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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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테두리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두 집단이 모여서 세상을 구성하는데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보니 테두리 안의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테두리 밖 사람들의 삶은 어떤 형태로 전개되는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테두리 밖 사람이라는 것을 천명 -여기서 이런 말을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커밍아웃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 커밍아웃은 한 분야에만 국한된 용어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드러내다의 의미로 확대 재생산 된 의미이다. - 하거나 정체성을 숨기고 테두리 안에서 평생을 정체성과 현실 사이에서 불화하면서 살아간다.

 

윤고은은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의 달이 둘이 되기 시작했던 그 날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에서 현실이 아닌 이공간으로 진입한다. 달이 둘이 되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살아가던 중력자들 중에서 자기는 무중력자인데 중력자의 허울을 쓰고 살아왔었다고 하나둘 커밍아웃을 한다. 바바리와 만년필로 상징되는 무중력자들은 유행처럼 - 자신의 정체성이 유행처럼 번져나간다고? - 번져나간다.

 

중력자들과 무중력자 그리고 무중력 증훈군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의 상징으로 읽힌다. 적어도 내게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말로 중력자들과 무중력자들이라는 말을 환치시켜도 무방해보인다. 세상은 언제나 주류가 이끌어 가는 세상이었지만 모두가 주류가 아니라 주류 속에서 자신이 가진 비주류성을 숨기고 주류 사회가 기대하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비주류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달이 두개가 되고 - 주류의 세계는 항상 달이 하나여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모양이긴 했다. - 무중력자들이 베일을 벗을 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언론 매체다. 언론이라는 것은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을 취재해서 보도하기도 하지만 화제가 될만한 것들을 발굴하고 화제화시킨다. 뉴스에도 유행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라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이 심심해지고 시들해질때까지 니전투구처럼 하이에나처럼 그 사건을 물고 뜯는다. 아무것도 뽑아먹을 것이 없을 때까지 말이다. 언론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만년필과 바바리가 무중력자들의 상징이되고 뉴스의 메인을 장식한다.

 

주류와 비주류는 어쩔수 없는 천형처럼 항상 대결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무중력증훈군에서 그 대결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고 있을지가 궁금해지는데 윤고은은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까?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비관적이다. 이 비관성은 순환적이다. 달이 두개가 되던 때부터 시작해서 달이 여섯개가 될 때까지였을 뿐이다. 유행처럼 불길이 잃었다가 유행이 지나버리면 걸레로나 써야할 면티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도는 것이니까 언젠가는 다시 고개를 들꺼다. 그러면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고 기억 속의 한 자락을 끄집어 낼 것이고 집적된다. 그러면 완전한 전복도 가능할 일이지만 그 집적이 더뎌서 언제 완전한 전복을 이루게 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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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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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을 통해서 그가 번역가라는 것을 알았고 <두물머리>를 통해서 그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통해서 그가 신화학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이윤기의 신화를 말하는 또다른 책 <이윤기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났다.

 

토마스 볼핀치가 이야기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는 사람의 시선에 맞게 해설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시리즈가 스토리에 중점을 둔 통시적인 이야기의 해설서라면 <이윤기 ,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라는 이야기가 가지고있는 상징성에 무게의 중심을 좀 더 두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처음에 보면 이윤기의 옅은 사진 위에 '나는 문화 현상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신들과 만나는 공부를 '신화 꺼꾸로 읽기' 혹은 '역류의 신화학'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라고 선언한다. 이 책은 '역류의 신화학'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에서 신화의 변형된 흔적을 찾고 그 원형의 신화를 이야기해보고 문화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다.

 

서울에서 헤라클레스와 연관된 '풍요의 뿔'의 상징을 찾아내기도 하고 금강역사가 왜 사자머리를 뒤집어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원류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정적 이미지의 뱀의 원류를 찾아보기도 하고 신들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재차확인하게 되는 것은 신화는 상징으로 점혈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신화란 알레고리(우화)이며 신화 쓰기란 원래 같은 것을다르게 말하기이며 시노하는 여느 방식과 다르게 한 이야기이며 이러한 말하기와 쓰기에서 상징이 사용되었고 발전되면서 이야기의 이면 속으로 숨어들었고 현대의 사람들은 그 이면의 의미를 찾아 상징의 기호들을 해독하듯이 신화를 읽는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그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그림또한 재미있다.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림의 곳곳에 등장인물의 상징들을 숨겨놓았다. 이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그림을 보는 재미인데 예를 들면 이렇다. 겉모습이야 어떻든 남자 옆에 독수리가 있으며 그 신은 제우스이고 , 여인네 옆에 공작새나 공작새의 깃털이 있으면 그 여신은 헤라가 된다. 그림에서 이런것들을 도상학이라고 한다고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윤기가 말하기 어트리뷰트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나타나는 어트리뷰트를 알면 글미이나 조각을 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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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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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좋아해보고자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될 일들이 아마 작업을 걸려고 맘 먹은 대상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피해갈 수 없는 작업의 첫 단계다. 그런 다음에 잠시 사라져주기를 통해서 무의식중 허전함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것이 수순일 것이다. 여기 아주 이 단계에 충실한 숙맥이 있었으니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에게 한 눈에 뻑가버려서 그녀의 눈에 자주 띄는 것을 목적으로 그녀의 곁을 배회한다. 눈치가 빠른 여학생이라면 좋아하나 혹시 스토커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자 후배는 눈치 없어 보인다. 자주 마주치는 선배에게 "선배 또 보네요"라는 말을 할 뿐이고 사실 남자도 '우연'하게 만났다는 듯이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의 곁을 육 개 월째 맴돌고 있는데 말이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니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와 여자 고난을 혹은 난관을 겪어내고 사랑에 빠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형적이고 '전차남'적인 이야기일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여기서 그냥 주저 앉으면 로맨스 소설의 클론에 불과한데 작가는 여기서 두 가지 정도를 덧대었다. 판타지와 교차진술이 그것이다.

 

판타지라는 것은 '히구치' '이백' '하누키' 정도로 대표되는데 텐구를 자처하는 히구치라던지 , 괴상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백이러던지 술이란 술은 무조건 마셔버리는 히누카가 대표적이다. 히누키 이백 히구치는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 사이에 적당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몽환적 판타지로 옮겨버린다. 가짜 전기부랑 술을 마시는 대회에 갑자기 참가해서 이백을 이긴다든지 , 책을 구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게임에 참가한다든지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속에 두 사람을 놓아둔다든지 감기에 직빵인 약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현실이라는 팍팍한 곳에서 잠시 숨쉬게 하는데 , 우리 주위에 무중력자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 이 소설책 전에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소설을 읽은 탓이다 - 히누키와 히구치 이백이 우리 주위 혹은 우리 삶 언저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 더 말해본다면 우연을 가장해서 오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자가 우연의 그 끝에서 만남이 필연의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라 심해어들이라는 에피소드에 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꼬마가 책 한권으로 세상이 엮어 들리는 이야기를 한다. 우연이 하나씩 연관관계를 가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되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원인이 되어 또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목표를 향해 둘러가도 애둘러가도 어쨌거나 목표를 향해 가기 마련이다.

 

두번째 키워드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버린 '교차진술'이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을 옮겨 다니면서 남자와 여자의 심리묘사를 해냄으로써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교차되는지 전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교차의 간격이 긴 것이 아니어서 마치 탁구를 치는 것처럼 왔다갔다하는데 이것은 어지러워 보이는것이 아니라 스포티하다고 해야하나? 밝고 경쾌해서 이야기 전체 분위기가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게 너무 판타지스럽지도 않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바쁘다.

 

자 남자와 여자는 연인관계로 발전했을가? 네 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게되는데 요즘 드라마가 자주 써먹는 열린 결말로 처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끝이 나지 않았으나 그러하게 끝나지 않았을까라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 결론은 여러분들의 것이다. 희극이어도 좋고 비극이어도 좋다. 다시 한 번 책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몫이라고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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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신화
김익두 지음 / 한국문화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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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신화'라는 표제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단군'신화이고 '고주몽설화'설화를 말하지 않을까? 문헌에 전하는 몇 개의 신화를 배우면서도 그 당시에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닐었기 때문에 이름정도만 기억하고 국사 주관식 정답으로 써 넣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뒤 그리스 로마 신화 인도 신화 중국 신화 북유럽 신화들을 배우면서 그제서야 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한국의 여타의 신화처럼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인물과 건국 신화들만으로 가득할까라는 의문이었다. 이 단순한 의문이 그 때부터 한국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한국 신화에서도 신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신화>(서정오 , 현암사)를 통해서였다. 수 많은 신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뤄 살고 있었다. 외래의 신화들처럼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비천하다 멸시당했던 만신(무당을 대접하여 이르는 말)의 무가 속에서 은자의 삶을 살면서 신으로서 인간들의 삶의 기복을 품어내고 있었다. 외래의 신화들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화려하거나 위엄을 앞세우지 않고 인간들 곁에 함게 숨쉬는 신들이었다.

 

옥황상제붙터 시작해서 대별왕 소별왕 오늘 장상 할락궁이 바지대왕 삼신할머니 바리데기 군웅신 저승차사 강림도령 강상이 손님네 사만이들의 신들은 각자의 소임을 다했지만 그들은 인간 세상의 저편 저승에 기거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문자로 남지는 못했다. 혹자들은 무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들은 현세 기복적인 신들이라서 신신화로서의 권위가 없다고 하기도 했고 신화 연구 영역에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글로 남기는 것이 역사라지만 입말의 시대에도 역사는 존재했으며 그 역사를 말하는 것이 음성인 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문서에 기록된 한국신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책이 <이야기 한국신화>이다. 한국에서 회자되어지는 신화들 문헌 속에 살아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밝히고 독특한 시간과 공간 체계를 선언한다. 주로 인용된 책들은  ,<부도지> , <환단고기> <규원사화> 를 중심으로 신화를 이야기하고 신화의 중심에 단군신화를 두고 선천시대 중천시대 후천시대로 신화의 시대를 구분하고 문헌에 나오는 신화를 제시하고 후반부에는 무가에 전해지는 우리네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개정판 23쪽 마지막 한 문단을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한국 신화의 근원을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것 예컨데 무속신화 같은 것에서 찾고자 하는 연구 작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어서 후반부에 제시한 무속에나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는 스스로의 논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하다. 게다가 구전으로 전해지는 무가를 부정하면서 , 채록한 자료는 각주를 달아 어떤 사람에게 채록했다는 자료를 제시하고 ㅇ있는데 이것은 일관성이 없어보인다.

 

<이야기 한국신화>는 다양한 신화들을 살피면서 우리가 중국의 신들이라고 알게 된 몇몇 신들이 옛조선의 시들이었음을 이야기하는데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기록에 근거한다. 말들의 시대가 끝나고 기록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기록은 <삼국유사>에 의존해서 설명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박혁거세 설화에서 시작해서 시조 설화들을 풀어놓는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듯하다. 첫부분은 단군의 이전 시대이고 두번째 부분은 <삼국유사>에 기댄 역사의 시대이고 세번째 부분은 현세가 아닌 저 넘어의 세계의 신들을 무가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이야기 한국신화>는 이 책이 아니었으면 <부도지><규원사화><환단고기><삼국유사><우리가 꼭 읽어야할 우리신화> 등 5권이 넘는 책을 읽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각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게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배열해놓고 있다. 한 권으로 다양한 신화를 만나기에 적당해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나 <우리가 꼭 읽어야할 우리신화>정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초반부만 읽어도 좋다. 창조설화들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수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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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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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오천축국전>이라고 하면 혜초였고 혜초라고하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연관 키워드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도 말해야 살아남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다섯 천축국'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인데 잘못 읽어서 <왕 오천 축국전> 오천개의 동물 나라 갔다 왔다로 해석했던 기억이 새록 새록하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기는 내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김탁환을 처음 만난 것은 <방각본 살인사건>이라는 추리물이었다. 처음 읽어보고 오 제법 신선한 걸 시대도 살아있고 문화도 두루 밝혀두었고 역사적인 인물을 제법 잘 데려왔던 글이었다. 그 이후 < 불멸의 이순신> <허균 최후의 19일> 등의 저자인 것을 알게되었다. 역사의 한 부분만 차용해오고 논리적 근거성이 부족해도 역사를 소설화 했기 때문에 팩션이라고 뭉텅그려서 말하던 시절 , 제법 읽으만한 팩션을 쓰는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김탁환의 진가는 개인적으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작품과 <나 황진이>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는 김만중과 희빈 장씨의 대결이 볼만했고 그 사이에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던 부부이 있어서 즐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 황진이>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데 황진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재구성할 때 여러곳의 시들을 가지고 사실과 허구의 실들을 씨줄과 날줄로 짜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무수한 의미들이 녹아들었던 작품이다.

 

김탁환 작가가 <혜초>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 권 분량인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고 했다. 정수일 선생이 주해한 <왕오천축국전>을 저본으로 삼고 글을 쓰면서 혜초와 고선지 장군을 연결시키고 - 혜초가 중국에 돌아온 것과 고선지 장군의 생몰년대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란수라는 인물과 오름과 내림이라는 인물들을 글 플롯 사이에 투입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왕오천축국전> 정수일 본을 보면 고선지와 혜초가 만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혜초가 중국에 도착하고 안서도호부 관할 지역에서 장안까지 도착하는 사이에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김탁환은 이 부분을 <혜초>의 이야기판으로 삼은듯 하다. 고선지는 그 당시 안서 도호부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 사실 고선지 평전을 읽지 않아 잘 모른다 - 고선지의 개략적인 내력을 봐서는 안서도호부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사적 사실에서 허구가 개입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혜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혜초>는 한 편은 왕오천축국전의 한 부분이고 , 한 편은 소설의 일부이다. 하지만 <왕오천축국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나 황진이>에서 서술하듯이 역사적으로 남은 사실 위에 소설가적 상상력이 더해졌다. 그러므로 <왕오천축국전> 즉 소설에서 혜초가 기록했다는 부분도 사실은 허구다. 그러므로 완벽한 소설이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처음 시작은 몇 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 <혜초>에서 언술되는 첫부분은 실제 기록보다 유장하고 치밀하다. 이것이 소설가의 힘이라면 힘일터 ..................

 

이제 <혜초>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주인공인 혜초와 고선지의 등장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의 사건을 이끌어가지 않고 주연 인물이 엑스트라보다 더 적은 존재감을 준다. 꼭 양반이 비루하고 물색없어서 자신의 양반 신분을 란수와 내림과 오름에게 팔아버린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조금 뭣 하지 모르겠지만 허접한 에스에프적 사건을 혜초와 고선지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질좋은 고급 포장지로 포장한 듯하다. 결국 이런 것은 역사소설의 장르에 넣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왜 있지 않는가 밖은 매우 풍성하고 먹을게 많은 것 같은 과일바구니를 막상 풀어보면 별로 먹을게 없다. 하긴 알려진게 없으니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역사에서 불러낼 수 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자. 죽은 사람이 다시 무덤 밖으로 불려 나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해보면 알텐데 ? 그들은 허리를 굽힐 힘도 없다.

 

김탁환씨가 김탁환 작가이길 바란다면 몇 문장 남지 않은 < 왕오천축국전>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기워내서 해초의 외면적 사건이 아니라 해초의 내면을 추척하는 것이 더 김탁환스러운 글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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