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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보물창고, 도서관의 역사 - 두루마리부터 가상현실까지 도서관 이야기
모린 사와 지음, 빌 슬래빈 그림, 빈빈책방 편집부 옮김 / 빈빈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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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보물섬에 간다. 


보물섬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보물섬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우리 가족이 찾은 보물섬은 바로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도서관은 어디서 시작했을까요? 어떤 책을 보관했고, 왜 그랬을까요? 도서관에 처음 보관한 책은 어떤 책이었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도서관을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질문이 적지 않습니다. 이 까다롭고 복잡해 보이는 질문에 대해 차근차근, 놀랍도록 예리하게 대답해 주는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지혜의 보물 창고, 도서관의 역사]입니다.








1장은 도서관 역사의 시작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함무라비 왕이 세운 바빌로니아의 보르시파 도서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도서관, 고대 중국의 도서관과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이건 정말...), 고대 로마의 개인 도서관, 고대 로마의 공공도서관 이야기를 촘촘하게 무엇보다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2장은 암흑시대입니다.

암흑시대 도서관의 운명은? 고대 도서관은 왜 몰락했는지,. 수도원 도서관은 왜 등장했는지 보여줍니다. 암흑시대에 책의 수호자의 역할을 맡았던 수도원과 수도사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책을 베껴 쓰면서 자연스레 글쓰기가 발전한 과정도 들려줍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발전이 도서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고, 비잔티움 제국의 제국 도서관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여기서 잠깐. 중세 시대(흔히 암흑시대라 불리는)는 그야말로 책의 수난시대였습니다. 지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무겁게 여긴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책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이교도의 책까지도 필사해서 보관하면서까지 인류의 자신을 지키는 일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침침한 불을 켜놓은 곳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 필사했습니다. 시력을 잃어가고, 등허리가 굽어가고, 거북목이 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최소한 중세 그 암흑의 시간을 뚫어낸 기독교와 수도사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대학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좋던 싫던 상관없이 예수에게 빚을 진 셈이라는 뜻입니다.








3장은 황금기입니다.

암흑기가 있다면 당연히 황금기도 있어야겠지요. 인쇄기의 발명으로 시작한 도서관의 황금기와 책의 보급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 이야기도 빠질 수 없겠지요(겁나 자랑스럽다는...), 가동 활자 발명이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과 종교개혁 이야기까지 인쇄 문화에 얽혀 있다는 진실을 보여줍니다. 바티칸 도서관 이야기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리언 도서관, 책 기부 문화, 우리나라 도서관 이야기가 빼곡한 챕터입니다.


4장은 새로운 세상으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세상은 신대륙 발견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최초의 회원제 도서관, 책의 대중화로 대두된 도서관의 역할, 지금까지 이어져온 개인 발전을 위한 책 읽기, 앤드류 카네기의 성공이 도서관과 엮어 있다는 비밀까지. 또한 다양한 도서관이 등장한 과정을 친절하고 재밌게 들려줍니다.


5장은 미래의 도서관 여행입니다.

미래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상상해 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야기로 이 챕터의 포문을 엽니다. 참 멋진 구성이라 생각했습니다. 변하는 시대에 도서관의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적의 도서관 이야기와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 첨단 기술의 옷을 입은 디지털 도서관의 모습까지 미래에도 각광받을 도서관을 상상해 보는 챕터입니다.


마지막엔 부록과 같은 챕터가 있습니다. 이 챕터에 마음이 많이 끌렸습니다. 참고 자료, 도서관 웹사이트, 도서관 협회, 전자도서관 등 주옥같은 정보를 빼곡하게 담아 놓았습니다. 책을 펼쳐들고 구경하고 싶은 곳을 찾아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곳입니다.








어제도 아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아들딸 읽을 책을 잔뜩 빌려왔습니다. 단순히 재미 위주로 독서하는 편이지만 작년 한해 동안 천 권 이상의 책을 읽은 아들딸이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책을 가까이하면서 인류의 보고를 마음껏 탐험하길, 책을 통해 수많은 지성과 깊은 대화를 나누길, 내면이 더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며 높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기대합니다.


[지혜의 보물창고, 도서관의 역사]를 읽으면서 도서관의 고마움을 다시금 깨우쳤습니다. 도서관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책 읽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책보다는 영상이 더 익숙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방식이든 아날로그 방식이든 책을 가까이하고, 지혜를 전수하고 보존해 가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보시길... 도서관 회원 가입도 하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이야말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인류의 보물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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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뒤의 소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1
온잘리 Q. 라우프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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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겐 일어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귀를 닫고 있었고, 눈을 감고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난민' 이야기입니다.


2018년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거부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민이 우리나라와 엮이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열고 귀를 열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 곳곳에서 심각한 수준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이렇게나 무지한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구촌'이라 부르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안위에만 열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지구촌이란 단어를 꺼내 사용하고, 불편할 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쟁난민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어린아이입니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었습니다. 부모를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뿌리째 뽑혀나갔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몰라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잠에 듭니다. 어쩌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만난 사람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세상을 보면서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 보입니다.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고, 코로나를 극복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해외로 여행 가겠다고 말하면서 지금 지구촌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일 따름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샤넬 향수로도 가릴 수 없는 추한 냄새로 진동하는 삶이라고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부끄럽습니다. [교실 뒤의 소년]의 저자 온잘리 라우프가 던져 준 생각입니다.







[교실 뒤의 소년]은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가슴 아픈 일이면서도 무척이나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대면하게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세상에서도 차별이 일어나고 있으며, 부끄럽게도 그 일을 부추기거나 모른 채 하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국민 보호와 이익이라는 대의명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를 내는 우리의 자화상을 대면하게 합니다.


동시에 난민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버림받은 사람,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사람, 모든 것을 잃고 두려워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는 사람,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난민 문제'를 보게 합니다. 피부 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차별하거나 괴롭히거나 밀어내는 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지 보여줍니다. 난민의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 아니라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희망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마저 자신을 희생하고, 대단한 모험의 길에 올라서서 친구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함께 이 문제에 직면하자는 초대장을 건넵니다.


쉽고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맞서 싸워야 할 장벽이 있습니다.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일, 높고 깊은 길은 어렵습니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후에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난민 문제'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난민 문제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차별'을 극복해 나가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흘려야 할 땀과 쏟아야 할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철옹성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교실 뒤의 소년]이 보여주고 들려준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때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무슬림 '할랄 음식'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성소수자의 문제와 남녀 성차별의 문제까지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라 이 정도에서 멈추겠습니다.


미국 유학 기간 동안 소수민족으로, 유색인종으로 살았습니다. 몇몇 사람은 나의 어눌한 영어를 못 참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조금은 신기한 눈빛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단어를 계속 말해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어눌한 발음이 듣기 좋아서는 아닐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나의 도전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한국에서 한국말로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나의 모습 자체에 경이감과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흑인과 멕시칸을 만났을 때는 내 안에 숨어 있던 차별적인 선입견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흑인과 멕시칸은 무서운 사람, 가급적 피해야 할 사람인 양 다가가길 망설이는 나를 보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편견과 장벽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 웃고 떠들면서 그들 역시 빨갛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난민 문제는 세계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국제 이슈입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쟁과 내전의 소식, 재난과 재앙의 소식은 난민 문제를 더 확대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기후 문제도 기후 난민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구촌을 말 그대로 이웃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기 위해 마음을 나누고 손을 잡아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자국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의 죽음보다 나의 고뿔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니까요. 그렇다고 이기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조금만 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각국 정상들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지구촌의 미래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기업들도 이익 창출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사회로 더 환원할 수 있다며 좋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


어린이 도서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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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 - 유나 아빠의 애도 일기
김동선 지음 / 두란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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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화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나는 교실 바닥에 오빠 유진이랑 엎드려 있는 유나를 보았습니다. 둘이서 뭐가 그리 재미난지 유쾌한 시간을 보내던 유나와 유진이도 나를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기다리는구나. 좋은 저녁 보내"

"네,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인사였고 유나가 들려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수요일 아침 유나가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어제까지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유나 소식은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날 수요일 예배는 나의 순서였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유나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해야 할지 몰랐고, 후에 있을 기도회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인도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중단하고 유나가 있는 병원에 방문했었습니다. 머리를 깎은 채 유나는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많은 분이 유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이겨내자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유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다가 손으로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나의 친구 동선 목사와 영미 사모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손만 꼭 잡았습니다. 나의 생각과 언어가 이 정도로 결핍 상태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예배 시작하기 직전 유나가 매우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식이 없다는 말, 앞으로 몇 시간이 결정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정적일 것이라는 말에는 무서운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요예배 설교를 하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유나 소식을 메모지로 건네받으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건 아니라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들 몰래 속으로는 "진짜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닙니다. 하나님 노릇 제대로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협박하듯 기도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제대로 해달라고 간청하고 매달리고 협박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배를 다 마치고 교역자실로 들어갈 때였습니다. 담임 목사님 방에서 고함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확 열어젖힌 목사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유나가 코마에 빠졌단다. 병원에 가자" 목사님은 기억하시지도 못할 말씀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멍한 표정의 동선 목사와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도 여전히 침착한 영미 사모를 보았습니다. 무슨 마음일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나올 때 동선 목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전화해"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적이 또 있습니다. 2001년 7월 25일 밤 12시경 마산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과 사망사고라는 말이었습니다. 긴박한 추적 끝에 큰 형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곤히 주무시던 부모님을 깨웠습니다.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다가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큰 형님이 죽었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잘못 들으셨다는 것인지 연신 귀를 후비셨고, 나의 어머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연신 되물으셨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을 나는 두 번이나 뱉었습니다. 한 번은 나의 부모님에게 또 한 번은 나의 친구 동선이에게.

동선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날 새벽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기 액정에 김동선 목사님이라는 발신자 이름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목사님, 유나가... 우리 유나가..." 동선 목사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동선이가 차마 말을 하기 전에 말을 끊어야 했습니다. "알겠어. 지금 갈게"


동선 목사가 애도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습니다. 애도 일기가 하나 둘 쌓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토해내야 숨이라도 쉴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습니다. 글이 제법 쌓였을 때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유나 애도 일기 책으로 내보면 어때?" 이미 그럴 계획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애도 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입니다.


책을 읽으며 지나간 시간이 다시 떠올라 눈물을 쏟았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 마음을 조금씩 맛보며 쓴 눈물을 쏟았습니다. 딸을 먼저 떠나보낸 아빠의 마음을 훔쳐보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유나를 보낸 지 일 년 되는 날 동선 목사네 집에서 유나를 기억하며 예배드린 기억도 돋아 올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던 그때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끔 동선 목사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실은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싶고 식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아들 유건이가 유나와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유건이를 보면 유나가 생각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의 딸 유은이를 보면서 유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은 함께 식사 자리조차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인생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기억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작업은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눈으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마주하기 싫은 기억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안한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라는 책이 태어났습니다. 수만 번을 되뇌며 곱씹은 생각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담담하지만 섬세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더욱 그랬을 테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오늘을 더 소중하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아들을 앞세우신 하나님께로 나의 마음과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눈물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 결국 이 눈물을 씻어주실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실을 경험합니다. 저마다의 무게로 아픔으로 고통으로 상실을 경험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순간을 만나면 외면합니다. 모른 척합니다. 피합니다. 어떤 이는 절망합니다. 더 이상 삶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생채기를 내며 무너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직면하면서도 상실이 가져다주는 아픔과 고통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지 않습니다. 분명 늪에 빠져들었는데 기어이 그 늪에서 빠져나옵니다. 그 사람은 상처가 무엇인지,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할 뿐 아니라, 상실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한 것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니다.

무엇이 이와 같이 놀라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김동선 목사는 그 대답을 사랑에서 찾았습니다. 참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그 대답을 찾았습니다. 김동선 목사의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는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김동선 목사의 책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책입니다.

삶이 무기력하다 느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의 고통에 직면한 사람,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람,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배워야 할 사람,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을 바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랑하길 원하는 사람,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붙들고 일어나 살아가기 원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 사랑하는 유나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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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분식집 초등 읽기대장
박현숙 외 지음, 김도아 그림 / 한솔수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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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그 음식 분식.

초등학교 앞에도, 중고등학교 앞에도, 심지어 대학가에도, 먹자골목이라면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곳 분식집.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자 전국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식 분식. 그만큼 분식은 우리나라 사람이 애정 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 가족 역시 분식을 좋아합니다. 즐겨 찾는 분식집 사장님은 거의 매번 왜 이렇게 많이 사 가시냐고 물으시는데, 남김없이 싹싹 비워냅니다. 그것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분식으로 가족이 한 끼 식사를 하는 편이니 분식 사랑은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이런 나를 불쑥 찾아온 책이 있었으니 제목부터 관심을 사로잡는 [기묘한 분식집]입니다.




기묘한 분식집은 박현숙, 임지형, 정명섭, 최영희 네 명의 작가가 분식을 주제로 함께 만든 일종의 앤솔러지(Anthology)입니다. 네 명의 작가가 저마다의 시선으로 분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네 명의 작가도 분식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긴 하지만요.

1장은 '신속한 AS를 기다립니다.' 2장은 '떡볶이와 쿨피스', 3장은 '마녀의 오뎅가게', 마지막 4장은 '내장도 주세요.'입니다. 성장소설답게 각 챕터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이입니다. '신속한 AS를 기다립니다.'는 분식 가게를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엄마와 아빠를 둔 장인이의 시선에서 본 세상입니다. 분식집 사장님 아들이면서 다른 분식집에서 일종(?)의 알바를 하는 장인이. 주인을 대신해서 잠깐 일하시는 마을 할머니를 도와 일하는 장인이는 눈에 불을 켜고 할머니를 찾아다니는 할아버지로부터 할머니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수수께끼와 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정체는 놀랍게도 장인이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2장 '떡볶이와 쿨피스'는 떡볶이와 떡볶이의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쿨피스를 두고 일어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플리마켓에 참가한 주인공 권이지는 경쟁자 서동준을 만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누가 만든 떡볶이가 더 많은 표를 얻는지를 놓고 말이죠. 그 결과에 따라 플리마켓에서 떡볶이를 판매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떡볶이 배틀을 벌이는데...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엉뚱한 방향에서 떡볶이의 영혼의 단짝 쿨피스가 등장하는데....


3장 '마녀의 오뎅 가게'는 산꼭대기에 있는 기묘한 분식집이 배경입니다. 세 명의 용감한 친구들은 기막힌 맛의 오뎅과 김밥을 자랑하는 산꼭대기 분식집을 향해 걷습니다. 주인장이 할머니라는 말도 있고, 아줌마라는 말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산꼭대기에 분식집이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고, 그 분식집에 사람이 붐비는 것도 이해할 수 없어 일종의 모험을 감행합니다. 산으로 오르는 동안 세 친구는 까마귀 떼와 삵의 공격을 받습니다. 갑작스런 우박을 만나기도 하지요. 그 와중에 처음 보는 여자아이를 만나기도 하고요. 우여곡절 끝에 분식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기막힌 오뎅과 김밥을 맛보는데... 그 아주머니와 딸의 정체는 서서히 드러납니다.

4장 '내장도 주세요'는 은여우 엄마와 인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은호아의 이야기입니다. 마을에 천년 묵은 여우 매구가 나타납니다. 매구는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무서운 여우. 천년 묵은 여우 매구는 서른 살 먹은 불편한 마을 아저씨 남식이를 납치해 갔습니다. 매구의 냄새를 맡은 은호아는 남식을 구하기 위해 매구의 뒤를 쫓을 뿐 아니라 매구와 맞섭니다. 안타깝게도 은호아는 천년 묵은 여우 매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은호아를 도운 것은 어린 동생 김루. 은호아는 김루와 힘을 합쳐 천년 묵은 무서운 여우 매구에 맞서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분식을 주제로 재미난 이야기가 네 편이나 들어 있습니다. 성장소설이라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재미도 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빙긋 미소 짓게 만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분식을 먹으면서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분식이 땡기니까요.

분식 좋아하는 자녀와 함께 [기묘한 분식집]을 읽으며 분식을 즐기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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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염장이 -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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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단순해지는 법이다."

사람은 태어나고 살아가다 죽음으로 삶을 마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생각하지 않거나, 굳이 외면하려 할 따름이지요. 세상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최대한 죽음을 뒤로 미루려 하고, 영생 불사를 꿈꾸지만 결국 사람은 죽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공평합니다.

목사로 살다 보면 죽음을 대면할 때가 많습니다. 장례예배를 인도하다 보면 가슴 절절한 순간을 많이 겪습니다. 참아보려 해도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순간도 만납니다. 고인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 목사로서 장례예배를 집례하기가 무척 괴롭고 어려운 순간도 적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대면하면서 언제부턴가 나의 마음에 떠오른 한 생각이 있습니다. 정갈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싶으나 글줄이 짧아 잘되지 않더군요. 시간이 많이 흘러도 여전히 머리에서 맴돌 뿐 좋은 문장으로 나오지 않고 있는 나의 생각을 담은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과 생명이 떠나가는 순간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거룩한 순간이다."

"태어나고 떠나는 순간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에고... 어렵습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란. 이래서 시인과 소설가가 그저 놀랍고 대단해 보일 따름입니다.)

장례지도사는 그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가장 많은 죽음을 목격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장례지도사, 흔히 염장이라 부르는 사람은 수많은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노무현, 김영삼, 법정 스님, 이건희 등 대통령과 유명 인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장례지도사, 장례 명장 유재철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조금은 더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염장이라는 별칭을 가진 장례 명장 유재철의 시선에서 본 죽음과 삶,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 관한 책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의 염장이]입니다.




책의 첫머리에 있는 자기소개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산파가 산도를 열어 이 세상으로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듯

나는 세상 인연 매듭지어 저세상으로 잘 보내드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져간다.

엄마가 사랑으로 지은 배냇저고리를 처음 입혀주듯

나는 정성으로 목욕시켜 마지막 수의를 입혀드린다.

태어날 때 자신은 울지만 주위 사람은 웃고

죽을 때 주위 사람은 울지만 자신은 웃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날 것을 걱정하는 아기가 없듯

세상을 떠날 것을 걱정하는 이가 없길 바란다.

내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대통령의 염장이 머리글


책은 염장이 유재철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죽음을 대면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많은 죽음 가운데 특별히 유재철 장례 명장의 기억에 남은 죽음이라면 우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지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대면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 머리글에 오롯이 녹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1부는 수천 가지 죽음의 얼굴입니다.

장례지도사 유재철이 잊지 못하는 장례식의 얼굴, 끝까지 아름답게 떠난 사람의 손, 발, 눈, 코, 입과 귀, 얼굴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길, 스님의 마지막 설법, 고인의 자리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이야기,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2부는 웰다잉 안내자입니다.

장례지도사란 직업에 대한 오해와 이해, 망자와 대면하는 시간에 대한 그의 시선과 마음,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와 태도, 죽음을 대하는 산 자의 태도, 죽음이 가져다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한껏 고양시키고, 마음을 넓혀주는 챕터입니다.


죽음을 대면한 장례지도사 유재철의 죽음 이야기는 명명백백한 죽음의 이야기입니다. 망자, 고인, 죽음, 장례 이야기가 빼곡하게 줄을 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삶의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죽음을 대면하게 만드는 장례지도사의 이야기가 삶을 직면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염장이]는 죽음 이야기지만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분명한 철학을 바탕으로 염장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스승으로부터 전수해 받은 그의 철학을 공개한 대목에서는 깊은 울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그의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삶의 철학이라 생각합니다.

1. 고인과 유족을 돈으로 보지 말 것

2. 따로 홍보하지 말고 일 잘해서 입소문 나게 할 것

3. 장례 공부를 계속할 것

진정성과 실력만 있으면 자본 없이도 장의사는 할 수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과 뼈에 새기고 유재철은 지금까지 장례지도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살을 살아왔습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철학은 속도가 미덕이 된 세상의 시선에서 볼 땐 어리석어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책을 집필한 유재철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알아주는 장례지도사, 장례 명장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장례를 주관했을 뿐 아니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례와 법정 스님의 장례까지 주관했습니다. 정도가 지름길이라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실력을 쌓아가는 삶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특별히 목사로 살아가는 나는 사람을 존귀한 대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평생 공부로 실력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삶의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삶의 방향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시선에서 볼 때 한 가지 특별하게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불교에서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얼마나 죽음을 귀하게 보는지, 어떻게 시신을 대하고, 염습을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책 전반에 걸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기독교인이고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죽음을 기하게 보신다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치르는 장례식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도 우리나라 장례 문화를 새롭게 하고 개선하는데 일조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교의 장례문화가 부럽게 다가왔고, 기독교의 장례문화가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장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죽음을 대면하면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더 의미 있게 재미있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참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자리를 잡아야 할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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