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 - 아직도 나를 모르는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여행
성유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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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만큼 복잡한 것이 또 있을까?

오래전 나의 누나가 심리학과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이 다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제 그러면 네가 우리 심리를 다 꿰뚫어 보는 거야? 이제, 니 앞에서는 말조심해야겠다." 고작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따름인데 심리학과에 진학하면 사람 심리를 다 읽어내고,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다 꿰뚫어 보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 줄 그땐 미처 몰랐던 거지요. 누나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재밌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때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합니다. 미움이나 사랑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면 감정이라는 것이 무조건 숨어 있는 것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종종 듣는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라는 말은 감정이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한지 가르쳐 줍니다. 감정, 참 어렵습니다.

복잡해 보이고 미묘한 감정,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감정, 때로는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서 도무지 숨길 수 없는 감정 설명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감정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길잡이와 같은 안내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망설일 이유 없이 집어 들어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그 고마운 책이 찾아왔습니다. 한국 정신분석학회 회원, 국제 정신분석가로 활동 중이며, 정신건강의학 원장인 성유미 원장의 책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입니다.





저자 성유미는 감정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감정을 숨기고 감추는 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 일생 단 세 번만 울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상도 남자는 감정 표현에 인색하기로 악명 높습니다(나는 경상도 남자입니다). 감정을 숨기고 감춘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감정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서를 가진 우리에게 감정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로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보라는 저자의 말이 생경스러운 동시에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첫 챕터 주제가 "감정에 대한 오해를 풀어라"입니다. 우리가 감정을 오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오해의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 주제를 다루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성유미는 감정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평생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정의합니다. 감정을 평생의 동반자로 바라보자는 의도를 담아낸 제목입니다. 감정을 평생의 동반자로 이해한다면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더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존중하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요리하고 잘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접근하겠지요.


감정을 읽는 재미(?)에 대해서도 저자는 폭넓은 경험과 예리한 지성으로 담아냈습니다. 감정은 원래 움직이는 것임을 깨우쳐 줍니다. 저자는 심리를 다루는 사람답게 감정을 "정동"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저자의 이 문장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이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오해에 대한 대답으로 읽었습니다. 이 시대는 사랑을 감정으로 대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 사람은 사랑을 전적으로 감정으로 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되묻습니다. 저자는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찌지고 볶는 우리네 민낯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사랑의 일부이면서,

진짜 사랑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사랑을 알게 됐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의지적인 부분이 훨씬 큽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독생자 예수를 주시는 것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원수를 끌어안는 사랑은 정서를 넘어

의지에 가깝습니다.

의지가 가면

결국 정서도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떨어져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감정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읽을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설득 당했습니다. 분노, 슬픔, 재미를 읽어내고, 다양한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면서(Naming) 감정 읽는 훈련을 제안하는 저자의 의견에는 무릎을 치면 동의했습니다.

마지막 챕터가 나는 가장 좋았습니다. 제목부터 와닿았습니다. "재미있는 삶, 행복한 인생을 찾아서"입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다는 것, 그 재미를 방해하는 가시부터 걷어내야 삶이 부들부들해진다고 말합니다. 물론 재미를 추구하다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패닉은 총 맞은 것과 같다고 말하며, 행복은 마음의 안정이란 토양 위에서 비로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는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은 시간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짧아진 가을이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한 계절입니다. 마음을 깊게 하고 넓게 만드는 '독서'의 계절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그간 꽁꽁 싸매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나의 감정을 대면해 보면 어떨까요? 내 감정을 더 소중하게 다루고,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를 읽으며 깊고 높고 넓은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며 더 풍성한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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