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은 어떤지 알 바 없지만 난 이런 뻬빠 하나 쓰는데 10분을 더 들이지 않는다.
다시 읽어보고 앞뒤가 맞네 안맞네 해서, 논리가 있네 없네 해서,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해서, 재미가 있네 없네 해서
뜯어 고치지 않는다.
맞춤법, 띄어쓰기 이런거 알바 아니다.
어떤걸 써 볼까 하고 미리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키면 내키는 대로 다다다다다다다다 일필휘지로 두둘긴다.
이러다 보면 내용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횡설수설에다, 훼괴한 주장에다, 표절에다, 둘쭉 날쭉 감정 기복에다, 이랬다 저랬다가 난무하게 된다.
이 걸 보고 먼가 좀 특이한 인간이 아닌가 관심가지시는 '분'들이 종종 있으나 이건 정신 분열적 양상에 다름 아니다.
난 종종 유체분리는 아니고..체체분리? 인체 컴포넌트 분리를 경험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생각과 행동, 머리와 기타 수족이 따로 논다.
난 입이 혼자 청산유수를 쏟아 내는 것을 구경한다. 그 동안 머리는 딴 나라에 가 있다.
난 손가락이 혼자,,는 아니구나, 단체로 키보드를 누비며 먼가 뻬빠랍시고 찍어 내는 것을 구경한다. 역시 그동안 머리는 딴 나라에 가 있다.
난 입이나 손이 각자 독립적인 프로세서를 갖추고, 메모리도, 단독 작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머리가 한마디 한마디 한문장 한문장..을 출력하라고 입이나 손에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개념의 코드만을 전달하면 실제 구현은 입이나 손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입만 살아 있다 하지 읺았던가.
요즘엔 손만 살아 있다 라고 개정판을 내야 할 것이다.
뻬빠 (자기 (너무나 당연하게도) 블로그에 쓰는 잡글 ) 라면 내 넋두리다. 남도 보라고 하긴 하지만 절대 남을 위한건 아니다.
문제 중년이 그러길 관음증이 기술 혁신의 원동력이라 했지만 나르시즘도 만만치 않다.
남이 봐 주는 것도 다 나를 위한 것이다.
소통, 세상엔 로또 맞는 사람도, 벼락 맞는 사람도, 소통하는 사람도 있다.
소통, 내 주장에 동조하면 소통된거고 아니면 소 귀에 경 읽기다. 사실은 경 들은 소가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은하..히치하이커 표절이다. 거기선 쥐새끼였지 아마)
소통, 이건 기적이다. 상대 머리도 내 머리랑 똑같이 작동할 거라고 가정,단정,확정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기대 할 수 있는가?
항상 가지고 있는 의문이, 내가 파란색이라고 보는 것이 남들 에게도 똑 같이 파란색인가? 혹 그들은 내가 빨간색이라고 하는 것을 파란색이라고 칭하지는 않는가. 어쨌거나 색상은 구분되니 그렇다고 단정하는 건 아닌가?
가장 확실한건, 절대 확실한거 말구, 나 자신이다.
남이 어떻게 내 뻬빠를 보든, 남이 어떤 생각을 하든, 남이 얼마나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나랑 먼 상관?
자기 일기를 자기 집 대문앞에 걸어 놓지는 않는다.
자기 일기를 남의 집 대문 앞에는 걸어 놓을 수가 있다. 절대 내가 쓴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알몸으로 자기 집 앞에서 어슬렁 거리지는 않는다.
자기가 누구인지 절대 분간 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기술적으로는 환상이다, 누드촌은 그리 먼곳에 있지 않다.
자신을 위해서 쓰자.
자신을 즐기기 위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