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 - 유나 아빠의 애도 일기
김동선 지음 / 두란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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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화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나는 교실 바닥에 오빠 유진이랑 엎드려 있는 유나를 보았습니다. 둘이서 뭐가 그리 재미난지 유쾌한 시간을 보내던 유나와 유진이도 나를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기다리는구나. 좋은 저녁 보내"

"네,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이것이 나의 마지막 인사였고 유나가 들려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수요일 아침 유나가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어제까지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유나 소식은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날 수요일 예배는 나의 순서였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유나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해야 할지 몰랐고, 후에 있을 기도회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인도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중단하고 유나가 있는 병원에 방문했었습니다. 머리를 깎은 채 유나는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습니다. 손을 잡았습니다.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많은 분이 유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이겨내자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유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다가 손으로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나의 친구 동선 목사와 영미 사모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손만 꼭 잡았습니다. 나의 생각과 언어가 이 정도로 결핍 상태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예배 시작하기 직전 유나가 매우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식이 없다는 말, 앞으로 몇 시간이 결정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정적일 것이라는 말에는 무서운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요예배 설교를 하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유나 소식을 메모지로 건네받으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건 아니라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들 몰래 속으로는 "진짜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은 아닙니다. 하나님 노릇 제대로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협박하듯 기도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 제대로 해달라고 간청하고 매달리고 협박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배를 다 마치고 교역자실로 들어갈 때였습니다. 담임 목사님 방에서 고함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확 열어젖힌 목사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유나가 코마에 빠졌단다. 병원에 가자" 목사님은 기억하시지도 못할 말씀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멍한 표정의 동선 목사와 빨갛게 충혈된 눈을 하고도 여전히 침착한 영미 사모를 보았습니다. 무슨 마음일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나올 때 동선 목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전화해"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적이 또 있습니다. 2001년 7월 25일 밤 12시경 마산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과 사망사고라는 말이었습니다. 긴박한 추적 끝에 큰 형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곤히 주무시던 부모님을 깨웠습니다.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다가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큰 형님이 죽었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잘못 들으셨다는 것인지 연신 귀를 후비셨고, 나의 어머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연신 되물으셨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을 나는 두 번이나 뱉었습니다. 한 번은 나의 부모님에게 또 한 번은 나의 친구 동선이에게.

동선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날 새벽 전화가 울렸습니다. 전화기 액정에 김동선 목사님이라는 발신자 이름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목사님, 유나가... 우리 유나가..." 동선 목사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동선이가 차마 말을 하기 전에 말을 끊어야 했습니다. "알겠어. 지금 갈게"


동선 목사가 애도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습니다. 애도 일기가 하나 둘 쌓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토해내야 숨이라도 쉴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습니다. 글이 제법 쌓였을 때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유나 애도 일기 책으로 내보면 어때?" 이미 그럴 계획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우여곡절 끝에 애도 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입니다.


책을 읽으며 지나간 시간이 다시 떠올라 눈물을 쏟았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 마음을 조금씩 맛보며 쓴 눈물을 쏟았습니다. 딸을 먼저 떠나보낸 아빠의 마음을 훔쳐보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유나를 보낸 지 일 년 되는 날 동선 목사네 집에서 유나를 기억하며 예배드린 기억도 돋아 올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던 그때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끔 동선 목사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실은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싶고 식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아들 유건이가 유나와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유건이를 보면 유나가 생각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의 딸 유은이를 보면서 유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은 함께 식사 자리조차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인생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기억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작업은 고통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눈으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마주하기 싫은 기억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안한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라는 책이 태어났습니다. 수만 번을 되뇌며 곱씹은 생각을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담담하지만 섬세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더욱 그랬을 테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오늘을 더 소중하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아들을 앞세우신 하나님께로 나의 마음과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눈물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 결국 이 눈물을 씻어주실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실을 경험합니다. 저마다의 무게로 아픔으로 고통으로 상실을 경험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순간을 만나면 외면합니다. 모른 척합니다. 피합니다. 어떤 이는 절망합니다. 더 이상 삶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생채기를 내며 무너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상실의 고통과 슬픔을 직면하면서도 상실이 가져다주는 아픔과 고통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허우적거리지 않습니다. 분명 늪에 빠져들었는데 기어이 그 늪에서 빠져나옵니다. 그 사람은 상처가 무엇인지,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할 뿐 아니라, 상실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울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한 것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니다.

무엇이 이와 같이 놀라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김동선 목사는 그 대답을 사랑에서 찾았습니다. 참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그 대답을 찾았습니다. 김동선 목사의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는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김동선 목사의 책 [사랑이 다시 살게 한다]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책입니다.

삶이 무기력하다 느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의 고통에 직면한 사람,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람,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배워야 할 사람,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주변 사람을 바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랑하길 원하는 사람,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붙들고 일어나 살아가기 원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 사랑하는 유나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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