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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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코로나 걸렸어"

2020년 이 말을 뱉었던 아이가 있고

이 말을 들었던 부모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혐오를 받았고 기피 대상이 되었으며

격리조치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중에는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 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일종의 감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엔 1월 말 경에 코로나가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반대의 생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2105년 메르스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때의 혼란스러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메르스처럼 확산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점점 확산되면서 메르스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중국 눈치 보느라 팬데믹 선언이 늦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피해를 입은 여러 나라 사람은 중국인을 혐오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는 확산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배를 타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향해 퍼져갔습니다. 확진자가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사망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목숨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노년층이 많았습니다. 노년층이 많은 유럽,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나라였습니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사망자 수도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는 세상을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식 저 깊은 곳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우한 감기라는 말에서부터 '대구(우리나라에서 처음 발병한 도시)'라는 이름까지 특정해 가며 일종의 혐오감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백신이 나왔습니다. 1~3차까지 접종하기도 했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리 두기가 사라졌습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그래도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입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나왔다는 뉴스는 없습니다. 좋은 치료제가 나오면 코로나는 풍토병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바꾼 면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코로나가 가져다준 것은 속도입니다. 코로나는 삶의 속도, 무엇보다 변화의 속도를 앞당겼습니다. 비대면 활동과 회의가 일상이 되었고, 재택근무도 생활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의 발전과 함께 메타버스를 눈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속도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시대상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부는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병한 사건입니다. 2부에서는 행정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그로 인한 페스트 확산, 오랑 시민의 공포에 가까운 불안, 결국 도시 봉쇄가 나옵니다. 3부와 4부는 페스트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인명 피해를 보여줍니다. 페스트를 퇴치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과 희생의 장면입니다. 마지막 5부는 갑작스러운 페스트의 퇴각(?)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발생,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이번 코로나는 메르스라는 본보기가 있어서 적극적인 대처로 유명했습니다. 오죽하면 K 방역이란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전 세계가 주목한 K 방역을 주도한 질본 당국에 찬사를 보냅니다. 반면 세계 보건당국의 미온적 태도는 꼭 꼬집고 싶습니다). 코로나의 확산과 공포, 수많은 인명 피해, 코로나와 싸우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눈물겨운 사투와 민초의 자발적 참여까지. 아직 5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코로나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카뮈가 예언자는 아닐 텐데, 마치 예언자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페스트를 읽는 내내 사람의 마음과 심리를 꿰뚫어 본 카뮈에게 놀랐습니다. 가끔 코로나의 치명률이 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반대로 코로나 치명률이 페스트처럼 높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소름 끼쳤습니다. 코로나가 발병한 도시는 오랑처럼 봉쇄되었을 것이며,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경험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중국이나 대구,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혐오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을 것이며, 인간의 이기심의 끝이 무엇일지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 반대 국면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심각했지만 우리는 제한된 일상을 살았습니다. 비대면으로 만나고, 서로를 그리워했습니다.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페스트를 읽으며 같은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봉쇄당한 오랑 시에 사는 사람들은 페스트가 생명을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시신을 수습하고, 생명을 걸고 간호하기도 했습니다. 길고 긴 이 장면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사람이 위대한 이유를 발견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때리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 안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29p.)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싸우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333p.)


페스트균은 절대로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와 옷가지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방,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서류 안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고자 

또다시 쥐들을 깨워서 행복한 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는 사실. (402p.)







나는 페스트 환자입니다. 내 안에 페스트와 같은 죄가 늘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날마다 목격합니다. 때론 징그럽고 때론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랑 시에서 페스트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시민이 바로 나이며,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나이며, 어떻게든 페스트와 싸워보려는 사람 역시 나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의 페스트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워하고 시기하는 우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탐욕에 시달리는 우리, 서로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켠 우리는 저마다의 페스트균에 시달리는 증거로 볼 수 있겠지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페스트균이 퇴조할까요? 언제쯤이며 잦아들까요?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안에 페스트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올 것입니다. 페스트에서도 보여주듯 결국 사랑이 이기니까요.


페스트를 읽으며 나를 다시금 해석하고, 이 시대를 해석하며 아쉬운 마음과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과 사람다운 삶에 대한 지도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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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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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만 가치가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해서 알려주는 니체의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처럼 걷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직립보행.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치타처럼 빠르게 뛰지 못하지만 지구력 하나만큼은 세상 그 어떤 생명체도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직립보행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걷기는 사람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연구로 결과를 걷기가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검증하고,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걷기라는 행위가 왜 이렇게나 인간적인 행위인지 소개하고 보여주는 멋진 책이 나왔습니다. 셰인 오마라의 [걷기의 세계]입니다









사람은 걷습니다. 직립보행하는 유일한 생명체입니다. 직립보행을 하니 두 손이 자유롭습니다. 무기를 사용할 수 있고, 두 팔로도 엄청난 전투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먹으로만 싸우는 복싱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먹으로만 싸운다면 복싱을 이길 수 있는 무술은 없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직립보행이 가져다준 결과 중 하나입니다. 직립보행이라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익히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아기가 태어나 얼마나 넘어지는지 그 숫자를 헤아려 보면 직립보행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이 리드미컬은 움직임을 익히고 나면 두 손은 물론이거니와 두 발도 상당한 자유를 얻습니다. 정말 대단한 운동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걷는 행위는 근력을 강화시켜줍니다. 당연히 뇌를 자극하고 건강한 뇌를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걸으면 감정적으로 순화될 뿐 아니라 창의력이 솟구쳐 오르기도 합니다. 니체가 걸으면서 생각한 것만 가치가 있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걷기는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걸으면서 주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시각적인 자극이 크다는 뜻이지요. 당연히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의 뇌에 GPS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정도 인지한다는 뜻입니다. 시각 장애인이 길을 정확하게 찾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눈을 가리고 걷게 하고 특정한 곳을 찾아가게 하고 심지어 어느 곳으로 갔다고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게 해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다고 합니다. 후덜덜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유학 시절 쉬는 시간에 학생과 함께 걷는 교수님을 만나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수업하면 생긴 질문을 쉬는 시간에 던지면 늘 함께 걷자고 하셨습니다. 느릿한 걸음으로 주변을 한 바퀴 걸으며 질문하고 대답을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질문을 질문으로 받기도 하셨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무슨 질문하고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기억하는 것, 아마도 평생 잊기 힘든 기억은 함께 걸었다는 그 자체입니다.



책에서도 걷기의 사회성이란 챕터가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혼자의 일이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실제 이 문장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걷기라는 행위가 인간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챕터였습니다. 이 챕터를 읽다 보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걷고 싶고, 아들딸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앉아서가 아니라 서서 걸으면서 읽었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읽어서인지 머리에 쏙쏙 박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걷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지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아들딸 연인의 손을 잡고 걸어보고 싶은 마음까지 자라나게 해주었습니다. 직장동료와도 종종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눈다면 일터 분위기도 사뭇 다르게 바꾸어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종의 기대감마저 갖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종종 "하나님과 함께 걷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고 그 장면을 복음서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걸으신 예수를 생각하니 "예수께서도 걷기의 힘을 잘 알고 계셨겠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이 돋아난 것은 감출 수 없는 비밀이고요.








어지간해서는 잘 걷지 않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저처럼 사무실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은 더더욱 걷지 않으려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하고요. 걷지 않고 걷지 않으려고 하고 웬만해서는 걷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 반대로 함께 걷고, 자주 걷고, 더 많이 걸어 다닌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곳이 되지 않을까? 조금 더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갈등과 분열된 이 땅 대한민국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저자 셰인 오마라는 매일 만보 이상 걸으려고 애쓰고 14,000 이상 걸으면 만족해한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매일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장에 일어나 산책부터 하고 와야겠습니다. [걷기의 세계]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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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는 기도동행 31 김석년 쉬지 않는 기도 시리즈
김석년 지음 / 샘솟는기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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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말고 기도하라" - 사도 바울

성경을 읽다 보면 적잖이 황당한 구절을 만나곤 합니다. 대표적인 구절 중 하나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16~18)라는 말씀입니다.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항상 기도할 수 있지?"

"마음은 원하지만 실제로 항상 기도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저의 마음에 밀려드는 생각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나 나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늘 들곤 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을 알고 계셨는지 이 문제를 직접 다룬 책이 나왔습니다. 샘솟는 기쁨에서 출간한 존경하는 김석년 목사님의 책 [쉬지 않는 기도 동행 31]입니다.




김석년 목사님께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리셨나 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훈련했기 때문에 이 주제로 책을 내셨을 테니까요. 책을 펼쳐보면 목사님의 고민이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목사님은 정시 기도, 항시기도, 일상기도라는 범주로 나누어 기도에 접근하십니다.

정시 기도는 말 그대로 정해진 시간에 나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기도입니다. 항시기도는 때마다 시마다 떠오를 때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말을 걸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종의 대화입니다. 일상기도는 밥 먹고, 일하고, 사람 만나고, 쉬고, 죄짓고 사는 모든 일상에서 일상의 사건들을 기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시 기도, 항시기도, 일상기도 드리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한다면 누구라도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특히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부분이 마음에 쏙 와닿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문처럼 의미 없이 외우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주의해서 사용하며 기도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에 담긴 깊고 넓은 의미를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십계명을 기도로 가져와서 때마다 읊조리는 것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기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유혹과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큰 힘이요 자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의 속살은 김석년 목사님의 기도가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기도의 스펙트럼도 얼마나 넓고 섬세한지 나라와 민족을 끌어안은 목회자의 마음을 엿보게 합니다. 동시에 더불어 교회로 지어져가고 있는 성도를 향한 기도와 목사님 자신을 향한 솔직한 회개의 기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곳곳에 기도의 거장이라 부를 수 있는 믿음의 선배들의 기도가 포진되어 있는 점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목사님의 기도를 따라 읽어보고, 기도의 거장이 드린 기도를 따라 읽으면서 기도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책 사이즈도 작아서 들고 다니면서 필요에 따라 읽으며 정시 기도 항시기도 일상기도를 연습할 수 있다는 점에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이 지점에서 편집에 진심을 보여주신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음에 가장 와닿았을 뿐 아니라 여운으로 남은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게 씻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입술로 생각으로 마음으로 품은 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하고 바르지 않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마음이 부요해집니다. 하물며 기도에 관한 책이니 그 부요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어주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주는 작고 가볍지만 크고 무거운 책이라 생각합니다. 기도에 목마른 많은 목회자와 성도,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지 몰라 기도를 배우고 싶으신 분이 곁에 두고 읽으시면 더없이 좋을 책입니다. 기도를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도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기도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어줄 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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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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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습니다. 무려 마흔아홉 권째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입니다. 제목부터 나태주 시인다운 향과 멋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은 다른 시집에 비해 상당한 볼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책 분량의 볼륨입니다. 무려 285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시집인 만큼 읽고 감상하고 맛보고 음미할 수 있는 시들이 즐비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나의 시선에서 보기에 참 특별하고 고운 점이 부각된 시집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는 이 시집이 코로나 2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시에서 코로나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풍경과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와 거리 두기까지.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인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일상을 전혀 다른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사는 풍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정갈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시를 읽고 감상하다 보면 덩달아 우리 사는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마저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콕 집어 대상을 정한,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가 여러 편 있다는 점입니다. 간호장교 김혜주 대위, 피아니스트 손열음, 동명 스님, 정인이, 조정권 시인, 육근철 시인, 박용래 시인, 이어령 선생, 거기에 BTS까지...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우리의 마음에 울림과 감동을 준 이름과 나태주 시인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 사람에게 헌정하는 시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우쳐 준 시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특별한 점은 특정 장소에서 쓴 시와 특정 장소를 소개하는 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 계룡산 도예촌 이소 도예, 경주의 카페 바흐, 메리 포핀스, 루치아의 뜰 등 시인에게 특별한 장소, 애정 하는 장소에 대한 시가 보입니다.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시를 탄생하게 만든 곳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특별함이 묻어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까지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나에게도 시인의 감수성이 돋아날 것 같은 일종의 착각까지 덤으로 안겨줍니다.




시를 읽고 감상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상상력이 자극될 뿐 아니라 한 뼘은 더 자란 기분마저 느낍니다. 시를 읽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 하나마저도 소중하게 다가오며,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당연히 우리 사는 세상과 사람 사는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나의 삶과 주변 사람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인간미라는 것이 조금 더 깊어지는 기분이 들고, 정제된 언어로 말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깊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고 암송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깊은 인간미와 남다른 시선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태주 시인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읽으며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며, 자신이 삶을 새롭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메말라 가는 인간성을 조금 더 회복하고, 상실해 버린 상상력을 한 뼘 더 키워가면 어떨까요? 누군가를 향해 쓴 나태주 시인의 글을 나를 향한 글로 받아들이고 읽고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어제보단 분명 더 나은 오늘, 오늘 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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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 - 숭민이의 일기(아니올시다!) 풀빛 동화의 아이들
이승민 지음, 박정섭 그림 / 풀빛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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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엿보고 말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독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볍고 밝아지는 걸까요?


일기,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일기 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년 간 써온 일기장을 보물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들 앞에 설 때마다 저는 주눅이 듭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 특히 매일 꾸준하게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획적이지도 않고, 꾸준하지도 못하고, 끈기가 부족한 나는 매일 쓰는 일기가 참 부담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일만큼 짜릿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일기도 쓰지 않는 사람이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니 비양심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은 양심이 있는지라 다른 사람의 일기를 발견하면 펼쳐 볼까 말까 고민합니다. 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펼쳐 든다는 것이 문제지만요. 이런 제가 대놓고 남의 일기를 정독했습니다. 제가 대놓고 정독한 다른 사람의 일기는 이승민 글, 박정섭 그림의 [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주인공은 초등학생 숭민이. 4월 11일부터 시작한 숭민이의 일기는 7월 3일에 끝납니다. 약 석 달가량 숭민이의 일상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숭민이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친구, 새롭게 사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숭민 마음과 시선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숭민이가 겪는 소소한 일상과 크고 작은 일들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졸다가 자신이 만든 벌칙을 당하는 일, 순수한 우리말로만 말해보기, 텃밭을 가꾸는 일...

작은 실수가 가져온 오해와 갈등을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갈등 해소 비용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숭민이의 갈등과 오해에 함께 참여하고, 왜 그런 오해와 갈등이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말 그대로 사소한 실수로 인해 큰 갈등이 생길 뻔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숭민이는 자신의 실수라는 점을 깨닫고 나름 지혜로운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숭민이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친구니까요. 우리 어른들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용기 내서 사과할 줄 알고, 사과받을 줄 아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처럼 지역, 진영, 세대, 소유, 외모, 성 등으로 사분오열 갈라진 대한민국을 싸매고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 나은 세상,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테니까요.




성장소설, 성장동화를 읽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장소설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점검할 수 있으니까요.

[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더 나은 세상, 더 살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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