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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꿈 외 ㅣ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난한 사람들, 분신>을 읽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요 <백야 외>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직접 서점가로 갔었습니다. <백야 외>가 비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 아저씨의 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 째 책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도끼의 글들은 말입니다. 처음에는 느려요 이것 저것 돌아 돌아 이야기하다가 중반이 넘으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이름의 그 길이에만 익숙해진다면 천천히 발을 떼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저씨의 꿈 외 > 에는 중편 소설 분량의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첫 작품은 <네또츠카 네즈바노바> - 이하 네또츠카 - 이고 두 번 째 작품이 표제인 <아저씨의 꿈>입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네또츠카>는 미완의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은 연구된 자료가 책 말미에 붙어 있어 알 수 있었지요
<네또츠카>는 '안나 (네또츠카는 애칭임)' 라는 아이의 시선에서 자신의 살아온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형식인데 네또츠카와 인연이 닿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져 나오는데 사실 각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독립된 단편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단절되어 있습니다.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해야 좋을 구성입니다.
첫 부분에는 네또츠카의 계부인 예비모프의 이야기입니다. 천재적 예술가라고 말하는 예비모프는 술주정뱅이에다가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네또츠카는 이런 예비모프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넘어서서 이성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엘렉트라 컴플랙스의 전형적인 유형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 아버지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넘어서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예비모프의 마지막 행동을 볼 때 김동인인가요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광염 소나타>의 변형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두 번 째 부분에서는 양육인이 된 공작의 딸 '까쨔'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계급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까쨔의 경우에는 더 하겠지요. 네또츠카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만 까쨔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는 방법으로 까쨔와 네또츠카는 우정을 확인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 우정이라는 말보다는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발전되어 보여진다. 그러나 갑자기 까쨔가 공작을 따라 동생에게 가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세 번 째 부분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와 네또츠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알렉산드라의 남편 뾰뜨르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미지의 인물 s.o와의 삼각관게를 서재의 책에서 발견하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너무나도 자상한 표정의 뾰뜨르는 사실 알렉산드라의 비밀을 잡아 그 위에 군림하는 남자였다 그것을 네또츠카가 폭로하려고 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미완성의 글이다. 전체적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계속 이야기가 씌여졌다면 더욱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장대한 한 인간의 슬픈 연대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씌여지지 않았으므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도 느껴야 하는 천형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아저씨의 꿈>은 K공작을 두고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모스깔료바(이후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의 딸 지나이다 아파나시예브나(이후 지나)를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결혼 시키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모즈끌랴꼬프의 청혼을 탐탁지 않았던 지나가 어머니의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일이 벌어지고 속임을 참을 수 없었던 지나의 고백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모즈끌랴꼬프는 공작을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청혼을 막기 위해 꿈이라고 우기라고 가르쳐 준다. 여기서 표제인 <아저씨의 꿈>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 이야기는 음모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심각함보다는 유쾌함과 희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보면 좋겠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과 그 이름들이 출현하기 때문에 메모하면서 읽으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다.
도끼는 많은 문학가에게 영감을 그리고 많은 비평가에게서 논란을 끌어낸 작가라고 한다. 읽으면서 이제껏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거부하고 좀 더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하고 변했기 때문에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현대에까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