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지루한 장마의 끝자락입니다. 기온은 수온주가 부서질 것처럼 솟아올라서 내려올 줄 모르고 , 낮과 밤은 빛과 어둠의 차이일 뿐인지 기온의 차이가 별반 없습니다. 낮과 같은 밤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열대야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을 뒤척이게 합니다.


 

찔레꽃머리의 한 중간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 팥빙수, 해변,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 아이스 아메리카노, 지리산 그리고 더위를 날려 줄 귀신 이야기 정도가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찔레꽃머리가 다가오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 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냡량 특집을 통해서 옵니다. 수많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이라고 해서 폐교나 특정 공간에 연예인들을 몰아넣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귀신분장한 사람을 숨겨두었다가 놀래키는 것을 특집이라고 방송을 합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처해진 상황에서 무서워하거나 공포스러워하거나 우는 모습을 보면서 웃습니다. 잠시 더위를 잊었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공포를 보면서 웃는다는 것이 귀신보다 더 무섭습니다.


 

찔레꽃머리의 낮과 밤을 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만 , 책을 읽으면서 낮과 밤을 지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습니다. 보통 이 때 일게되는 것이 추리나 공포 소설일 것입니다. 날도 더운데 인문학 서적이나 사회 과학 서적을 읽으면 몸 안의 심리적 온도가 급상승하여 신체를 터뜨려버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 , 미야베 미유키 , 오츠이츠 등이 생각이 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작가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각광을 받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려준 책은 아마도 제 기억에는 오츠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오츠이치의 『ZOO』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몇 몇 이야기 - seven room」, 「zoo」- 들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오츠이치의 이야기는 독특한 주제와 구성으로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의 설정이 제일 돋보입니다. 죽은 사체의 관점에서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기묘합니다.


최근에 오츠이치의 글을 읽었습니다. 『베일』이라는 제목인데 두 편의 이야기가 묶여져 있습니다. 오츠이츠의 글은 방의 조도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읽어야 한다는생각에 커튼으로 창을 맊고 겨우 투과해 들어온 빛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츠이치의 전작들에 비해서는 그로테스크함 , 하드고어적인 분위기는 많이 무뎌져서 한밤에 부는 더운 바람이 소스라치게 차가운 바람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이제는 웃으면서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은 말이에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철의 장막보다 더 견고한 베일을 쳐 두고 있는 있습니다. 스마일 페이스 증후군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길 바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겉과 속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닐까요?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 반대로 인간들이 감당해야하는 천형(天刑)은 아마도 외로움 , 고독 , 단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가면을 쓰고 산다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착한 얼굴 가면 어떤 사람은 악한 사람 가면 어떤 사람은 여우 가면 어떤 사람은 곰 가면 각각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데 그 이면에는 나약한 존재 인간의 자아가 숨어 살고 있는 겁니다.


 

가면은 자신의 자아를 감추는 용도로 쓰이지만 뒤집어 보면 이것은 스스로 만든 단절이기도 합니다. 사람과 대할 때 그 가면이 유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견고한 벽을 만드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미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과 소통을 원하게 마련입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견디기 힘듭니다. 스스로 외면하려고 하면 더욱 더 선명해지니까 말입니다. 괴물 같은 인간 속에 살아 숨 쉬는 괴물은 아주 작지만 거대한 번식력을 보입니다. 인식하기 시작하면 광대무변하게 늘어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님, 불 들어갑니다 -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임윤수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안녕하십니까 유랑인입니다.

 


  장마의 끝자락이라고 합니다. 습한 공기는 젤리나 푸딩처럼 숟가락으로 떠보면 뭉텅이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장맛비도 뭉텅이로 뚝뚝 떨어집니다. 언젠가 읽었던 『죽음의 한 연구』의 무대가 되었던 ‘유리’의 기후가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날 - 이 문장을 처음 쓸 때는 그랬습니다. - 들입니다.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에서 주인공이 찾아든 마을 이름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유리’이기도 합니다.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유리는 유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 유리는 스님입니다. - 나무 위에 매단 가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좌탈입망’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이 처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 중에 하나를 글로 본 것이지요. 친견(親見)하기에는 아직 우주적 시간 속에 티끌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유랑인’에게는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인간이란 숨탄것이 된 그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천형(天刑)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필멸의 존재인 것을 인식한 인간들은 필멸을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 종교에 기댑니다.. 천국을 꿈꾸고 열반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의 인식이 계속되는 순간까지의 괴로움입니다.


죽음이란 것은 만가(輓歌) 자락 ‘북망산이 멀다더니 사립문 나서니 북망산이로구나’처럼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낡은 비유이겠습니다만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태어나는 것을 축복하고 죽는 것을 슬퍼한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면 다르겠습니다만 죽음도 각 지역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 축복하는 곳도 수둑룩합니다.


 

  종교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다비식’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스님들의 장례식입니다. 큰스님들이 입적에 들면 보통 행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스님들이 모여서 법의를 갖추어 입고 독경을 하며 스님을 보내드리고 마지막으로 연화대에 유해를 안치하고 불로 태움으로써 지수화풍 자연의 상태로 환원하는 의식입니다. 흔히 이러한 과정 끝에 열반에 들기를 기원합니다. 스님의 유해가 연화대에 오르고 상좌스님께서 불을 들고 외치십니다.

 

  “스님 불들어갑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큰 스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스님들이나 일반 신도들이 애타게 읊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그러나 큰 스님은 대답없이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불길 속에서 산화합니다. 다시는 현세에 오시지 못할 길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 보지 않으시고 열반의 길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일제히 곡소리가 들리고 독경소리가 뒤엉켰습니다. 스승을 잃고 도반을 잃은 사람들은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연화대의 불길은 거세게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모든 속세에 대한 미련을 이미 버렸으므로 정염으로 타오른다거나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법 없이 자분자분이 일어나 이 세상 잠시 들렀다가는 존재의 흔적은 꼼꼼하게 지웁니다. 남기는 것이라고는 어느 이에게서 나온 것인줄 알 도리없는 것들 , 이미 산화해버린 살과 뼈와 뇌수의 열기뿐입니다.


 

  기억되지 않는 것이 진짜 죽음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사진을 통해서 담아두기도 하고 글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필멸의 존재이므로 필멸에 처해졌지만 영원한 기억이라는 불멸을 성취합니다.






 

 

덧달기


66쪽 마지막 줄 ‘스님의 법구를 모신 검이 입방형이기 때문에’ 라고 적혀있는데 문맥상 감이 맞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 , 사계절 , 2009


 

  오랜만에 제법 긴 쉼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밀쳐두었던 책읽기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입니다. 이런 책 저런 책 언저리를 휘돌아 다니며 유랑하듯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도 좋고 인문학 책도 좋았습니다. 빨리 읽히는 것은 빨리 읽고 늦게 읽히는 것은 늦게 읽었습니다. 한 여름 햇볕 같은 강렬함도 있었고 한 여름 그늘 같은 늘어짐도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백수의 책읽기는 오랜 공백기 때문인지 글몸살을 앓게 했습니다.

 


  글몸살이라는게 뭔가 의문이 드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별건 아니고 글을 읽고 활자를 읽다가 지쳐서 활자 자체를 볼 수 없는 상태 혹은 기피하는 상태를 글몸살이라고 유랑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정적 계기가 된 책은 『임꺽정』입니다. 4권까지 읽으니 도저히 더 이상을 읽을 수 없어서 활자들을 모조리 버려두고 일주일을 빈둥거렸습니다. 제가 원래 세 권 이상 되는 작품은 잘 읽지 않는데 이상하게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입니다. 저는 글을 읽는 호흡이 느려서 긴 글을 읽으면 힘들어집니다. 시간을 한정할 수 없습니다.


 

  『임꺽정』을 읽어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호모 에로스에 인용되고 설명되어진 탓입니다. 고미숙의 일련의 글들을 읽다가 - 『호모 에로스』『호모 쿵푸스』 - 다음 책은 어쩌면 ‘임꺽정’이거나 ‘동의보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동의보감’은 어려운 느낌이 들어서 홍명희 선생이 쓴 ‘임꺽정’을 읽어보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고미숙은 재미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전 해설가가 그것입니다. 제일 먼저 작업한 것이 제 기억으로는 『열하일기』입니다. ‘열하일기’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 봤어도 잘알지 못하는 고전 ‘열하일기’에 대한 해설서의 성격을 가진 『열하일기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입니다.


 

  고전의 해설이라는 것이 고전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임꺽정’은 어떤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고미숙은 『임꺽정 , 길 위에서 만나는 마이너리티의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합니다.


 

  시절 인연을 잘 만나 읽을 일 없었던 『임꺽정』을 읽게 되고 , 또 소설 『임꺽정』에 대한 해설서를 만나게 됩니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가지고 다양한 시선으로 오밀조밀하게 풀이해낸 책입니다. 이렇게 인연이 없었던 것이 우연이 겹쳐져 필연이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임꺽정 , 길 위에서 만나는 마이너리티의 향연』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백수들입니다. 임꺽정과 두령들 거의 모두가 백수입니다. 청년실업자들입니다. 『임꺽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수들에게 전하는 홍명희 선생의 전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모 쿵푸스처럼 공부하고 호모 에로스처럼 사랑하라는 고미숙의 전언일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구에서 지인들과 야구 경기를 관람했다. 연일 패색이 짙었던 삼성 경기였다. 초반은 지루했고 후반은 제법 볼만했다. 파울을 칠 때마다 공들이 내게로 날아오지 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던지는 힘도 때리는 힘도 엄청나서 공이 공중으로 떠오르면 보이질 않아 더욱 두려웠다.

  타자들의 부진인지 투수들이 잘 던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 초반에 점수가 나지 않고 오로지 투수의 역량으로 한 회 한 회를 버텨야 했다. 공은 구위가 높았고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하늘은 비까지 오려는 모양인지 투명에 가까운 푸른 색 하늘을 보여주지 못했고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두 작품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는 성장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베터리>이고 또 하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였다. 잿빛 하늘과 어울리는 것은 <퍼펙트 블루>였다. <베터리>는 희망적이었고 절망을 몰랐으며 , 함께라는 것을 배워가는 상황이었다. <퍼펙트 블루>는 완숙한 경지에 올라와 그 외로움을 알 것도 같았다. 완벽한 파란색에서 느끼는 것은 냉소로 감싼 외로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인 <퍼펙트 블루>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연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추리소설 작가니까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한국에서 <모방범>을 필두로 하여 몇 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많은 팬을 가진 일본 여류작가다. 혹자들은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이 길어서 미미여사라고 부르는 이도 몇 있다. 미미여사라는 별칭이 추리소설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제법 상쇄하고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퍼펙트 블루>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시점처리인데 , 마사가 서술자의 역할을 한다. 인간이 아니라 전직 경찰견이다. 개의 눈에 비친 살인 사건 해결기라고 해두면 좋겠다. 모로오 가스히코가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모로오카 신야와 하스미 가요코 등이 사건을 해결해 과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추리소설의 백미는 아마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결말이라고 한다면 제법 잘 쓰여진 소설이긴 했다.

  <퍼펙트 블루>는 약품 이름이다. 근육 강화제를 감별할 수 있는 약품이지만 부작용이 확인되어 일본 내 시판이 금지된 약물인데 , 다이도 제약이 임상실험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협박범은 다이도 제약 담당자와 협상을 하기로 하는데 그 담당자가 기하라와 우에다 료코다. 모든 것은 야마세이거나 협박범 소다에게 집중되었다. 실마리를 한 가닥 풀 때마다 범인의 향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안녕하십니까? 유랑인입니다. 계절 인사의 낱말들을 다 써버린 말자루를 가진 유랑인이라 더 이상은 형언할 계절 낱말들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빗방울과 파란 하늘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황태처럼 감정이 말랐다가 풀어졌다가를 반복되겠지만 견디시길 바랍니다. 황태는 견디고 나면 맛이라도 있겠지만 인간은 감정 기복을 잘 견디고 남는 것은 무엇일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조증과 울증의 반복 이후에는 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몹쓸 생각이 스칩니다.




  이번에 유랑인이 엉덩이를 붙이고 잡스럽게 해볼 이야기는 < 호모 에로스 - 사랑과 연애의 달인>입니다. 고미숙 씨가 쓴 글입니다. 고미숙 씨는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일원이기도 하고 여러 책을 출간 했는데 저는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움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정도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전자는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있고 후자는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연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 혹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사랑 그게 뭔가? 연애를 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지 핀잔을 주지 말고’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아이가 애기는 어떻게 생기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걸 어떻게 말로 하냐 니가 알아서 하는거지’




  이 책은 네 부분 정도로 나눠져 있습니다. 사랑과 성에 대한 편견 ,청춘의 덧 - 국가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 , ’청춘이여 욕망하라‘ , ’에로스와 운명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분에서 현대의 왜곡된 사랑의 편린들을 나열하고 정리하고 두 번 째 부분에서 국가와 가족 학교에서 억압되고 주입된 사랑이 쇼핑몰에서 소비와 만나는 접점을 보여주고 ’사랑 = 소비‘라는 페러다임을 짚어 보입니다. 소비의 시대에서 만들어진 사랑은 그 소비의 근간인 화폐의 횡포에서 벗어나야 사랑이 잃어버린 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고 역설을 하고 말입니다. 공부의 중요성도 말합니다만 여기서 공부란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그런 공부는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에로스와 운명이라는 것을 합치시키는 데 생로병사의 개념을 사랑에 입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이 책에서 볼만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타자에게 베풀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면서 행해지는 것 , 즉 자기 자신이 주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념과 관념의 사랑이 아니라 몸의 문제로 더욱 근접시킨 겁니다. 금기시 되어 왔던 몸의 영역에 사랑을 붙들어 맨 것입니다. 사랑과 몸은 둘이 아닌 하나일 수 밖에 없습니다. 플라토닉 사랑을 꿈꾸시거나 디오니소스적인 사랑을 꿈꾸시는 분들은 자신이 절름발이가 아닌지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 혁명이라는 표제가 책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의 자장을 만드는 사랑은 그것으로 몸의 생체 리듬을 만들고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관계 속에 사람들을 밀어 넣고  좀 더 숙성된 단계로 만드는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랑이 사람을 사람의 몸을 바꿉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제게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물어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제가 고미숙씨의 글을 빌어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천개의 사랑 천개의 길이 있다’는 말씀 뿐입니다. 시절 인연을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니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48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