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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제법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은 열꽃피어 목숨이 할딱거리는 것처럼 한 가지를 바라게 되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 병증은 아무래도 소설하기 혹은 소설쓰기의 염원을 세워 몇날 며칠을 소설을 써보겠다고 강호의 무림고수가 폐관하여 수련하듯이 머리 싸매고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 열에 하나나 겨우 깨우쳐 글이라는 것을 써내기는 하지마는 열에 아홉은 생각을 글이 못따라가 주저 앉고 마는데 강호 무림인들은 주화입마라고들 하지만 세인들의 눈에는 그저 작파해버리고 떨쳐 책상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아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한 초식이라도 창안해내거나 모사해내어 본 자라면 알긴 하던데 , 화려하든 무난하든 자기만의 초식을 바라봐주는 사람만 있으면 한 초식뿐이더라도 계속 뽐내게 되기 마련이거든 마약과도 같은 것이란 말이지 거 보란 말이다. 남사당패나 광대들을 보란 말이다. 알아봐주고 호응해주면 없던 용기라던가 그런 것이 생겨 평소에는 하지도 못하던 것들을 해내고서는 말이다. 그 값으로 박수를 받아 마신다는 풍문이 들리는 바와 같다. 그렇게 해서 재주는 늘어 발전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는 것쯤은 부연하지 않아도 귀 있는 자 알아 들었을 터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기는 하려니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기억해보면 , 독문초식은 사실은 이전에 있어 왔던 초식들의 한데 모아 돼지국밥처럼 술렁술렁 끓이면서 잡내와 느끼함을 걸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인데 한 초식을 떼어 놓고 보면 각 명문정파의 한 부분씩이지만 붙여 놓고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 - 혹자는 전성이라고 하고 혹자는 전이라고도 한다. - 버리기는 하지만 몹쓸 것이라도 될 것 같지만 희안하게도 이세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자기만의 독문초식이 되어 있어서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뿐더러 흉내낸다 하더라도 기의 운영이 뒤틀어져 주화입마에 들게 되니 조심해야한다. 독문초식 뒤에 외호라도 붙여둔 이름이 있으면 오롯하게 후세에도 전해지는 거대한 초식이 된다는 것은 귀 간지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에 완전무결한 무공 - 무공이란 것은 잡스러운 내가 알기로는 초식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 떠오르더라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방언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는데 , 머릿속의 무결한 무공으로는 아무리 범의 목덜미를 물어봐야 하룻강아지의 이빨 부러지는 소리 - 하루 강아지는 참고로 어른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이빨 한 쌍도 구비되어 있지 않음을 기억하시라 - 도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단 말이다. 강아지가 범을 물려면 발톱이라거나 이빨을 벼려야하는 것인데 하룻강아지 주위에는 안타깝게도 어른 강아지라던가 어미강아지가 없어 어떻게 이빨을 벼리는지의 방법을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볼 문제는 적을 알면 절대 지지 않는다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는 말이다. 적에게서 이빨과 발톱을 벼르는 법을 배우면 되는데 칼을 갈아본 적이 있는 자는 알 것이로되 숫돌질 한 번에 날이 서는 법은 세상천지에도 없게 마련이지 않느냐? 갈고 또 갈아야 칼 날이 서듯이 발톱도 이빨도 갈고 또 갈아야 범의 목덜미라도 잡아챌 것이거든. 저기 호서의 미켈란젤로란 환쟁이가 말하기를 조각하는 바위 안에 이미 조각되어질 상이 들어있다고 하지 않느냐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다듬어서 그 상을 꺼내는 것이다. 입이 아프지만 완전무결한 무공을 생각에서 끄집어 내어 화현시키는 것은 그렇단 말이다. 알지 않느냐 칼갈이나 이갈이 발톱갈이는 연습의 다른 이름이란 말이거든 (아 설명하기의 잡스러움)
섬나라에서 나름 독보적인 초식으로 이름을 알리는 무림 고수가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는 무공독본을 내어놓기에 이르렀는데 무공의 초식은 강호 무림인에게 있어서는 목숨줄과도 같은것인데 말이다. 스무 단계의 외공과 내공을 합친 초식을 시연하기에 이르렀다. 허허실실의 태허를 찾아 헤메이는 것 같기는 하다만 극대의 것을 추구 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하지만 무공독본이라는 것이 자기만이 알 수 있는 표현들과 심득으로 채워진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인데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타인의 무공을 잘못 받아들여 체화하지 못하면 주화입마에 들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인과율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움직이는 그림을 통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것인데 그 무엇이냐 '등가 교환의 법칙'이 그것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정당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되어버리는 지금이지만 무공은 그것을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장이기도 하다.
내 고향 선사께서도 무공에 대해서 언급한 이가 없는 것이 아니어서 찾아보기로 한다면 무림초자부터 시작해서 전설의 고수까지 무공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 있는데 수 만 종류의 무공 독본들 중에 읽어 본 것은 달랑 두 가지 밖에 되지 않는데 이태준의 『문장강화』와 이외수『글쓰기 공중부양』이 그것인데 이태준의 무공이 순정한 기본 초식이라면 이외수의 글은 순정한 초식이 아니라 변초라고 해야 할 것들이다. 이태준은 도(刀)법가라면 이외수는 검(劍)법가라는 식의 투미한 비유이긴 하다. 오독하기로는 이태준은 일격필살의 무공을 추구하고 이외수는 다량출혈로 필살하는 자이다. 초심자들에겐 섬나라 무림인이 쓴 비급보다도 이외수의 변초보다도 그저 순정한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기본으로 연마하라고 말해두고 싶긴한데 말이다. 늙은이의 말들은 옛것이고 귀찮고 고리타분하다고 해서 듣지 않는 것이 청년들이다 보니 말해두고도 입만 아프기는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혹은 중심에 있는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는 비급을 쓰신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무림인의 비급을 읽을 초심자들이 걱정이 되긴 해서 늙은이 - 새치가 성성하니 백발에 가까워오니 늙어가는 늙은이이긴 했다. 이세상에 늙어가는 늙은이가 아니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 - 노파심으로다가 아리아드네의 실마냥 몇마디 해본다면이야 '무릇 무공이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초식을 만들어냄에 있어서 한 동작 한동작 명확하게 할 것이고 명확한 것은 유하게 이어져야 빈 틈이 생기지 않는데 그러하기 위해선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초식이라는 것이 모든 초식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니 이전의 것들을 버리고 새로 만들지 말 것이며 쓸 만한 것은 가져다 쓰되 만들어진 초식은 그 이전의 것이 아니라 오롯하게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연습만한 것이 없고, 연습에 의해 만들어진 무공은 남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것이어야 다른 사람들이 보아도 그 무공의 원류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해두기는 하는데 귀 있는 자 들을 말이다. ( 아 설명하기의 잡스러움 설명하다가 내가 죽을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