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도다 세이지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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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이니까 , 간단히 말하면 만화다. 만화니까 쉽게 일을 수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카스테라처럼 우걱우걱이면서 삼키지 않기를 바란다. 목이 막혀 간절하게 물을 찾는 마음으로 눈물 흘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긴 호흡의 만화가 아니어서 단절되어 버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뒺집어 생각하면 짧은 시간 , 적은 공간 안에서 촌철살인으로 - 좀 낡은 표현이ㅏ. - 해머를 휘두른다. 머리에 둔기를 맞으면 그 울림은 한 순간에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다.

  세포 하나 하나가 모여 육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도다 선생의 만화도 편린들이 모여 전체를 관통한다. 책의 큰 제목이 말하듯이 '삶'이라는 주제로 이어져 있다.

  도다 씨의 이야기는 최소 30대 이상의 인간들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20대를 비하하거나 무시하자는 표현은 아니다. - 최소한 계란 한 판은 되어야 전달하려는 것을 80 퍼센트 정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감동 울림의 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내게 울림이 있었던 것은 <규칙 -Rule>이다. 어린 아이가 텔레비전에서 농촌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먹느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고 오빠와 이 문제로 다투지만 소를 먹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빠의 승리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가족 외식에서 모두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소녀는 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멘트가 나온다.

  '우리는 다른 살아 있는 걸 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울림의 강도는 천양지차다. <규칙> 외에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 늪에 빠져 죽을 때

  "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를 유언처럼 남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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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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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티비 프로그램 중에 어린이들이 나와서 낱말을 설명하면 패널들이 그것을 맞추는 프로그램이있었다. 그 때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괴리감 혹은 단절감이 주는 웃으밍 아니었을까 한다. 어린이들의 생각에서 설명하는 단어와 어른들이 생각하는 단어의 설명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들 만의 세계가 있구나 생각했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고등어 통조림이 지나가네요' 사키 엄마가 맘대로 부른 노래다. 사키엄마는 가끔씩 사키 할아버지가 불러준 어렸을 적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키 엄마는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을 자신의 스타일로 불러내는데 아마도 사키도 어른이 되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 딸에게 똑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무의식의 저편에서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키는 엄마랑 단 둘이 사는 편모가정이다. 엄마는 동화작가인데 매일밤 사키를 재우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10개의 짤막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사오정>을 읽으면서 <이상한나라 앨리스>를 생각했다.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린이들의 독특한 사고 쳬계를 보여주는 글은 아마도  <강물꼭지>가 아닐까? 홍수를 막기위해 수도 꼭지를 틀어두고 비를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하는 것에서 어린이만의 독특한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될 부분이다. 사키엄마의 못말리는 어린이다움을 엿볼 수 있는 < 연락장> ,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 고양이 이야기>와 배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매발톱할머니>이야기는 강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책을 읽는 즐거움은 잔잔함과 동시에 따스한 삽화를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오나리 유코가 그린 아름다운 파스텔톤으로 채워진 삽화들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삽화는 글이 가지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구가 된다. 글이 나타내고자 했던 것 보다 더 깊은 곳까지 우리를 인도한다. 지금과 우리들의 어린이 시절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타임머신이다. 우리의 잊혀진 기억 어린시절로 역행해서 돌아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자 어린시절로 가실 준비되셨나요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호는 곧 떠납니다. 얼른 자리에 앉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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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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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투니버스를 시청하는데 명탐정 코난을 하루 종일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챙겨보다보니 문든 유명한 탐정이 꼭 사건이 터진 후에야 그 범인을 밝힌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탐정의 존재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자의적이지 않은 경로를 통했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분명히 어디서 읽어서 앍고 있는 것 같은데 어제는 찾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우연을 가장해서 이렇게 내 앞에 다가온다.

 " 어떤 사건이든 해결하는 명탐정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 뭔가?"

 "내가 있어서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이 구절이 새겨진 책은 이사카 코타로의 <오듀본의 기도>다. 오기시마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 오기시마 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토, 직장에서 잘리고 편의점을 털다가 실패하고 시로야마에게 연행되어 가던 이토는 다리 도망치게 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기시마'섬이다. 에도 시대 이래 사람이 살긴 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단절은 집단성이 아닌 개별성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토에게 섬을 안내하는 골든 리트리버를 닮은 안내인 '하비노' 무엇이든 반대로 말하는 화가 '소노야마' 섬의 법률로 살인이 허락된 남자 '사쿠라' 새와 바람과의 교류를 통해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토끼' 등 다양한 개별성들이 존재하는 섬이다.

 

  <이토 전설의 주인공이 되다>

 

  이토가 섬에 들어올 것은 허수아비 유고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유고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유고는 미래를 알고 있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범인을 말해준다. 그러나 다른 일에 대해서는 미래를 말해주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유고의 일만은 알려주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섬에 내려오던 전설 '섬에 결여 된 것을 두고 갈 사람'이 이토이기 때문이었다.

   이토가 말을 하고 미래를 알고 있는 허수아비 '유고'와 새벽에 이야기하고 온 다음 날 , 유고는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사지를 구성하던 나무는 부서졌고 유독 머리만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고'를 죽인 범인은 알 수 없다. 미궁으로 빠진다.

 

  <유고의 죽음 우연이 만나 필연이 되다 >

 

  유고를 만든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조합하고 결론내리는 것 이다. 유고는 섬에서 일어나는 일 뿐만 아니라 섬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유고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새와 바람이다. 유고는 한 자리에서 150년을 보냈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150년간.......

  사건의 종반부로 가면서 유고는 죽기 전에 섬 사람들에게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을 하나씩 부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일은 순서가 있었고 순서는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사건을 만들었다.

  '인생이란 건 말이지 .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매 한가지야. 너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어도 어느 틈엔가 저 앞으로 나가 있지 그 위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흘러가는 거야 도착하는 곳은 이미 정해져 있지 제 멋대로 그곳으로 향해 간다 이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기가 있는장소만큼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고 생각해"

  불가항력이다.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미 그 일이 시작된 순간부터 결과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발버둥쳐봐도 약간의 변주만이 있을 뿐 흘러간다는 것이다. 유고는 죽음을 당하기 전 사람들에게 무엇을 부탁했을까? 그 결과는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에게 한 가지 행동들은 하나의 변주다. 그러나 그 변주는 정해진 결과로 가는 필연이 되었다.

 

<유고의 섬을 나오면서 >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모든 일든은 우연을 가장하여 필연성을 이루는 것에 불과하며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이미 모든 일은 정해져 있으며 그 결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닫힌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열린 것은 우연성의 다양한 변주일 뿐이다. 과정이 똑바로 간냐 돌아가느냐의 차이일 뿐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비관론적 세계관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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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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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인가 낮선 외국인의 얼굴이 외딴 곳 한국 땅에서 티셔츠에 찍혀서 불티나게 팔렸던 적이 있다. 긴 흑발에 콧수염 베레모와 시가를 문 모습으로 이미지화 되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르네스토였다. 흔히 세계인들이 체 게바라라고 부르는 쿠바 혁명을 이야기할 때 항상 이야기되는 인물 영원한 혁명가였다. 유행처럼 번지던 체의 유령이 사라지고나서야 그의 자서전이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을 읽었다.

 

  체 게바라 (이하 체씨 아저씨)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단다. 아르헨티나라고 축구 잘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방 한 쪽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찾아봤다. 의도적으로 가려둔 아메리카 대륙 아래 라틴 아메리카에 속한 나라여서 가려둔 것을 잠시 치웠다. 멕시코 쿠바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페루까지 체씨 아저씨 책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체씨 아저씨의 기록에서 등장한 나라들이 모여있다. 라틴아메리카 연합을 꿈꾸던 체씨 아저씨의 대륙이었다.

 

  26살에 과테말라에서 무장봉기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28세에 카스트로와 쿠바 독립을 위한 무장 봉기에 참가해서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는 그 곳에 머물렀다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혁명군의 총 사령관이라는 직책으로 쿠바 역사의 한 줄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체씨 아저씨는 다시 총을 들었다. 볼리비아로 볼리비아의 혁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볼리비아 밀림 속에서 서른 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침으므로서 살아낸 시간 보다 오랜 시간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자서전을 읽어보면 , 사실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미흡하다. 연대기적 서술도 아니고 편지와 여행기 일기 등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들에서 그 때의 상황을 유추해 낼 수 는 없지만 다른 것들을 알 수는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 이 글을 읽으면서 체씨 아저씨의 시선은 과장되거나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에 놀란다. 지극히 사실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사실을 기반으로 그 때의 모습이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한 시인이라고 말하는 체씨 아저씨의 문학적 글쓰기의 성과를 찾아볼 수 있다. 체씨 아저씨는 스스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언저리에 있다. 이제 한 발만 더 밟으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수가 될 것 같다.

 

  음 이 책의 축복은 문학가 체씨 아저씨를 만나는 것 외에도 체씨 아저씨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사실 남자가 봐도 엄청난 미남자다. 이렇게 말해볼까? 어린 소년 체는 꽃미남이자 미소년이었고 장년의 체씨 아저씨는 카리스마 가득한 멋진 아저씨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정말 멋진 장형 (장동건) 다음으로 멋진 사람이다. 마치 사랑고백 같다. 나는 체를 보면서 갑자기 체코 프라하를 사랑하고 프라하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던 카프카가 생각났다. 카프카도 정말 꽃미남이다. 그러고 보니 카프카와 체씨 아저씨는 절명했구나 미남자 박명이구나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겪는가에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의대를 마치고 의사의 길을 가려던 청년 체씨는 여행을 하면서 현실을 보고 스스로를 각성시키고 스스로 투사가 되었다. 나는 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친구를 생각했다. 내 친구는 학생 운동을 하는 친구였다. 그렇다고 겉멋만 들어서 투사입네 뭐내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학생운동가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 친구의 운동은 참 좋았다. 구호만이 가득한 운동이 아닌 생활에 베인 운동가였다. 낮은 목소리였으나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생활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나의 친구가 나는 지금 그립다. 나에게 사실 체씨 아저씨는 체씨 아저씨가 아니라 내 친구 섭군이다. 이렇게 체씨 아저씨는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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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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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다 이라의 이야기는 <이케부크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를 통해서 처음 들어 알고 있는 정도이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묘사로 내가 아는 지인은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다. 붉은 바탕에 한 남자의 흉상이 그려져 있다. 그는 어딘가 슬픈 눈을 가졌다. 별이 주룩 주룩 흘러 내릴 것 같다.

 

1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년도 성인도 아닌 그 중간을 통과한다.

 

 스무살  청소년이 시작되고 성년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에 료가 있었다. 료는 대학생이지만 대학에는 나가지 않고 그저 bar에서 일을 하는 학생이다. 하루를 사는 것에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고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항상 어머니의 죽음에 기억은 고정되어 있다. 꿈을 구며 가지말라고 하는 말을 꼭 해야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료가 가진 유년기의 단 하나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한 순간에 바뀐다. 무료한 스무살의 한 때를 살던 료에게 호스트 친구 신야가 소개한 미도 시즈카씨를 만나면서 무료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아주 작은 균열은 거대한 붕괴를 예비하기 마련인 것을 료를 몰랐다.

 

2 나는 남창 료스케다. 나는 섹스를 한다.

 

  일단 렌트를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rent 빌려준다는 의미라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원제는 창년[娼年]이라고 했다. 두가지로 이야기의 얼거리는 다 나왔다. 남자를 빌려드립니다 호스트이야기이고 , 남창에 관한 기록이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에서는 호스트와 남창은 개념이 좀 다른 모양이다.)

 

  료는 미도 시즈카의 시험을 사쿠라의 도움으로 겨우 통과하고 그녀의 'the club Passion에서 일하게 된다. 남자들을 여자들의 지명에 따라 빌려주는 곳이다. 여성들은 쇼핑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다양한 여자들의 욕망이 나타난다. '쓰리썸'을 즐기는 여자도 있고  상황극을 즐기는 여자와 남자도 있고, 섹스가 아닌 방뇨를 통해 절정을 느끼는 여자도 있다. 다양한 여성들의 욕망이 나타난다. 료에게 여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단순히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대화하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것이다. 그럼 이 소설이 19금 소설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의 욕망을 이야기하려고 섹스라는 상황을 빌어왔다. 김훈이 삶의 본질이 악과 폭력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장'이라는 한정된 상황을 차용하는 것처럼

 

3 이시다 이라 , 욕망과 다양성을 말하다.



  나는 이시다 이라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이번 작품을 읽음녀서 묘사를 제법 하는군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묘사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역겨움을 비릿함을 느낄찌도 모른다.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소설의 한 상황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시다 이라는 료와 다양한 여성과의 섹스 장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이 사실이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나 유교적 관념에 찌들린 분들이나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시는 분은 절대 책을 보지 말기를 권하다. 부끄러움이 많은 분들은 심장을 다른 곳에 맡겨두길 권고한다. 그만큼 다양한 여성상들이 나타난다. 흔히 우리가 변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여성들이 료를 이용하는 목적은 단순하다. 열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료를 쓰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을 읽으면서 음 이럴 수도 있겠구나 열망과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료는 여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이란 단어에 직면하게 된다. 다양한 체위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절정 혹은 쾌감을 느낀다.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료가 넘버원인 이유이며 사람들이 성인들이 가져야할 가장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한다. 자신과 다르다고 정해진 틀에 맞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보거나 질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4 스무살의 열병 료, 료 같은 수 많은 인생들에게

 

  섹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그것도 남성이 주가 되어 여성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가 되어 남성을 사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만큼 닫혀있다고 이야기해도 좋다. 뭐 그렇다고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충격이 있을 소설이다. 하지만 섹스는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호객행위에 속지 말고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본질을 꿰뚤어 봤으면 좋은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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