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크눌프짜식..

그에게는 이렇다 할 전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구걸을 한 일도 없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마치 귀여운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기분으로 그를 대해 주었다. 고양이처럼 하는 일 없이 그저 살아가는 가운데 아무 걱정 없이 점잖게 신사의 몸짓을 하고 무위도식하는 생활이었지만, 누구 한 사람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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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역사를 기억하라 - 저항과 혁명의 포스터
조시 맥피 엮음, 리베카 솔닛 서문, 원영수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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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포스터에 관심이 많은지라 옛날에 실제로 쓰였던 선동 포스터들을 모아둔 책인줄 알고 읽었는데, 그냥 과거의 혁명들에 영감을 받아 현대의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포스터들을 모아둔 책이다.. 서문을 보니 2010년도에 쓰여졌는데, 원래 10년 쯤 전의 창작물이 가장 촌스러워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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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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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첫 고구마와 독서 중

여린 순간들에 깊히 스며들어 나를 성장시키고는, 그 역할을 다했다는 듯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원하길 바라는 것들은 왜 영원하지 않는지. 미숙했던 내 모습들은 돌이켜 보는 것 조차 쉽지 않아서, 고통스러워서, 그냥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벅차서 눈 감아 덮어놓은 순간들을 펼쳐볼 수 있을 때, 다시금 껴안아 줄 수 있을 때, 그때서야 우리는 진짜 그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전자책 리더기를 산 후로 국내 작가들의 단편집들을 많이 읽는다.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 좋아 잠깐씩 시간이 날 때에 단편들을 읽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거의 읽지 않았던 터라 선호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은 작가들을 많이 만나 일상이 조금 풍요로워졌다.

<내게 무해한 사람>도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서 읽게 된 책이었다. 국내 작가들에 많은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쇼코의 미소>의 최은영 작가는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이 있어서. 딱 그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아주 가볍기 시작했는데, 나에게도 지나쳤던 ‘어리고 여린’ 순간들을 복기하게 만드는 바람에 문장들을 한참을 쓸어내리며 읽게 만들어서, 생각보단 가볍게 읽을 수 없어 예상보다 한참을 더 오래 붙잡고 있었다.

우리를 살아내게 만든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몰랐는지, 영원할 줄 알았는지..
특히 <모래로 만든 집>과 마지막 <아디치에서> 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의 키티일기장을 훔쳐 읽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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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의 시집을 읽으며 간신히 버티던 스물셋의 가을 같은 건 어린 날의 유약한 감상이었다고 과거의 나를 평하게 되리라는것도 몰랐다.

피치 못할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의 모순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 될 테니. 그 시간들을 거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판을 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없을 테니까.

..오랜 시간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미주 자신은 뱉지 못한 자기 말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아마 미주는 자신을 안타까이 보는 무당의 그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더이상 웃음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매일의 단순한 일상들은 잡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 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텐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 널브러진 비닐봉지 같은 존재였다고, 바람이 불면 허공으로 날아갔다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네 걸려버리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고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편이 쉬웠다. 가볍고 한심한 사람처럼 보이는 정도가 가장 좋았다.

랄도, 왜 여기있어?
나는 양쪽 주먹을 움켜쥐고 뻣뻣하게 누워 대답했다.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으니까요, 엄마.

한심하게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라도 살기까지 얼마나 힘을 내야 했는지, 마침내 배가 고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밖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침묵이 내게는, 그녀의 고통과 무관한 내게는 더 합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어서.

삶의 희미함과 대조되는 죽음의 분명함을. 삶은 단 한순간의 미래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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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명이 필요했어요. 단 한 명. 내 편을 들어줄 사람. 때리지 말라고 말해줄 사람. 그런데 모두 다 구경만 하는 거죠. 남자 어른의 일이니까 끼어들 수 없단 듯이."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의 마음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히 서서 이경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이야, 불러도 듣지 못한 채로, 이경이 부순 세계의 파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만화 속 인물들은 커다란 눈에 별빛을 담았고, 저속함과 남루함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아름다운 세계에 속해 있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네가 뭘 알아,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그때의 나는 화가 났을까 슬펐을까. 아마 외로웠던 것 같다. 모래의 말은 맞았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자아를 부수고 다른 사람을 껴안을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그 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간 다시 펴 볼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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