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꿈 외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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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들, 분신>을 읽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요 <백야 외>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접 서점가로 갔었습니다. <백야 외>가 비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 아저씨의 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책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도끼의 글들은 말입니다. 처음에는 느려요 이것 저것 돌아 돌아 이야기하다가 중반이 넘으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이름의 그 길이에만 익숙해진다면 천천히 발을 떼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저씨의 꿈 외 > 에는 중편 소설 분량의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첫 작품은 <네또츠카 네즈바노바> - 이하 네또츠카 - 이고 두 번 째 작품이 표제인 <아저씨의 꿈>입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네또츠카>는 미완의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연구된 자료가 책 말미에 붙어 있어 알 수 있었지요

 

  <네또츠카>는 '안나 (네또츠카는 애칭임)' 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자신의 살아온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인데 네또츠카와 인연이 닿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져 나오는데 사실 각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독립된 단편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단절되어 있습니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해야 좋을 구성입니다.

 

  첫 부분에는 네또츠카의 계부인 예비모프의 이야기입니다. 천재적 예술가라고 말하는 예비모프는 술주정뱅이에다가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네또츠카는 이런 예비모프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넘어서서 이성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엘렉트라 컴플랙스의 전형적인 유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 아버지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넘어서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예비모프의 마지막 행동을 볼 때 김동인인가요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광염 소나타>의 변형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두 번 째 부분에서는 양육인이 된 공작의 딸 '까쨔'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계급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까쨔의 경우에는 더 하겠지요. 네또츠카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만 까쨔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는 방법으로 까쨔와 네또츠카는 우정을 확인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 우정이라는 말보다는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발전되어 보여진다. 그러나 갑자기 까쨔가 공작을 따라 동생에게 가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세 번 째 부분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와 네또츠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알렉산드라의 남편 뾰뜨르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미지의 인물 s.o와의 삼각관게를 서재의 책에서 발견하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너무나도 자상한 표정의 뾰뜨르는 사실 알렉산드라의 비밀을 잡아 그 위에 군림하는 남자였다 그것을 네또츠카가 폭로하려고 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미완성의 글이다. 전체적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계속 이야기가 씌여졌다면 더욱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장대한 한 인간의 슬픈 연대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씌여지지 않았으므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도 느껴야 하는 천형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아저씨의 꿈>은 K공작을 두고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이후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의 딸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이후 지나)를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결혼 시키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모즈끌랴꼬프의 청혼을 탐탁지 않았던 지나가 어머니의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일이 벌어지고 속임을 참을 수 없었던 지나의 고백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모즈끌랴꼬프는 공작을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청혼을 막기 위해 꿈이라고 우기라고 가르쳐 준다. 여기서 표제인 <아저씨의 꿈>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 이야기는 음모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심각함보다는 유쾌함과 희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보면 좋겠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과 그 이름들이 출현하기 때문에 메모하면서 읽으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다.

 

  도끼는 많은 문학가에게 영감을 그리고 많은 비평가에게서 논란을 끌어낸 작가라고 한다. 읽으면서 이제껏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거부하고 좀 더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하고 변했기 때문에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현대에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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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하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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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였더라 서울서 작가살이를 - 극작가를 없으로 삼아 밥벌이를 한다는 - 하는 사하라의 여우가 내게 책을 추천해 준 적이 있는데 - 그 때까지만 해도 사하라의 여우가 나 보다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살았다-내게는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방각본 살인사건>을 추천했다. 가는 귀가 먹은 나는 방각본을 잘못들어 반각본이라고 잘못 들어서 책방에서 한참이나 찾아 헤메다가 다시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겨우 찾아 볼 수 있었던 책이 바로 <방각본 살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김 작가와 만났다. 사실 김 작가를 만났다는 소리는 맞는 말이 아니다. 사실 나는 역사의 한 부분에서 백탑파의 일원들과 교우했다고 말해야 옳다.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을 지나서 <열하 광인>까지 김 작가는 긴 호흡으로 달려왔다. 물리적 시간으로 6년이 걸린 것 같다. 한 편에 평균 2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김작가는 자기를 여기까지 이르게 한 것이 한 권의 금서라고 했다. 금서의 제목은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선생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흔히들 백탑파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백탑파의 언저리를 거닐었던 화광 -꽃 미치광이라고 한다. 나는 화광이란 한자보다 이 말이 더 좋다 - 김진과 의금부 도사 청전 이명방 - 오해가 없으시길 실존 인물이 아니다. 허구의 인물이다. 김군 같은 경우는 박지원의 김군에게라는 편지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 같다 -이 백탑파 이야기 그 중심에 있다. 한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한 사람은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매설가가 되어 글로 남겼다. 그 저작들이 <방각본 살인 사건>이고 <열녀문 살인 사건>이며 <열하광인>이다. 그렇다면 매설가 이명방은 누구이며 김작가는 누구일까? 혹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 매설가 모독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 사람이 아닐까? 매설가는 스스로 매설을 모독하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남지 않았던가?

 

  <열하일기>는 소설 속에서 <열하>로 재탄생되었다. 사실 재탄생되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대로 인용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가장 흔히 잘 알고 있는 구절이 등장한다. '도강록'이 그것이다. 열하 일기의 처음을 여는 장이 도강록이지 않은가?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일야구도하기'이겠지만 말이다.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휘돌아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물은 어디로 흐르든 낮은 곳으로 흐르고 결국은 넓은 바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닌가. 자 다시 흘러가 보자 모든 것은 열하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열하에서 마치게 될 것이다.

 

  열하를 탐독하는 자들이 죽어 나간다. 왜 열하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혹은 거칠게 말하자면 문체가 별났기 때문이다. 별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 , 개성적 문체라는 소리인데 고문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다. 고문을 숭상한다는 것은 결국 보수적 언동으로 기득권을 공고하게 지켜나가는 것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개성적 문체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진보적 세력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교종과 선종의 교체기처럼 말이다.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살인 사건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통해서 거대한 이야기를 작은 틀 안에 가두어 펼친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열하일기>가 뭐 길래 김작가에게 글을 만들도록 했던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열하일기에 대해서 대충 설명해보면 이렇다.조선에서 청으로 사신을 보내서 청황제를 만나고 오는 것이 있는데 이 때 기록을 보통 '연행록'이라고 하는데 연암 박지원은 연행록이 아니라 '열하일기'라고 썼다. 이것부터 파격이다. 왜 열하일기라고 썼을까. 간단한 이유인데 열하까지 갔다왔으니까 연행록이 아니라 열하일기라고 썼다. 보통 사람들이 지키는 문체의 모법을 겉표지부터 껄껄거리면서 웃어념겨버린 것이다. 연암선생은 스스로를 껄껄선생이라고 했다 - 사실 보리 출판사에서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라는 제명으로 책이 출간되었기에 한 번 인용해 본 것이다. 연암 선생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또한 그 안에 있는 내용이며 문체가 고문의 비유나 적절한 줄임 , 포장된 감정의 절제를 벗어던지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쓰고 우리식의 표현을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인습에 반기를 들어 순정한 조선의 문체를 만들어 냈다고 자부하는 것이 바로 <열하일기>다. 고로 정조에게 신임을 얻었으나 문체반정으로 그 정점에 있는 자를 지목하니 바로 <열하일기>다 과장되게 말하면 정조 시대의 문체 반정은 <열하일기> 때문이다.  과언인가?

 

  <열하광인>에서 청전 이명방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소설의 구조와 스토리보다 더 눈에 밟힌다. 뭐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겠지만 유랑인이 쓰는 글의 맛이 바로 이것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 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명방에게 초정 선생이 매설을 써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매설가.... 말씀이신가요 ? 아직저는 머었습니다. 글자도 조잡하고 문장도 거칩니다. 삶에 대한 통찰도 인간에 대한 연민도 부족합니다."

 

" 청전 , 자넬 잘 살피시게 솜씨가 부족하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 자네에게 부족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습작할 시간일세 세책방에 한 번 나가 보게나. 갓 스물을 넘긴 매설가들이 지은 제법 그럴싸한 매설들이 나와 있지 않은가 자넨 그들보다 더 많은 매설을 읽었고 더 많은 인생 경험을 쌓았으이 그런데도 자네 손이 무딘 이유는 단 하나 서안 앞에 차분히 앉을 여유가 부족해서라네 흉악법을 쫓느라 한두 달을훌쩍흘려보내는 일이 잦으나 , 어찌 이야기들이 자네 손끝에 고이겠는가 이번이 기회일세 매설가로 끝장을 볼 생각이라면 하루라도 서두르는 편이 낫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걸세., 자네를위해 객사를 비워 둠세 고요하고 깊은 백제의 숨결 어린 강가에서 걸작을 한 편 완성해보게나"

 

--열하광인 218-219

 

  문장을 읽는다는 자이기에 문장이나 매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한 번 눈이 가게 마련인가 보다. 문장과 글에 대해서 유랑인은 차마 쉬이 넘기지 못하겠다. 글을 , 이런 잡스러운 글을 한 문장 한 편을 만드는 것도 많은 시간과 생각이 들고 진력이 쏟기는데 긴 글 한 편 쓰는데 얼마나 큰 진력을 쏟아야하겠는가 앉은 자리에서 방석 열 개쯤 뚫어지게 글을 쓴다면 - 이 이야기는 한승원 노사(老師)께서 하신 말이다. 따끈따끈한 말이다 이틀이 되었나 부산에서 들은 말이다. - 이명방도 좋은 글쟁이가 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한승원 노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보자 취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더랬다. 미치지 않으면 이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더랬다. 방석 열 개 방석 열개면 되겠냐. 그럼 나는 100여개의 방서과 의자를 부수거나 100여개의 키보드 판에서 부호들을 지워내면 나도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래나? 글다운 글을 쓰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부끄러운 글은 안 쓰기만 바랄 뿐이다.

 

  글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글을 써 본 자들이라면 자기가 쓰고싶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반성문을 써 본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어디보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얼마나 쓰기 싫으셨을까

  청장관의 심정도 정유 형님이나 연암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다만 연암 선생의 권유를 전하기 전에도 그는 자신의 역할을 또렸하게 알았을 따름이다. 그러니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예감하면서도 붓을 들고 스스로 뉘우치는 글을 지었던 것이다. 자송문이 어찌 청장관의 본심일까. 평생 어린아이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않고 살아오신 학처럼 고운 분이다. 그런 분일수록 제 몸에 때가 묻었다고 인정하는 것도 힘겹다. 하나 청장관은 자송문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 길만이 그동안 백탑 서생의 노랙을 헛된 낭비로 돌리지 않는 일이므로! 한데 방금 자송문을 찢었다. 아 이제 그 무거운 책임들을 내려놓으시려는 것인가 족쇄 없이 마지막을 훨훨 보내고 싶으신가?

 

  "잘하셨습니다. 자송문 따윈 잊으십시오"

 

--열하광인 284 -285

 

  느낌이 전해져왔었다. 쓰기 싫은 문장을 써야만 했던 한 인간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장에서 감정을 읽어버리면 너무 힘들어 진다. 문장이란 자고로 문향이 가득하여야하고, 그 행과 행 사이에 숨겨진 많은 말들이 육즙처럼 녹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이야기의 표면을 거닐지 말고 한 번 죽을지언정 두 번 죽냐는 생각 한 번 쯤 하고 깡으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행간에 빠져서 죽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자 다 죽어볼 준비가 되어있는가 임사체험이란 것을 꼭 물리적으로 해야할까 날도 추우니까 말이다 그 죽음의 자리가 <열하>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이름도 좋다 따뜻한 기운이 흐르니 겨울녘에 읽어도 좋겠다. 칼칼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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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
마티 크럼프 지음, 이충호 옮김 / 도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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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을 보면서 음 동물들의 번식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생각하면서 읽었다. 역시 크게 빗나가진 않았다. 번식에 관한 이야기가 1장과 2장에 걸쳐 나온다. 특히 우리가 잘 만나보지 못한 동물들이 주 메뉴로 등장하는데 거미부터 시작해서 해파리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그 다양성 만큼이나 구애의 행동에서부터 교미의 방법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 자기를 희생하면서 교미하는 거미와 사마귀의 종족 번식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본능에 의한 것이니 그들은 행복하겠다. 왜냐 멍청한 수컷은 자기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겼으니까
 

  두번 째 장에서는 사실 동물들의 새끼 돌보기에 대해서 서술해 두었다. 새끼들을 위해서 알을 지키면서 시간은 보내는 황제팽귄 이야기가 가장 인상에 깊은 이야기다. 물론 새끼를 슬그머니 버리는 뻐꾸기도 있지만 이외에 동물들은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돌본다. 나름 고등한 지식을 가졌다는 인간은 너무 발달해서 뻐꾸기에게서 배워싼 버리기도 잘한다. 버리기도 잘하지만 낳아놓고 죽이기도 너무 잘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등하다고 하는 동물들에게 좀 배워야지

 

  세번 째 장에서는 동물들의 먹이에 대해서 말한다. 뭐 피에서 시작해서 똥까지 동물들의 주요한 식사거리이고 영양공급원이다. 이상한 것을 먹는다고 인간은 더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국인은 책상다리 빼고 다 먹는다." 인간도 마찬가지 되겠다. 인간이 먹는 것을 보면 동물들은 기겁을 하 것이 틀림없다. 개별적인 영역에서 타 문화를 비하하지 말라는 것을 배워도 좋을 것이다. 문화는 국지적이므로 각각이 고유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네 번 째 장에서는 변실술과 은신술에 대해서 문어를 대표로해서 탈장을 일삼는 해삼을지나 가시와 냄새로 자신을 지키는 동물들의 처절함을 보여주는데 독도 있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은 생존을 위한 기술임을 잊지 말아야하낟. 약올리지 않으면 살 수 있다. 즉 어디서라도 살아남는 기술을 동물에게 배워야하지 않을까?  

 

  다섯 번 째 장에서는 사랑의 묘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가만히 보면 페로몬을 이야기한다. 페로몬 향수 말이 많았던 시절이 있다. 성 호르몬이라고 양성을 끄는 향수라고 말이다. 화학작용으로 상대방을 부르고 교미하는 종족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좀 더 광범위한 것으로 지어졌으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데 동물들의 생활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니까 좀더 광범위하지만 임펙트가 강한 이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보고 생각해보라고 하지 말자 왜냐하면 내가 그게 되면 출판사에서 작명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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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중국어 첫걸음 (교재 + CD 1장 + 포켓북)
권수전 옮김 / 시사중국어문화원(시사중국어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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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중국어를 배워보겠다고 덤벼든 것은 제 2 외국어로 쓰겠다거나 중국으로 여행을 가겠다거나 취미가 아니다. 그냥 단순한 이유 병원 환자 중에 중국인 아저씨가 있어서 그냥 재미삼아 공부해보려고 시작했는데 책을 받고 나서 며칠 있다가 퇴원해버리셨다.
 

  언어라는 것이 처음 시작은 아무래도 철자 그러니까 고유한 문자를 설명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기 마련인데 중국어는 모두 그러하겠지만 사성을 책 초입에서 깊이 설명하고 있다. 1성 2성 3성 4성 경성이 모여 현란하게 변화하면서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 내고 사멸되기도 한다. 그러니 중요할 수 밖에 그리고 각각의 사성이 교차할 때는 고유의 음색이 아니라 변주가 시작되므로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성에 익숙해지면 중국어 반은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글자에 하나의 병음만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보통 원어를 표기하는 발음표기와 한자 음역이 병기되기 마련인 것이 회화책인데 이책은 한국어 병음이 없다. 오직 한자와 한자 병음만 있다. 그럼 초보자들은 어떻게 하냐고 씨디를 듣거나 엠피쓰리를 들어야 한다. 씨디에는 너의 이름은 뭐니 부터 시작해서 당신은 지금 뭐 하노 까지 상황 설정 회화를 읽어주고 문제 풀이를 위한 듣기 파일들이 들어있고 엠피쓰리 다운 받으면 문법 부분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읽어준다. 자세한 설명은 없다. 원어민 교사가 문장을 읽어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씨디 한 장에 모두 담지 못해서 그런가 두 개를 한 꺼번에 들으려면 컴퓨터가 필요하다. 오디오 파일과 엠피쓰리 파일을 같이 들어야 하니까  조금 귀찮은 면은 있긴하다.

 

이거 시작하고 나서 나는 병원에 갔서 간호사에 니하오하고 인사하고 자이지엔이라고 인사하고 나온다. 왜 간호사님들에게 이러냐고 간호사님 중에 중국어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계신다. 여러분도 즐거운 외국어를 배워보길 바란다. 짜이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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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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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국민 어머니 나(문희)께서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목이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이었다. 나여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코믹한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었고 '열혈남아'에서 불꽃같은 연기를 보여주신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연기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나여사가 출연한 영화니까 반쯤 덮어두고 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의 원작 소설이 출판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덴도 신의 ' 대유괴'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볼 것인가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볼 것인가는 항상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만큼이나 괴로운 선택을 강요하지만 움직이는 사진을 보는 것보다 움직이지 않는 글자들이 모인 글자들의 아름다우 형무소를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니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이 '대유괴'니까 이 글의 전체의 맥은 '유괴'다 유괴를 하는 3인조와 유괴를 당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너무 간단하다. 하지만 약 400페이지의 두께로 심상치 않은 유괴가 일어났다는 냄새가 난다. 유괴단이 이름을 가지기는 쉽지는 않지만 3인조 유괴단은 이름을 부여받는데 언론이 만들어낸 이름 '무지개 동자 유괴단' 이었다. 무지개 동자는 감방에서 만나 뭉쳤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도나미 겐지 , 아키바 마사요시 미야케 헤이타가 그들이다. 각자 돈이 필요해서 뭉쳤다. 그럼 유괴 대상은 기슈 지방의 최고 갑부인 야나가와 집안의 여주인야나가와 도시 여사다. 사실 도시 여사는 겐지를 도와준 적이 있다. 고아인 겐지는 지금껏 가장 장 알고 있는 최고의 부자 도시 여사를 선택해서 유괴하기로 한다. 단지 돈이 많으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사건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야나가와 도시 여사는 무지개 동자 유괴단에게 강하게 저항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잡힌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완벽한 납치가 시작 된 것이다.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무지개 동자 유괴단은 소매치기 도나미 겐지다. 야나가와 도시 여사가 유괴되는 순간 유괴단은 3인조가 아니라 4인조가 된다. 유괴단은 있고 유괴당한 사람은 없는 상황에서 유괴단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완벽한 유괴를 성공해낸다. 그렇다 팀의 리더는 야나가와 도시 여사다. 은신처 제공에서부터 100억 엔 요구 완벽한 100억엔 수령까지 모든 계획을 야나가와 도시 여사가 계획한다.

 

  야낙가와 도시 여사는 스스로 인질이자 유괴범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도시 여사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몸짓이라고 해두어야겠다. 죽고 사라지는 자가 문제가 아니라 남는 자 살아야하는 자가 문제였다. 남은 아들 딸들이 걱정이었다. 유약한 아들 딸들에게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사건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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