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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 , 사계절 , 2009
오랜만에 제법 긴 쉼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밀쳐두었던 책읽기를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입니다. 이런 책 저런 책 언저리를 휘돌아 다니며 유랑하듯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도 좋고 인문학 책도 좋았습니다. 빨리 읽히는 것은 빨리 읽고 늦게 읽히는 것은 늦게 읽었습니다. 한 여름 햇볕 같은 강렬함도 있었고 한 여름 그늘 같은 늘어짐도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백수의 책읽기는 오랜 공백기 때문인지 글몸살을 앓게 했습니다.
글몸살이라는게 뭔가 의문이 드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별건 아니고 글을 읽고 활자를 읽다가 지쳐서 활자 자체를 볼 수 없는 상태 혹은 기피하는 상태를 글몸살이라고 유랑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정적 계기가 된 책은 『임꺽정』입니다. 4권까지 읽으니 도저히 더 이상을 읽을 수 없어서 활자들을 모조리 버려두고 일주일을 빈둥거렸습니다. 제가 원래 세 권 이상 되는 작품은 잘 읽지 않는데 이상하게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입니다. 저는 글을 읽는 호흡이 느려서 긴 글을 읽으면 힘들어집니다. 시간을 한정할 수 없습니다.
『임꺽정』을 읽어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호모 에로스에 인용되고 설명되어진 탓입니다. 고미숙의 일련의 글들을 읽다가 - 『호모 에로스』『호모 쿵푸스』 - 다음 책은 어쩌면 ‘임꺽정’이거나 ‘동의보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동의보감’은 어려운 느낌이 들어서 홍명희 선생이 쓴 ‘임꺽정’을 읽어보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고미숙은 재미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전 해설가가 그것입니다. 제일 먼저 작업한 것이 제 기억으로는 『열하일기』입니다. ‘열하일기’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 봤어도 잘알지 못하는 고전 ‘열하일기’에 대한 해설서의 성격을 가진 『열하일기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입니다.
고전의 해설이라는 것이 고전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임꺽정’은 어떤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고미숙은 『임꺽정 , 길 위에서 만나는 마이너리티의 향연』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합니다.
시절 인연을 잘 만나 읽을 일 없었던 『임꺽정』을 읽게 되고 , 또 소설 『임꺽정』에 대한 해설서를 만나게 됩니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가지고 다양한 시선으로 오밀조밀하게 풀이해낸 책입니다. 이렇게 인연이 없었던 것이 우연이 겹쳐져 필연이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임꺽정 , 길 위에서 만나는 마이너리티의 향연』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백수들입니다. 임꺽정과 두령들 거의 모두가 백수입니다. 청년실업자들입니다. 『임꺽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수들에게 전하는 홍명희 선생의 전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모 쿵푸스처럼 공부하고 호모 에로스처럼 사랑하라는 고미숙의 전언일지도 모릅니다.