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뒤의 소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1
온잘리 Q. 라우프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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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겐 일어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귀를 닫고 있었고, 눈을 감고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난민' 이야기입니다.


2018년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거부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민이 우리나라와 엮이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열고 귀를 열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세상 곳곳에서 심각한 수준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이렇게나 무지한 것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구촌'이라 부르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안위에만 열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지구촌이란 단어를 꺼내 사용하고, 불편할 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쟁난민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어린아이입니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었습니다. 부모를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뿌리째 뽑혀나갔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날지 몰라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잠에 듭니다. 어쩌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만난 사람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세상을 보면서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 보입니다.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마음입니다.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고, 코로나를 극복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해외로 여행 가겠다고 말하면서 지금 지구촌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일 따름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샤넬 향수로도 가릴 수 없는 추한 냄새로 진동하는 삶이라고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부끄럽습니다. [교실 뒤의 소년]의 저자 온잘리 라우프가 던져 준 생각입니다.







[교실 뒤의 소년]은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가슴 아픈 일이면서도 무척이나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대면하게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세상에서도 차별이 일어나고 있으며, 부끄럽게도 그 일을 부추기거나 모른 채 하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국민 보호와 이익이라는 대의명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를 내는 우리의 자화상을 대면하게 합니다.


동시에 난민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버림받은 사람,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사람, 모든 것을 잃고 두려워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는 사람,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 비록 작은 일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난민 문제'를 보게 합니다. 피부 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서로를 차별하거나 괴롭히거나 밀어내는 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지 보여줍니다. 난민의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 아니라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희망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마저 자신을 희생하고, 대단한 모험의 길에 올라서서 친구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함께 이 문제에 직면하자는 초대장을 건넵니다.


쉽고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맞서 싸워야 할 장벽이 있습니다.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일, 높고 깊은 길은 어렵습니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후에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난민 문제'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난민 문제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차별'을 극복해 나가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흘려야 할 땀과 쏟아야 할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철옹성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교실 뒤의 소년]이 보여주고 들려준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때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무슬림 '할랄 음식'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다면 성소수자의 문제와 남녀 성차별의 문제까지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라 이 정도에서 멈추겠습니다.


미국 유학 기간 동안 소수민족으로, 유색인종으로 살았습니다. 몇몇 사람은 나의 어눌한 영어를 못 참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조금은 신기한 눈빛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단어를 계속 말해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어눌한 발음이 듣기 좋아서는 아닐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나의 도전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한국에서 한국말로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나의 모습 자체에 경이감과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흑인과 멕시칸을 만났을 때는 내 안에 숨어 있던 차별적인 선입견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흑인과 멕시칸은 무서운 사람, 가급적 피해야 할 사람인 양 다가가길 망설이는 나를 보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편견과 장벽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 웃고 떠들면서 그들 역시 빨갛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난민 문제는 세계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국제 이슈입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전쟁과 내전의 소식, 재난과 재앙의 소식은 난민 문제를 더 확대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기후 문제도 기후 난민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구촌을 말 그대로 이웃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기 위해 마음을 나누고 손을 잡아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자국 국민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의 죽음보다 나의 고뿔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니까요. 그렇다고 이기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조금만 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각국 정상들이 거시적인 안목으로 지구촌의 미래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기업들도 이익 창출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사회로 더 환원할 수 있다며 좋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


어린이 도서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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