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의 나이는 얼마일까?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지구는 어떻게 생겼을까?

생명은 어떻게 출현했으며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누가 지구의 주인 행세를 했을까?

우리 사는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원을 생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참을 수 없이 가려운 곳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질문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상당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지구의 나이가 얼마인지, 우주의 나이는 어느 정도인지, 우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 지구와 우주의 관계도 상당히 밝혀냈습니다.

생명의 출현에 관한 지식과 정보도 상당히 축척했습니다. 시기와 때마다 지구의 주인 노릇을 했던 생명체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도 너무나 정확하게 밝혀냈습니다. 인류가 언제쯤 출현했고 어떻게 발전을 거듭해 왔는지까지 과학은 자연이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지문을 조합하고 짜 맞추어 상당한 수준의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이해하기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와 같은 뼛속 깊이 인문계인 사람은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 앞에 서면 일단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쉬운 일상의 언어로 과학의 발견을 알려주는 책이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짧은 역사]라는 우아하고 간결하며 핵심을 담아낸 책을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예쁜 책을 볼 때마다 편집자의 능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책이라는 게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일단 독자의 마음을 클릭하려면 외모부터 달라야 합니다. 지금처럼 감각적인 시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몇 단어와 그림으로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크기와 두께도 일정 부분 중요합니다. 이 모든 부분을 만족시키기가 보통 일은 아닐 텐데 다산북스 책을 볼 때마다 놀랄 때가 있습니다. 예쁘고 잘생겨서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을 클릭하는 능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니까요.


지구의 짧은 역사는 45억 살에 가까운 지구의 역사를 8챕터로 간략하게 구분할 뿐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접근합니다.

1. 화학적 지구 - 행성 만들기

2. 물리적 지구 - 행성 모양 빚기

3. 생물학적 지구 - 생명이 지구 전체로 퍼지다

4. 산소 지구 - 호흡할 수 있는 공기의 기원

5. 동물 지구 - 생물이 커지다

6. 초록 지구 - 식물과 동물이 육지를 정복하다

7. 격변의 지구 - 멸종이 생명을 변모시키다

8. 인간 지구 - 한 종이 지구를 변형시키다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목차만으로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지구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생명체가 무엇인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무엇보다 책 내용이 재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려운 과학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집필했습니다(번역가에게도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나의 이목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역사의 한 챕터는 마지막 인간 지구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빠르게 정복했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미친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합니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살면 다음 세대에 재앙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절약하고 절제하고 삶의 방식을 바꾼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더 큰 보상으로 되돌려 받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전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인에게 고별 연설을 할 때 남긴 말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우리 자신이 져야 하는 부담을

후대에 비열하게 떠넘기지 말라'

지구의 짧은 역사, 267p.

저자의 말을 조금 더 나누고 싶습니다.

인류는 40억 년에 걸친 물리적 및 생물학적 유산 위에 서 있다.

인류는 40억 년에 걸친 물리적 및 생물학적 유산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삼엽충이 고대 해저를 기어 다녔던 곳,

공룡이 은행나무가 빽빽했던 언덕을 쿵쿵거리며 다녔던 곳,

매머드가 얼어붙은 평원을 돌아다녔던 곳을 걷고 있다.

예전에는 그들의 세계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세계다.

물론 우리와 공룡의 차이는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는 우리의 것임과 동시에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지구의 짧은 역사 267-268p.


지구의 역사를 이렇게 간결하게 써낸,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간결하게 쓴 명백한 이유입니다. 지구의 역사가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식,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구를 이런 식으로 훼손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돌보고 아끼겠지요. 무엇보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도록,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며, 역동하는 생명력을 경험하도록 노력하고 땀 흘리겠지요.

이 짧은 책을 읽으며 지구의 긴 역사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지금처럼 무질서하고 혼란한 세상,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훼손과 파괴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경종을 울려주어 참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 책임감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어서 더욱 고마운 책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정독해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 - 아직도 나를 모르는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여행
성유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감정만큼 복잡한 것이 또 있을까?

오래전 나의 누나가 심리학과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이 다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제 그러면 네가 우리 심리를 다 꿰뚫어 보는 거야? 이제, 니 앞에서는 말조심해야겠다." 고작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따름인데 심리학과에 진학하면 사람 심리를 다 읽어내고,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다 꿰뚫어 보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 줄 그땐 미처 몰랐던 거지요. 누나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재밌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때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합니다. 미움이나 사랑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면 감정이라는 것이 무조건 숨어 있는 것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종종 듣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라는 말은 감정이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한지 가르쳐 줍니다. 감정, 참 어렵습니다.

복잡해 보이고 미묘한 감정,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감정, 때로는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서 도무지 숨길 수 없는 감정 설명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감정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길잡이와 같은 안내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망설일 이유 없이 집어 들어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그 고마운 책이 찾아왔습니다. 한국 정신분석학회 회원, 국제 정신분석가로 활동 중이며, 정신건강의학 원장인 성유미 원장의 책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입니다.





저자 성유미는 감정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감정을 숨기고 감추는 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 일생 단 세 번만 울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상도 남자는 감정 표현에 인색하기로 악명 높습니다(나는 경상도 남자입니다). 감정을 숨기고 감춘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감정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서를 가진 우리에게 감정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로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보라는 저자의 말이 생경스러운 동시에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첫 챕터 주제가 "감정에 대한 오해를 풀어라"입니다. 우리가 감정을 오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오해의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 주제를 다루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성유미는 감정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평생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정의합니다. 감정을 평생의 동반자로 바라보자는 의도를 담아낸 제목입니다. 감정을 평생의 동반자로 이해한다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존중하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요리하고 잘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접근하겠지요.


감정을 읽는 재미(?)에 대해서도 저자는 폭넓은 경험과 예리한 지성으로 담아냈습니다. 감정은 원래 움직이는 것임을 깨우쳐 줍니다. 저자는 심리를 다루는 사람답게 감정을 "정동"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저자의 이 문장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이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오해에 대한 대답으로 읽었습니다. 이 시대는 사랑을 감정으로 대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은 사랑을 전적으로 감정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되묻습니다. 저자는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찌지고 볶는 우리네 민낯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사랑의 일부이면서,

진짜 사랑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사랑을 알게 됐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의지적인 부분이 훨씬 큽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독생자 예수를 주시는 것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원수를 끌어안는 사랑은 정서를 넘어

의지에 가깝습니다.

의지가 가면

결국 정서도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떨어져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감정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설득 당했습니다. 분노, 슬픔, 재미를 읽어내고, 다양한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면서(Naming) 감정 읽는 훈련을 제안하는 저자의 의견에는 무릎을 치면 동의했습니다.

마지막 챕터가 나는 가장 좋았습니다. 제목부터 와닿았습니다. "재미있는 삶, 행복한 인생을 찾아서"입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다는 것, 그 재미를 방해하는 가시부터 걷어내야 삶이 부들부들해진다고 말합니다. 물론 재미를 추구하다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패닉은 총 맞은 것과 같다고 말하며, 행복은 마음의 안정이란 토양 위에서 비로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는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은 시간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짧아진 가을이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한 계절입니다. 마음을 깊게 하고 넓게 만드는 '독서'의 계절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그간 꽁꽁 싸매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나의 감정을 대면해 보면 어떨까요? 내 감정을 더 소중하게 다루고,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를 읽으며 깊고 높고 넓은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며 더 풍성한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의 쓸모 -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
원재훈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는 어디에다 써먹을 수 있을까?

예술 작품을 효용성으로 따지고 드는 것만큼 천박하고 무례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인류 문화유산을 돈으로만 계산하고 사고 팔려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대놓고 손가락질하지 못하고, 대놓고 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 정도 돈이 있다면 돈을 뿌리고 또 뿌려서라도 그 예술 작품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 때문입니다.

시는 어떨까요? 인간의 내면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시. 벼릴 수 있을 때까지 벼리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린 후 사람의 욕망과 마음, 정신과 내면, 사람 사이 그 오묘한 관계와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 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요?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시를 분석하셨습니다. 그렇게 배운 시의 의미를 달달 외우고 외워 시험에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시를 분석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냥 읽고 감상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나만의 섣부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뼛속 깊이 인문계인 나는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좋아했고, 시험도 곧잘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이렇게나 어렵고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를 왜 공부하는 거야?"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디에도 써먹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시를 쓰는 시인의 내면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예리한 필치로 대답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라는 책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에게 '시'는 가깝고도 먼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설명하면 그럴싸해 보일까 싶어서 저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날것 그대로 표현하자면 시를 좋아하는데 잘 읽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시집을 만나면 꼭 펴서 읽습니다. 하지만 서점에서 시집을 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민족의 혼을 붙들었을 뿐 아니라 일제에 저항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싯구는 우리의 가슴에 잘 박힌 못처럼 박혔을 뿐 아니라 빼앗긴 조국을 회복해야 할 이유와 의미를 알게 했습니다.

시는 쓸모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내면을 바르게 하고 부요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정돈된 언어, 정제된 언어가 담아내는 생각과 내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시가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깊게 만드는지 짐작할 것입니다. 시는 그 자체로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쓰임새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고 풍성하다 하겠습니다.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를 읽으며 나의 이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원재훈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마주한, 자신을 찾아온 싯구나 시어를 한 움큼 쥐여줍니다. 그 후에 시인의 감성을 담아 그 시, 싯구, 시어에 담긴 의미를 풀어냅니다. 이렇게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깊고 맑은 우물을 길어올릴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시는 그 시를 만나는 사람에게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깊이로 다가가기도 합니다. 원재훈 시인처럼 시인의 감성과 시선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없이 깊고 풍성하게 다가갑니다. 놀랍게도 나처럼 얄팍한 시선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시는 충분한 의미와 넘치는 상상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시를 마주하게 되면 마음이 정화되고, 침잠하는 이유입니다.

하나의 시, 싯구, 시어 다음에 원재훈 시인은 시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오롯이 공개합니다. 콕콕 Point를 짚어줍니다. 마치 일타강사처럼 말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시인의 작업실을 엿본 기분입니다. 시인의 마음과 그의 시선을 훔쳐본 기분입니다.

원재훈 시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작업실을 엿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의 시인의 시선을 훔쳐본 기분입니다.

그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친절한 설명, 정갈한 언어로 담아낸 싯구를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우리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을 정돈해 주며, 삶의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삶의 보폭을 맞추게 됩니다. 자신과 타인이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발 딛고 살아가는 자연과 세상을 다른 시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시의 쓸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우리네 삶은 가볍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삶의 속도가 느려진 것만큼은 분명하고, 느리게 걷는 만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자세히 보거나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상상하고, 방향을 점검하면서 삶은 깊어지고, 삶의 내용이 충실해지는 법이지요.

깊어가는 가을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을 집어 들고 읽어보는 것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의적절한 때에 우리를 찾아온 참 고마운 책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 - N년차 독립 디자이너의 고군분투 생존기
김파카 지음 / 샘터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출한 의욕이 제 발로 들어올 수 있을까? 집 나간 의욕을 찾으러 의욕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 의욕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던져본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과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한 번 직장을 잡으면 그 일을 평생직장으로 여겼습니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그 직장에 평생을 일하며 헌신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은 사뭇 다릅니다.

요즘은 평생직장이란 말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길가는 대학생과 청년을 붙잡고 물어봐도 백이면 백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드물게라도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소신을 따라 살아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샘터사에서 출간한 필명 '김파카'라는 독립 디자이너의 고군분투 생존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단상이었습니다. 김파카라는 필명도 재밌었을 뿐 아니라 디자이너인 김파카가 책을 썼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책 제목이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라는 것도 괜히 사람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책은 작고 아담하게 생겼습니다. 책 내부에는 김파카 작가가 그린 그림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개성 만점의 일러스트는 김파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볼 때는 창의력이 뛰어나고, 무거운 세상을 가볍게 그려낼 줄 아는 재치와 자신만의 개성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사진을 몇 장 찍어 올릴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습니다. 책을 사서 보시면서 글을 보고 그림도 읽는 것이 훨씬 좋겠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차도 작가의 내면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풍경과 마음속 생각을 엿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첫 번째,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독립

두 번째, 월급 말고 돈 좀 벌어보려다가

세 번째,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기

네 번째,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소신껏 길을 걷는 법


김파카라는 필명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삶도 꽤나 근사하다는 생각했습니다. 삶을 너무 무겁게 바라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게 보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일면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타진하고 도전하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일상을 소소하게라도 기록하고,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살려 무언가를 그리는 일에 매진하는 모습은 참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그녀만의 화법으로 툭툭 던지는 솔직함은 진정성 가득하게 다가왔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살아가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직장 풍경도 바뀌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강풍에 안타깝게도 문을 닫은 곳이 있는가 하면 이 강풍을 순풍 삼아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이 낯설고도 당혹스러운 시간을 지나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종종 질문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 당혹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잘 살아낼 수 있을지 질문하곤 합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김파카와 같이 자기의 재능을 살릴 뿐 아니라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무장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세상이 당혹스럽기 때문에 더욱 말랑말랑한 생각과 뚜렷한 가치관으로 무거운 세상 속에 함몰되지 않고, 지나친 가벼움으로 일관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를 읽다 보니 김파카 작가는 집 나간 의욕을 찾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분명한 무게감이 있는 책입니다. 어쩌면 아직 집을 나가지 않은 의욕을 쫓아낼 수도 있고 반대로 집 나간 의욕을 찾으러 세상으로 한걸음 더 깊숙이 나가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결국 세상 살아갈 힘과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한 움큼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다 부모 - 성장 원리로 풀어쓴 좌충우돌 홈스쿨 모험기
마상욱 지음 / 비비투(VIVI2)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 어른]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나는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도 잘 모릅니다. 제목이 보여주듯 어른이 되었지만 진짜 어른이 되는 데는 진통과 노력 수고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차피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는 어떨까요? 나는 결혼한 후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고, 순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부모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즐비한 부모를 보면서 나이가 들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누구나 부모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부모가 되니까요.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부모가 되었다고 다 부모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부끄럽게도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자 책임인지 몰랐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신비를 몸으로 경험하고 깨달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생활 양식과 스타일과 기준을 아이에게 맞추어야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좋은 아빠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자라고 성장한다는 말을 깨달으면서 나는 말 그대로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어쩌다 부모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나라는 사람의 바닥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내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그렇게나 헌신적일 수 있다는 것이나 아이의 필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보였고, 부모의 자질을 훨씬 많이 갖춘 듯 보였습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거지? 속으로 참 많이 되뇌었던 질문입니다. 아내를 보면서도 이 질문에 답을 얻기는커녕 더 어렵게만 보였습니다.

둘째를 얻고서도 이 생각과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를 길렀으니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둘째는 첫째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나의 이 순진한 상상을 박살 냈습니다. 나는 영~ 어리바리한 부모(아빠)라는 것이 또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소원해 보입니다.


세월이 제법 흘렀지만 여전히 어쩌다 부모가 된 것 같은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놀라운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어쩌다 부모]입니다.


저자 마상욱 목사는 우리나라 1세대 청소년 사역자입니다. 청소년 사역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고, 지금도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는 주목받는 목사이자 사역자입니다. 이런 분이라면 당연히 좋은 부모의 자격을 갖추었다 생각해도 지나친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어쩌다 부모 된 사람의 반열에 올려두십니다. 지나친 겸손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과 말을 일삼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마상욱 목사 역시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돌발적인 태도와 언행 앞에 허둥대기 일쑤였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모로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한 마상욱 목사에게서 허둥대던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고 좋은 부모의 자격을 갖추었다 생각할만한 사람이 좌충우돌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다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쩌다 부모가 되어버린 어설픈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해는 금물입니다. 마상욱 목사는 나의 시선에서 볼 때 무척 훌륭한 가장이자 남편 아빠입니다. [어쩌다 부모]라는 책에서 좌충우돌 그의 경험을 담담하게 진솔하게 고백하면서도 청소년 전문 사역자다운 식견과 통찰, 평정심을 잃지 않는 여유와 번뜩이는 재치까지 두루 보여줍니다. 밑줄을 그어야 할 문장, 마음에 콕 박히는 지혜가 가득한 문장, 베껴 쓸 수밖에 없는 문장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전문가의 식견과 부모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든 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책은 크게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Part 1 : 괜찮아 우리 잘못이 아니야

Part 2 : 성장 속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Part 3 : 부모는 정원사입니다

Part 4 : 사춘기 부정적 감정 다루기

Part 5 : 척추형 부모 & 심장형 부모

각 챕터마다 청소년 사역자요 전문가로서의 탁월한 지식과 좌충우돌 부모로서의 경험이 예술 같은 비율로 섞여 있습니다. 저자의 마상욱 목사의 시선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탄성이 나오기도 하며,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 됨이 얼마나 고귀한 사명인지 이해하게 되고, 자녀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알아갈 수 있습니다.

"어쩌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난 책이고, 어쩌면 저자 역시 자신이 어쩌다 부모가 되었다는 고백을 담아 출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자로서 나의 시선에서 보기엔 "어쩌다 부모"라는 제목의 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은 어쩌다 부모가 된 초보 부모, 어쩌다 부모가 되었지만 자녀와 함께 성장하려는 부모, 자녀를 잘 양육하고 싶은 열정을 가진 부모를 위한 로드맵, 또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으신 부모님, 학부모 교재를 찾으시는 학교나 교회 학교 지도자께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소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