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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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코로나 걸렸어"

2020년 이 말을 뱉었던 아이가 있고

이 말을 들었던 부모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혐오를 받았고 기피 대상이 되었으며

격리조치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중에는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 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19년 1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처음엔 일종의 감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엔 1월 말 경에 코로나가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반대의 생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2105년 메르스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때의 혼란스러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메르스처럼 확산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점점 확산되면서 메르스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중국 눈치 보느라 팬데믹 선언이 늦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피해를 입은 여러 나라 사람은 중국인을 혐오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는 확산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배를 타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향해 퍼져갔습니다. 확진자가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사망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목숨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노년층이 많았습니다. 노년층이 많은 유럽,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나라였습니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간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사망자 수도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는 세상을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식 저 깊은 곳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우한 감기라는 말에서부터 '대구(우리나라에서 처음 발병한 도시)'라는 이름까지 특정해 가며 일종의 혐오감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백신이 나왔습니다. 1~3차까지 접종하기도 했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리 두기가 사라졌습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그래도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입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나왔다는 뉴스는 없습니다. 좋은 치료제가 나오면 코로나는 풍토병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각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바꾼 면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코로나가 가져다준 것은 속도입니다. 코로나는 삶의 속도, 무엇보다 변화의 속도를 앞당겼습니다. 비대면 활동과 회의가 일상이 되었고, 재택근무도 생활이 되었습니다. 온라인의 발전과 함께 메타버스를 눈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속도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서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시대상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부는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병한 사건입니다. 2부에서는 행정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그로 인한 페스트 확산, 오랑 시민의 공포에 가까운 불안, 결국 도시 봉쇄가 나옵니다. 3부와 4부는 페스트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인명 피해를 보여줍니다. 페스트를 퇴치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과 희생의 장면입니다. 마지막 5부는 갑작스러운 페스트의 퇴각(?)과 새로운 삶의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의 발생,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이번 코로나는 메르스라는 본보기가 있어서 적극적인 대처로 유명했습니다. 오죽하면 K 방역이란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전 세계가 주목한 K 방역을 주도한 질본 당국에 찬사를 보냅니다. 반면 세계 보건당국의 미온적 태도는 꼭 꼬집고 싶습니다). 코로나의 확산과 공포, 수많은 인명 피해, 코로나와 싸우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눈물겨운 사투와 민초의 자발적 참여까지. 아직 5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코로나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카뮈가 예언자는 아닐 텐데, 마치 예언자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페스트를 읽는 내내 사람의 마음과 심리를 꿰뚫어 본 카뮈에게 놀랐습니다. 가끔 코로나의 치명률이 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반대로 코로나 치명률이 페스트처럼 높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소름 끼쳤습니다. 코로나가 발병한 도시는 오랑처럼 봉쇄되었을 것이며,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경험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중국이나 대구,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혐오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을 것이며, 인간의 이기심의 끝이 무엇일지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 반대 국면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심각했지만 우리는 제한된 일상을 살았습니다. 비대면으로 만나고, 서로를 그리워했습니다.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페스트를 읽으며 같은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봉쇄당한 오랑 시에 사는 사람들은 페스트가 생명을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시신을 수습하고, 생명을 걸고 간호하기도 했습니다. 길고 긴 이 장면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사람이 위대한 이유를 발견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때리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 안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29p.)


인간은 희생자들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싸우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333p.)


페스트균은 절대로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와 옷가지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방,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서류 안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고자 

또다시 쥐들을 깨워서 행복한 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는 사실. (402p.)







나는 페스트 환자입니다. 내 안에 페스트와 같은 죄가 늘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날마다 목격합니다. 때론 징그럽고 때론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랑 시에서 페스트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시민이 바로 나이며,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나이며, 어떻게든 페스트와 싸워보려는 사람 역시 나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의 페스트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워하고 시기하는 우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탐욕에 시달리는 우리, 서로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켠 우리는 저마다의 페스트균에 시달리는 증거로 볼 수 있겠지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페스트균이 퇴조할까요? 언제쯤이며 잦아들까요?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안에 페스트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올 것입니다. 페스트에서도 보여주듯 결국 사랑이 이기니까요.


페스트를 읽으며 나를 다시금 해석하고, 이 시대를 해석하며 아쉬운 마음과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과 사람다운 삶에 대한 지도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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