적 환경이 뒷받침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존 그리빈은 보여줍니다(저자 존 그리빈이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였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사를 다룬 책은 그리스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 시대로 잡는 셈입니다. 어쩌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보아도 그 안에는 너무나 복잡한 수학과 과학이 담겨 있으니 그때부터 과학사를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빈은 본격적으로 이성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과학사를 저술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진정한 과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 존 그리빈이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과학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