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사다 이라의 이야기는 <이케부크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를 통해서 처음 들어 알고 있는 정도이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묘사로 내가 아는 지인은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다. 붉은 바탕에 한 남자의 흉상이 그려져 있다. 그는 어딘가 슬픈 눈을 가졌다. 별이 주룩 주룩 흘러 내릴 것 같다.

 

1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년도 성인도 아닌 그 중간을 통과한다.

 

 스무살  청소년이 시작되고 성년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에 료가 있었다. 료는 대학생이지만 대학에는 나가지 않고 그저 bar에서 일을 하는 학생이다. 하루를 사는 것에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고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항상 어머니의 죽음에 기억은 고정되어 있다. 꿈을 구며 가지말라고 하는 말을 꼭 해야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료가 가진 유년기의 단 하나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한 순간에 바뀐다. 무료한 스무살의 한 때를 살던 료에게 호스트 친구 신야가 소개한 미도 시즈카씨를 만나면서 무료한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아주 작은 균열은 거대한 붕괴를 예비하기 마련인 것을 료를 몰랐다.

 

2 나는 남창 료스케다. 나는 섹스를 한다.

 

  일단 렌트를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rent 빌려준다는 의미라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원제는 창년[娼年]이라고 했다. 두가지로 이야기의 얼거리는 다 나왔다. 남자를 빌려드립니다 호스트이야기이고 , 남창에 관한 기록이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에서는 호스트와 남창은 개념이 좀 다른 모양이다.)

 

  료는 미도 시즈카의 시험을 사쿠라의 도움으로 겨우 통과하고 그녀의 'the club Passion에서 일하게 된다. 남자들을 여자들의 지명에 따라 빌려주는 곳이다. 여성들은 쇼핑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다양한 여자들의 욕망이 나타난다. '쓰리썸'을 즐기는 여자도 있고  상황극을 즐기는 여자와 남자도 있고, 섹스가 아닌 방뇨를 통해 절정을 느끼는 여자도 있다. 다양한 여성들의 욕망이 나타난다. 료에게 여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단순히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대화하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것이다. 그럼 이 소설이 19금 소설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의 욕망을 이야기하려고 섹스라는 상황을 빌어왔다. 김훈이 삶의 본질이 악과 폭력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전장'이라는 한정된 상황을 차용하는 것처럼

 

3 이시다 이라 , 욕망과 다양성을 말하다.



  나는 이시다 이라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이번 작품을 읽음녀서 묘사를 제법 하는군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묘사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역겨움을 비릿함을 느낄찌도 모른다.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소설의 한 상황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시다 이라는 료와 다양한 여성과의 섹스 장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이 사실이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나 유교적 관념에 찌들린 분들이나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시는 분은 절대 책을 보지 말기를 권하다. 부끄러움이 많은 분들은 심장을 다른 곳에 맡겨두길 권고한다. 그만큼 다양한 여성상들이 나타난다. 흔히 우리가 변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여성들이 료를 이용하는 목적은 단순하다. 열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료를 쓰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을 읽으면서 음 이럴 수도 있겠구나 열망과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료는 여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이란 단어에 직면하게 된다. 다양한 체위와 상황에서 사람들은 절정 혹은 쾌감을 느낀다.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료가 넘버원인 이유이며 사람들이 성인들이 가져야할 가장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한다. 자신과 다르다고 정해진 틀에 맞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보거나 질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4 스무살의 열병 료, 료 같은 수 많은 인생들에게

 

  섹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그것도 남성이 주가 되어 여성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가 되어 남성을 사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만큼 닫혀있다고 이야기해도 좋다. 뭐 그렇다고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충격이 있을 소설이다. 하지만 섹스는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호객행위에 속지 말고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본질을 꿰뚤어 봤으면 좋은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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