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쓸모 -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
원재훈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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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디에다 써먹을 수 있을까?

예술 작품을 효용성으로 따지고 드는 것만큼 천박하고 무례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인류 문화유산을 돈으로만 계산하고 사고 팔려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대놓고 손가락질하지 못하고, 대놓고 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 정도 돈이 있다면 돈을 뿌리고 또 뿌려서라도 그 예술 작품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 때문입니다.

시는 어떨까요? 인간의 내면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시. 벼릴 수 있을 때까지 벼리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린 후 사람의 욕망과 마음, 정신과 내면, 사람 사이 그 오묘한 관계와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 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요?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시를 분석하셨습니다. 그렇게 배운 시의 의미를 달달 외우고 외워 시험에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시를 분석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냥 읽고 감상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나만의 섣부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뼛속 깊이 인문계인 나는 학창 시절 국어 시간을 좋아했고, 시험도 곧잘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이렇게나 어렵고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를 왜 공부하는 거야?"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디에도 써먹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시를 쓰는 시인의 내면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예리한 필치로 대답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라는 책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에게 '시'는 가깝고도 먼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설명하면 그럴싸해 보일까 싶어서 저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날것 그대로 표현하자면 시를 좋아하는데 잘 읽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시집을 만나면 꼭 펴서 읽습니다. 하지만 서점에서 시집을 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민족의 혼을 붙들었을 뿐 아니라 일제에 저항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싯구는 우리의 가슴에 잘 박힌 못처럼 박혔을 뿐 아니라 빼앗긴 조국을 회복해야 할 이유와 의미를 알게 했습니다.

시는 쓸모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내면을 바르게 하고 부요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정돈된 언어, 정제된 언어가 담아내는 생각과 내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시가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깊게 만드는지 짐작할 것입니다. 시는 그 자체로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쓰임새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고 풍성하다 하겠습니다.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를 읽으며 나의 이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원재훈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이 마주한, 자신을 찾아온 싯구나 시어를 한 움큼 쥐여줍니다. 그 후에 시인의 감성을 담아 그 시, 싯구, 시어에 담긴 의미를 풀어냅니다. 이렇게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깊고 맑은 우물을 길어올릴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시는 그 시를 만나는 사람에게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깊이로 다가가기도 합니다. 원재훈 시인처럼 시인의 감성과 시선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없이 깊고 풍성하게 다가갑니다. 놀랍게도 나처럼 얄팍한 시선과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시는 충분한 의미와 넘치는 상상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시를 마주하게 되면 마음이 정화되고, 침잠하는 이유입니다.

하나의 시, 싯구, 시어 다음에 원재훈 시인은 시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오롯이 공개합니다. 콕콕 Point를 짚어줍니다. 마치 일타강사처럼 말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시인의 작업실을 엿본 기분입니다. 시인의 마음과 그의 시선을 훔쳐본 기분입니다.

원재훈 시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작업실을 엿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의 시인의 시선을 훔쳐본 기분입니다.

그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친절한 설명, 정갈한 언어로 담아낸 싯구를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우리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을 정돈해 주며, 삶의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로 삶의 보폭을 맞추게 됩니다. 자신과 타인이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발 딛고 살아가는 자연과 세상을 다른 시선,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시의 쓸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우리네 삶은 가볍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삶의 속도가 느려진 것만큼은 분명하고, 느리게 걷는 만큼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자세히 보거나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상상하고, 방향을 점검하면서 삶은 깊어지고, 삶의 내용이 충실해지는 법이지요.

깊어가는 가을 원재훈 시인의 [시의 쓸모: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을 집어 들고 읽어보는 것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의적절한 때에 우리를 찾아온 참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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