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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좋아해보고자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될 일들이 아마 작업을 걸려고 맘 먹은 대상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먼저다.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피해갈 수 없는 작업의 첫 단계다. 그런 다음에 잠시 사라져주기를 통해서 무의식중 허전함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것이 수순일 것이다. 여기 아주 이 단계에 충실한 숙맥이 있었으니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에게 한 눈에 뻑가버려서 그녀의 눈에 자주 띄는 것을 목적으로 그녀의 곁을 배회한다. 눈치가 빠른 여학생이라면 좋아하나 혹시 스토커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자 후배는 눈치 없어 보인다. 자주 마주치는 선배에게 "선배 또 보네요"라는 말을 할 뿐이고 사실 남자도 '우연'하게 만났다는 듯이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연을 가장해 그녀의 곁을 육 개 월째 맴돌고 있는데 말이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니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와 여자 고난을 혹은 난관을 겪어내고 사랑에 빠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형적이고 '전차남'적인 이야기일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여기서 그냥 주저 앉으면 로맨스 소설의 클론에 불과한데 작가는 여기서 두 가지 정도를 덧대었다. 판타지와 교차진술이 그것이다.
판타지라는 것은 '히구치' '이백' '하누키' 정도로 대표되는데 텐구를 자처하는 히구치라던지 , 괴상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백이러던지 술이란 술은 무조건 마셔버리는 히누카가 대표적이다. 히누키 이백 히구치는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 사이에 적당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현실의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몽환적 판타지로 옮겨버린다. 가짜 전기부랑 술을 마시는 대회에 갑자기 참가해서 이백을 이긴다든지 , 책을 구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게임에 참가한다든지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속에 두 사람을 놓아둔다든지 감기에 직빵인 약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현실이라는 팍팍한 곳에서 잠시 숨쉬게 하는데 , 우리 주위에 무중력자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 이 소설책 전에 무중력 증후군이라는 소설을 읽은 탓이다 - 히누키와 히구치 이백이 우리 주위 혹은 우리 삶 언저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 더 말해본다면 우연을 가장해서 오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자가 우연의 그 끝에서 만남이 필연의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라 심해어들이라는 에피소드에 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꼬마가 책 한권으로 세상이 엮어 들리는 이야기를 한다. 우연이 하나씩 연관관계를 가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되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원인이 되어 또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목표를 향해 둘러가도 애둘러가도 어쨌거나 목표를 향해 가기 마련이다.
두번째 키워드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버린 '교차진술'이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을 옮겨 다니면서 남자와 여자의 심리묘사를 해냄으로써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교차되는지 전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교차의 간격이 긴 것이 아니어서 마치 탁구를 치는 것처럼 왔다갔다하는데 이것은 어지러워 보이는것이 아니라 스포티하다고 해야하나? 밝고 경쾌해서 이야기 전체 분위기가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게 너무 판타지스럽지도 않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바쁘다.
자 남자와 여자는 연인관계로 발전했을가? 네 편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게되는데 요즘 드라마가 자주 써먹는 열린 결말로 처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끝이 나지 않았으나 그러하게 끝나지 않았을까라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 결론은 여러분들의 것이다. 희극이어도 좋고 비극이어도 좋다. 다시 한 번 책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몫이라고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