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잡는 해치 별숲 동화 마을 37
윤주성 지음, 홍선주 그림 / 별숲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아들은 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칼과 총을 좋아했습니다. 돌을 갓넘기면서부터 부엌살림을 마치 칼처럼 잡았습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검사라도 된 것처럼 진지한 표정과 자세로 엄마와 아빠에게 큰 웃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씩씩한 소년으로 자란 나의 아들은 여전히 남성미를 한껏 뿜어내며 즐거운 방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재울 때마다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건아, 나중에 유건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괴롭히는 괴물, 특별히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아들은 종종 되물었습니다. "아빠, 세상에 괴물이 있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응, 좀 이상한 괴물이 많아." 아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무슨 괴물이에요? 어디에 있어요?" 나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가난, 질병, 가뭄, 미움, 다툼, 전쟁, 환경파괴... 등 대단히 무섭고 끈질긴 괴물이 많아. 언젠가 유건이가 크면 아빠랑 같이 아프리카에 있는 나쁜 괴물들 물리치러 가자." 아들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아빠, 무서울 것 같아요.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괴물이에요?" 나는 또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물리칠 수 있어. 아빠도 같이 갈테니까 같이 물리치자." 아들은 조금 더 씩씩해진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습니다. "예, 아빠! 좀 멀지만 함께 괴물을 물리쳐요!!!"


어릴 때부터 줄곧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나쁜 괴물이 실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들과 나는 괴물에 맞서 싸우고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서 나의 손을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주면서 함께 괴물을 물리치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변화되길, 그런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와 아들은 운명처럼 괴물을 물리는 요괴 퇴치사 해치를 만났습니다.







바야흐로 조선 시대. 조신 시대를 주름 잡던 최고의 요괴 퇴치사 해치. 요괴 퇴치사 해치는 미래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는 요괴를 물리치라는스승의 명을 받고 머나먼 미래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요?


가장 먼저 해치가 만난 요괴는 귀수산이란 요괴입니다. 바다에 사는 요괴 귀수산은 흉악한 요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 받는 요괴입니다. 그것도 사람 때문에 괴로운 요괴입니다. 이 요괴가 견디지 못해 뻘떡 일어섭니다. 그때문에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고, 운동회를 하던 해치의 친구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해치가 나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이없게도 문제는 온갖 해양쓰레기가 귀수산의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해치가 귀수산의 콧구멍과 기도를 막은 쓰레기를 다 처리하자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었습니다. 귀수산은 힘겨운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스스로 봉요함으로 들어갑니다.


이 요괴는 요괴가 아니라 요괴스러운 인간의 탐욕과 결과로 고통받는 자연을 보여줍니다. 일본과 하와이 사이,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거대한 쓰레기 섬이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쓰레기 섬은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와 생활쓰레기로 가득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쓰레기도 상당히 몰려 있다고 합니다. 쓰레기섬의 크기가 무려 대한민국의 16배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새와 거북, 물고기가 쓰레기를 먹이로 알고 먹고 죽는 일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돔이 생기고, 북미대륙이 타고 있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빨리 탐욕이란 괴물을 물리쳐야 할 이유입니다.


두 번째 괴물은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홀리는 괴물입니다. 사람 마음 홀리는 대표적인 요괴는 당연 구미호지요. 여기서도 구미호가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가 갑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영혼마저 서서히 집어삼킵니다. 구미호에게 홀린 아이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구미호가 아이들의 마음을 홀리는 방법은 '미디어'입니다. 스마트 폰으로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구미호가 두 번째 요괴입니다. 해치는 이번에도 멋지게 구미호를 물리칩니다. 이땐 해치와 함께한 삼족구(세 발 달린 강아지)가 큰 역할을 합니다.


미디어의 폐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쥔 아이들은 오로지 스마트폰만 보려고 합니다. 미디어 중독이란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란 뜻입니다. 얼마 전 나의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때였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의 아들이 한 여학생을 보니더 "스몸비다" 라고 외쳤습니다. 나는 아들이 아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저 아이 이름이 스몸비야? 이름이 희한하네." 아들이 낄낄대며 웃더니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빠, 좀비와 스마트폰을 합친 단어가 스몸비에요. 길을 걸을 때조차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사람을 스몸비라 불러요."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내가 운전하는 차량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아마 그 아이도 스몸비라는 단어를 알 것 같은데, 자신을 스몸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디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스마트폰을 꺼내 듭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영상을 보지 않으면 심심하다고 말합니다. 힘껏 뛰어놀아야 할 때에 스마트폰으로 들어갈 기세로 영상만 쳐다보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건강한 정서발달과 원만한 대인관계, 풍부한 정서함양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 문제는 자녀와 꼭 이야기를 하고, 제한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해치가 만난 세 번째 요괴 역시 사람의 탐욕과 직결된 괴물입니다. 산속에만 살고 있던 도깨비가 이제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해치를 만난 도깨비는 사람이 자신을 불렀다고 항변합니다. 사람이 도깨비를 불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도깨비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던 산을 다 깎아버렸다고 말합니다. 숲을 파괴하고 산을 없애버렸으니 결국 자신은 갈 곳이 없고, 살 곳이 없어 사람 사는 곳으로 왔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 역시 사람의 일방적인 폭행 또는 착취에 가까운 난개발 문제를 꼬집습니다.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산을 깎고 공사하는 곳을 자주 목격합니다. 산을 깎아서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한 곳이 많아도 많아도 정말 많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산을 깎아 아파트를 만들고,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세웁니다. 글쎄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네 풍경을 보면 도를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해치처럼 자연파괴라는 이름의 흉칙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요괴 잡는 해치]는 조선 시대 요괴 퇴치사 해치가 오늘 우리가 사는 곳으로 와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조선 시대 요괴 퇴치사가 현대의 괴물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물리쳐야 할 진짜 괴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합니다. 우리도 해치처럼 이 땅을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용기 있게 일어서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바다야 우리가 지켜 줄게

바다야 우리가 지켜 줄게
저자: 아망딘 토마
출판: 휴먼어린이
발매: 2021.04.30.

스마트폰 전쟁

스마트폰 전쟁
저자: 고정욱
출판: 크레용하우스
발매: 2021.05.15.

나의 숲을 지켜 줘

나의 숲을 지켜 줘
저자: 윤혜숙
출판: 키다리
발매: 2018.01.31.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 이상옥 지음, 이주미
출판: 한솔수북
발매: 2021.07.05.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저자: 김백민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21.06.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 낯선 길 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만나다 진로 쫌 아는 십대 2
서와(김예슬) 지음 / 풀빛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유학 때 아내와 미국 이곳저곳을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내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던 텍사스 달라스는 미국 남부 한 가운데 자리잡은 도시여서 여기저기 방문하기 좋은 위치입니다. 말이 그렇지 달라스에서 서부 LA까지는 논스톱 25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뉴욕까지도 25시간을 논스톱으로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대륙입니다. 첫 여행은 Las Vegas와 그랜드 캐년이었습니다. 전체 일정은 7일이었습니다. 다음번 방학 여행은 같이 공부하던 전도사님 부부와 뉴 멕시코에 일주일 여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그 다음 여행은 세인트 루이스를 거쳐 시카고, Niagara Falls, 보스톤, 뉴욕, 워싱턴, 아틀랜타를 거쳐 달라스로 복귀하는 2주짜리 여정이었습니다 왕복하고 보니 8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거쳐 Rocky Mountain National Park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살던 LA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습니다. LA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Hawaii에 스탑바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보니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여러 번의 길고 긴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갈등한 적도 많았습니다. 서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아내는 방문하기 전부터 여행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일단 가서 보자는 식이었습니다. 가다가 맘이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운전대를 옮겨도 좋다는 식이었지요. 다툼이 없을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나를 더 알게 되었고, 아내는 아내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여행을 통해 나는 아내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아내도 나라는 사람을 더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준 깨달음이자 배움이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시선에서 보기에 아직은 어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걷는 길, 걸으려 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소녀를 만났습니다. 필명부터 서와(글과 함께라는 뜻)입니다. 18세에 스스로 자신의 필명을 붙이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소녀, 이제는 어느새 20대 후반에 들어선 청년작가의 책입니다.






놀라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십대 청소년이 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속세에 해탈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 아들딸을 기르기 때문에 더욱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해탈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신 분으로 보입니다. 자녀에게 너만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그 길을 걸어가라고 등을 떠미는 부모라니... 천년기념물로 보입니다.


용장 아래 약졸없다는 말처럼 그 부모 아래서 자란 서와는 참 대단한 행보를 보여줍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한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법을 찾아냅니다. 서와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그간 가보지 않았던 곳을 걸으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자신의 삶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10 후반에 들어서는 '공감유랑'이란 이름의 버스를 타고 300일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습니다. 3명의 선생님과 18명의 학생으로 조직된 공동체입니다. 300일이란 긴 시간동안 숙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가는 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돈을 벌고, 숙식을 해결하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공연을 준비해서 여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논어를 배우고 고추장을 만들고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해 나가더군요. 십대 후반에 말이에요.


20대가 되어서는 모든 순례자의 꿈의 장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800킬로를 걷는 여정에 올랐습니다(저자 서와는 여기서 조금 더 보태 대략 900킬로를 걷습니다). 이 길고 긴 시간을 홀로 걸으며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서로를 격려하는 법을 배우고, 음식을 해먹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해서 갑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삶의 방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산티아고를 걸으며 짐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서와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작은 가방이라도 길고 긴 순례길에 거추장스럽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짐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짐을 가볍게 했습니다. 달팽이처럼 자신이 지고 갈만한 짐만 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20대 중반에도 이르지 않은 청년이 얻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결국 서와는 낭만 쫌 아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농촌으로 들어가 농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서 정직하게 수고하고 땀 흘리며 농사를 짓고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정성껏 기른 작물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더군요. 영농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변 어르신과 이웃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강차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이 젊은 청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담쟁이 인문학교의 정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내공 가득한 문장으로 각인하듯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서와 작가의 진심을 담아낸 문장 몇 줄을 소개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청소년 친구들이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걸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171p


내가 바라는 삶을 찾아가는 여행은 

밥상을 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길 위에서 밥을 지어 먹으며 많은 길을 걸었고,

지금은 밭에 다녀와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밥상을 차리고 있다. - 177p


농사지으며 밥을 짓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이따금 장터에 나가 농산물을 팔고, 

친구들을 만나 재미난 작당을 벌이고,

또 걷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싶지 않다.

한 줄 안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으니까.'

"학교 밖에 내가 찾을 수 있는 정답이 있을까?' 생각하던 나는,

정답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 178p

나를 찾는 여행 쫌 아는 10대 중에서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누군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허둥거립니다. 자라는 자녀는 세상에 휩쓸리며 개성을 잃어버립니다.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부모가 시크는 대로,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성공의 필수요건이 된 것 같은 낯선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서와는 돌멩이 하나를 던졌습니다. 삶에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보여주었습니다. 이 파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갈지, 얼마나 큰 파장으로 성장할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나도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라고 격려하고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지 않고,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아들딸이 되길 응원해야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아들딸과 함께 산티아고를 걸으며 삶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힘겨운 여정이겠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걷고 싶습니다. 그땐 나의 나이도 적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 체력관리에 신경 써야겠습니다. 나의 아들딸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십대 자녀를 두신 부모라면 자녀의 책상위에 슬그머니 올려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즐거운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산티아고 어게인

산티아고 어게인
저자: 박재희
출판: 푸른향기
발매: 2021.07.09.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저자: 황승찬
출판: 바른북스
발매: 2021.05.04.

느긋하게 걸어라

느긋하게 걸어라
저자: 조이스 럽
출판: 복있는사람
발매: 2008.05.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거칠부 지음 / 책구름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한 해 전 2019년 여름이었습니다. 대학생 6명과 나를 포함한 어른 3명이 총 9명이 16박 17일 유럽 비전트립을 떠났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거쳐 다시 독일로 와서 귀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기온이 38도를 웃돌았습니다.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마드리드에서 톨레도, 톨레도에서 풍차마을 콘수에그라, 콘수에그라에서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자하라, 코르도바, 세비야까지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도착지마다 하루 15킬로에서 많은 경우 20킬로 가까이 걸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또다시 이곳에 방문한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거니와 더 많은 곳을 보며 느끼고 싶어 일정을 빠듯하게 잡았습니다. 스페인은 해가 늦게 져서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자려고 누우면 보통 자정에서 1시 사이였습니다.


대학생들의 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일정이 빠듯하고 힘들어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때 이런 고생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보겠냐며,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미친 듯이 걷고 운전하고 눈과 마음에 더 많은 장소와 사람과 느낌을 담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체력이 고갈되도록 다니고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코피까지 흘려가며 따라왔다고 하더군요.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페인 일정을 마치고 포르투갈에서도 일정은 빡빡했습니다. 노숙자, 집시 마을, 마약촌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통기타 하나로 반주하며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즉흥적으로 10수회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우면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피곤했지만 몸과 마음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끓어올랐습니다. 독일에 갔을 때 비로소 여유 있는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청년들은 그제서야 한숨을 몰아쉬며 비전트립에 더 깊이 몰입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사진을 보면서 그 시간을 그 장소를 그때 만났던 사람을 추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스페인 말라가의 왕의 오솔길.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16박 17일의 짧지 않은 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내며 갈등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돌아다니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잘 극복했던 그래서 더 소중한 기억으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의 이 짧고 럭셔리한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길을 걸은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읽으며 그 순간이 떠오른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네팔, 파키스탄, 티베트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K2와 같은 이름은 늘 마음 저 구석에서 생각만 해본 이름이자 장소였습니다. 그곳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드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전문 산악인들에게만 허락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가끔 가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거칠부를 만나기 전까진 말입니다.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라는 책은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수천 킬로를 걸어 다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녀가 거기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마음을 훔쳐보고 싶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기록하거나, 글솜씨가 좋다면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과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담은 그녀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나의 상황과 환경을 생각하면 내가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땅을 눈과 마음에 담지 못하고 그곳을 밟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더 욕심이 났습니다(물론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지요. 언젠가 내가 그곳을 눈과 마음에 담고 나의 두 발로 밟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히말라야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을 뿐 아니라 뛰어난 글 솜씨로 그녀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멋지게 담아낸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있다는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책은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광활하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파키스탄 일반 정보를 소개합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빼곡하게 제공합니다. 굳이 히말라야가 아니라도 파키스탄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각 챕터를 마칠 때마다 거칠부는 트레킹 지도와 고도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기록으로 남길 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큰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 생각했습니다. 각 챕터마다 그녀가 만난 숨 막히는 풍경을 멋진 사진으로 촘촘하게 담아두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히말라야를 눈에 담은 것 같은, 그곳을 밟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미국 여행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진작가라 하더라도 자연을 다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1/10 심지어 1/100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동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광활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거칠부가 탐사하듯 다녀온 흔적은 각 장으로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Chapter 1. 벌거벗은 산 ㅣ낭가파르바트 페어리 메도우 / 루팔

Chapter 2. 빙하 대탐험 ㅣ비아포 - 히스파르빙하

Chapter 3. 신들의 광장 ㅣK2 트레킹 - 곤도고로라

Chapter 4. 비밀의 정원 ㅣK6, K7 베이스캠프 / 아민브락 베이스캠프

Chapter 5. 파미르 오아시스 ㅣ 심샬 파미르

Chapter 6. 위대한 풍경 ㅣ 스판틱 베이스캠프

Chapter 7. 위태로운 길 ㅣ 라톡 베이스캠프

Chapter 8. 야생화 천국 ㅣ 탈레라 / 이크발탑


나에겐 모두 낯선 이름이지만 산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럭셔리한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힘이 듭니다. 가족이라도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물며 고산지역을 낯선 사람과 다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도 고백합니다. 인상에 비해 좋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었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하고, 서로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입니다. 참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아마도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히말라야라는 지구의 지붕을 탐색한 사람다운 단단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히말라야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그 넓고 광활한 곳을 오르내기 위해 체력은 필수입니다.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중요합니다. 비상약에서부터 여벌 옷과 등산화까지 꼼꼼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면 끝까지 해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그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마음을 나누는 절묘한 줄타기를 해내야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뿐 아니라 히말라야 트레킹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히말라야와 같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을 여행한다면 인생을 더 깊이 돌아보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거칠부의 시선을 따라 가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게 친절해야겠지요. 그렇다고 속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멋지게 완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여벌의 신발과 비상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히말라야와 같은 산을 트레킹 하기 위해선 팀을 꾸려야 합니다. 짐을 나르는 포터가 있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며,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일에 충실할 때 아름답고 멋지게 여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 걷는 사람, 독불장군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이란 여정은 히말라야보다 거칠고 높고 광활합니다. 그 길을 잘 걸어내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걸어갈 동료가 필요합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으며, 친구나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신앙일 수도 있겠죠. 각 사람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신뢰할 때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쩍쩍 입을 벌린 크레바스나 휩쓸려 내려가는 강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리를 건너야 할 때도 있겠고,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갈 때도 있을 겁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 길을 건넌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다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때를 돌아볼 날이 있겠지요. 참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살았던 시간으로 추억하기 위해, 그때 웃으며 이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 지금을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읽으며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잘 걸어가기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습니다. 힘겨운 시간을 지나는 분들,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 언젠가 히말라야를 밟아볼 마음을 가지신 분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얼굴에 혹할까 - 심리학과 뇌 과학이 포착한 얼굴의 강력한 힘
최훈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첫 미국 유학 때였습니다. 힘겨운 첫 학기를 마치고 긴 여름 방학을 맞았습니다. 미국에 갔으니 당연히 미국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아내와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거리를 오가며,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습니다.


저 유명한 라스 베이거스(Las Vagas)에 갔을 때였습니다. 대낮의 라스 베이거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즐비한 호텔을 돌아다니며 평생 다녔던 곳보다 더 많은 호텔을 구경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시간 아내와 나는 가성비 좋은 뷔페로 추천 받은 Luxor 호텔 뷔페로 들어갔습니다. 카메라를 비롯한 짐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접시에 음식을 담아오면, 그 후 내가 음식을 담아오는 식으로 움직였습니다.


음식을 구경하며 접시에 담으려고 하다 조금은 의심스러운 미국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미국이니까 미국식으로 눈인사(턱을 위로 치켜드는 인사입니다)를 날렸습니다. 으레 눈인사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해였습니다. 그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나쳤습니다. 뷔페를 돌다보니 또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번엔 그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친근한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날카로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다가와 한 마디 날렸습니다.


"I know you"


느닷없이 나를 안다고? 어떻게 나를 알지? 별 희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마도 당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굽힐 생각이 없었습니다. 뚫어지게 저를 보던 그는 한마디 더 던졌습니다.


You are a wanted!!


Wow!!! 졸지에 나는 현상 수배범으로 몰렸습니다. 그는 나에게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고, 경찰을 불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어이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밥먹고 있을 테니 경찰 데려오라고 했지요. 그는 씩씩하게 걸어나갔습니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얼굴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나는 얼굴 때문에 여러 가지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베트남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한국 마트에서는 한국말을 한다고 점원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멕시칸 아메리칸으로도 오해 받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줄곧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 사람으로 오해 받곤 했습니다. 다 얼굴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이런 나는 [왜 얼굴에 혹할까]라는 책에 필연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은 심리학과 뇌 과학이 포착한 얼굴이 가진 강력한 힘에 대해 질서정연하게 진술합니다.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부: 나의 바코드, 얼굴

- 1장) 얼굴을 읽다

- 2장) 같은 얼굴을 다르게 읽다

2부: 말보다 강한, 얼굴

- 3장) 보자마자 사로잡는 얼굴의 힘, 매력

- 4장) 0.1초가 만든 족쇄, 첫인상

- 5장) 얼굴을 더 강하게

3부: 소통의 기술, 얼굴

- 6장) 얼굴에 내 마음이 있다

- 7장) 타인을 알아보는 힘




책을 읽으면서 뜨끔했던 부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무릎을 치면서 공감한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이렇게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쌓인 노하우나 경험을 힘입어 사람의 얼굴로 성격을 판단했습니다. 아주 순간적인 판단이었지만 놀랍게도 비교적 정확하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 있는 얼굴 방향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기 얼굴 방향 때문에 자리 다툼을 벌이는 사람을 만나보았기 때문입니다. 호들갑이라 생각했는데 사진을 찍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 최훈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첫인상은 두 번 줄 수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첫인상은 대부분 외모로 판가름납니다. 전체로서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몸매도 작용합니다. 하지만 첫인상의 대표주자는 얼굴입니다. 그러다보니 순간의 이미지로 판도를 바꾸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케네디가 닉슨을 압도한 결정적인 분깃점이 TV 토론이었고, 케네디는 첫인상으로 대권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눈썹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안경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비교적 눈썹이 진한 편에 속합니다. 그러다보니 얼굴이 주는 분위기가 강렬한 편입니다. 동남아 사람으로, 멕시칸 아메리칸으로 오해 받는 일에 일등 공신이 눈썹이라 생각했습니다(물론 얼굴 색깔과 전체적인 분위기도 한몫합니다). 눈썹 문신하시는 분이 많아지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인상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고통은 감수할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왼쪽 얼굴이 오른쪽 얼굴보다 훨씬 멋있고 예쁘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문제는 매력을 담당하는 시선이 왼쪽이라는 것, 그래서 상대는 나의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얼굴을 먼저 본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연히 상대에게 매력 어필하려면 오른쪽 얼굴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팅이나 소개팅 면접에 나갈 때 오른쪽 얼굴에 신경을 쓰면 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이 책이 알려준 꿀팁 하나 더. 혼자 찍은 사진보다 여럿이 함께 찍은 사진이 더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땐 망설이지 마시고 활짝 웃으며 찍어보세요. 평소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왜 얼굴에 혹할까]를 읽으면서 얼굴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얼굴은 중요합니다. 얼굴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얼굴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저자 최훈은 얼굴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역시 과학으로 밝혀낸 사실이라는 것도 제시합니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얼굴은 사람 됨됨이를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잘 웃고, 진심을 담아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 충분 조건입니다. 진정한 웃음(뒤센 미소)을 가진 사람, 평소 잘 웃는 사람이 잘 웃지 않는 사람에 비해 건강할 뿐 아니라 더 행복하고 심지어 수입도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해맑게 웃고, 진심 담은 미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해맑게 활짝 웃는 일이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하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웃어서 손해 볼 일 없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활짝 웃는 사람,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겠지요.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얼굴에 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얼굴로 알아봅니다. 물론 몸짓으로 행동으로 말투로 목소리로도 이해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얼굴입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부단히 노력해야 할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 얼굴에 혹할까]가 이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습니다. 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며, 뇌 과학까지 뻗어가며 얼굴에 담긴 신비(?)를 추적합니다. 얼굴은 단순히 누군가를 드러낼 뿐 아니라 현대에는 일종의 상품, 경쟁력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얼굴에 투자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사람을 알아봅니다(물론 나와 같은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의 뇌는 빠르게 적응하고, 마스크로 가린 얼굴마저 제대로 인식합니다. 반대의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언젠가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면 벗은 얼굴을 또 다시 기억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뇌는 그 일을 멋지게 수행하리라 생각합니다.


얼굴 하나로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나 담아내고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얼굴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얼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해가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얼굴만 보고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첫인상을 끝인상으로까지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웃는 얼굴을 연습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고, 진정성 있는 언어와 행동과 표정으로 살아간다면 비록 멋지고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어도 결국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업병으로 외모에 관한 성경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얼굴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 이렇게나 다양한 얼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신 분, 얼굴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진심담아 추천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함마 2021-07-3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이 명품이네요

Hisway 2021-08-24 11:19   좋아요 0 | URL
이제야 봤습니다
좋게 봐 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룻밤 미술관 - 잠들기 전 이불 속 설레는 미술관 산책
이원율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에 발 담그고 싶은 당신을 위한 생애 첫 미술책!


이 한문장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그림 보는 법을 모릅니다. 어떤 그림이 훌륭한 그림인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림 그릴 줄도 모릅니다. 나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미술에 무관심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술은 늘 마음이 갑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노래를 잠깐 배울 때 스승이셨던 조하문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콕 박혀 있습니다.


"미술작품을 보고 있으면 음악이, 노래가 여러 곡 흘러놔와.

어떤 면에서 본다면 음악은 한 폭의 그림 같고, 

그림은 한편의 음악 같아."


이 말 때문인지 음악과 미술이 서로 통하기 때문인지 미술은 음악처럼 나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책이 있습니다. 이원율 작가가 지은 [하룻밤 미술관]이란 책입니다.







책 표지 색깔부터 맘에 쏙 들어왔습니다. 이원율 작가가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풀어 쓴 일종의 해설이 흥미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재미 있었습니다. 다루는 미술가들의 면면도 폭넓을 뿐 아니라 나와 같이 미술에 대해 문외한도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하룻밤 미술관]이 담고 있는 예술가의 명단을 한 번 보시죠.


1. 레오나르도 다빈치

2. 카라바조

3.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4. 최북

5.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6. 프란시스코 고야

7. 에드가르 드가

8. 폴 세잔

9. 오귀스트 로댕

10. 콜로드 모네

11. 폴 고갱

12. 빈센트 반 고흐

13. 에드바르 뭉크

14. 빌헬름 하마르스회

15. 윌리엄 터너

16. 툴루즈 로트레크

17. 모리스 위트릴로

18. 프리다 칼로

19. 이중섭


내가 잘 몰랐던 사람도 있고, 우리나라 인물도 포함했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작가들로 촘촘하게 구성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일종의 부록처럼 보이는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궁금할 법한 이야기를 따로 묶어 놓았습니다. "속사정 특집"이란 이름으로 묶어 놓은 부분도 무척 재미와 흥미를 끌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한 판 메이헤런, 스탕달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고, 이원율의 사실에 기초한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질문 아닌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나 예술가의 삶은 고단한 걸까?" 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피어올랐습니다. 이후 "삶이 고단하고 모질기 때문에 예술이 필요한 걸까?" "시련과 고난이 예술로 승화되는 걸까?" "예술 작품 자체가 인생을 담아낼 뿐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유가 바로 화가가 만나고 경험한 삶의 무게 때문일까?" 이런 질문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해설이 나의 마음과 상상을 자극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많은 작가의 많은 그림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해상도의 그림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대감이 솟아오릅니다. 책 제목처럼 하룻밤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고,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을 깊이 감상하고 싶다면 먼저 글을 읽고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 마음이 답답하고, 생각이 복잡한 날이라면 그림을 위주로 감상하는 것도 좋은 읽기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맑아지고,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술이 주는 힘이겠죠.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소개합니다


방구석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
저자: 조원재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18.08.03.

방구석 미술관

방구석 미술관
저자: 조원재
출판: 블랙피쉬
발매: 2020.11.18.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저자: 오은정
출판: 안그라픽스
발매: 2021.06.15.

의자와 낙서

의자와 낙서
저자: 서지형
출판: 케이스스터디
발매: 2019.03.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